시위로 정권이
바뀌는 일은 없다

글/ 박종규 (전)규제개혁위원장· (사)바른경제동인회 회장

1979년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날, 내가 경영하던 회사가 부도가 날 뻔했다. 그날 1억 2천만 원의 어음이 돌아오는데 수금이 안 되는 것이다. 모든 기업이 지출을 중지한 데다 은행도 대출 중지 상태였다. 나라가 불안하면 현금을 서로 확보하려고 한다. 그래서 돈이 돌지 않는다. 최순실 사태로 대통령이 야당 주장대로 갑자기 하야 한다면, 많은 중소기업이 또 한 번 큰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따라서 실업자도 늘 수밖에 없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25일 최순실 연설문 파동과 관련해 고개 숙여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사진=청와대 동영상 갈무리).

역대정권 비선정치 국정농단 교훈

돌이켜 보면, 역대 정권도 비선(秘線)정치가 다 있었다. 대통령의 아들이거나 형님들이 인사나 이권에 관여하여 교도소에 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거리에 나올 만큼 분노하지는 않았다. 최순실이 아니고 박지만 이라면 시위사태까지 났을까 의문이다. 별것도 아닌 아줌마가 대통령을 조종했다는 사실에 국민은 화가 난 것이다. 그래서 ‘국정농단’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그 진원은 박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대통령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물러나야 하는 데는 동감한다. 다만, 물러난다고 하더라도 법에 의해야 하고, 그리고 국가 안위를 위해 좌우상황을 살피는 지혜와 순리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특히 야권의 안보의 문제가 걱정스럽다. 지금이라도 북한이 서해에 문제를 일으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야권은 안보상황에 대한 국민적 불안의 해소노력 없이, 이런 상황 하에서 대통령 강제퇴출 운동이 정말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큰 오산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런저런 고려사항들

대통령이 추천한 총리도 안 되고, 국회에서 추천도 안 하고, 야당이 대화도 안 한다면 야당은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야당의 속내는 지금의 분위기를 지속시켜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하는 것이 정략적 목적일 것이라는 인식이 국민들 속에 확 퍼져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잘못하여 벌어진 일이긴 하나, 정권탈취를 위한 호기로 삼으려는 야당에 대한 시각도 그렇게 곱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만일 혼란이 가중되어 무정부상태가 계속된다면 4.19 당시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4.19 당시에는 계엄령이 선포되었으나 부정선거 규탄이라는 큰 명분이 계엄군으로 하여금 국민의 편에 서게 만들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이 원해서”가 아니라, 군이 등을 돌렸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하야해야 했다. 또한 87년 민주화 시위 때도 88올림픽이라는 국가적 행사를 앞두고 전두환 대통령은 군을 동원할 명분이 없어 7년 단임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끝냈다. 시민혁명의 성공이라고 하나 진실은 시민의 궐기 때문에 정권을 내려놓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다를 수 있다. 앞의 두 사건에 비해 헌정중단의 명분도 약할 뿐 아니라 북한의 핵무장 위협은 외교 안보적으로 고도의 긴장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트럼프 당선으로 세계가 안개정국에 빠졌다. 미국을 잘못 건드리면 미군 철수까지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는 판이다. 이런 위기에서 군은 박 대통령을 위한다기 보다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청와대를 보호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계엄 상태가 오래 갈 수도 있고, 군 장성들의 얼굴이 TV 화면에 비치는 빈도가 많을 수록 민주주의의 단꿈은 당분간 접어야 한다. 야당이나 거리의 시민들이 대통령을 너무 몰아붙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통령 하야다음 국정공백 문제

그런데 하야해야 할 박 대통령이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이유는 계주(繼走)에서 후속선수가 없다는데 있을 것이다. 후속선수가 없기 때문에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의 유고 시에도 계엄령과 헌정중단 그리고 군사정권의 순으로 이어졌다. 4.19 때는 부통령제가 있었으나 정부통령 두 분 다 유고상태였고, 10.26 때는 헌법에 부통령제가 아예 없었는데 지금도 없다(?). 미국과 같이 부통령제가 있었다면 5.16, 5.18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현행 헌법도 총리가 60일내에 새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되어 있는데 초등학교 반장선거도 아니고 두 달 안에 새 대통령을 뽑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북한의 위협과 안보적 위기 속에서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총리체제로는 국난을 넘기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군의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곤 했다.

▲ 필자 박종규 (전)규제개혁위원장· (사)바른경제동인회 회장

이런 역사적 교훈을 감안한다면, 최고통치권자의 변고에 대비한 자동 안전장치의 설치가 긴요함을 다시 느끼게 한다. 부통령제도의 부활이 그 확실한 방편의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논의가 웬 한가로운 소리냐고 한다면, 그것은 지금이 그 적기임을 모르는 소치일 것이다. 지금 그 논의가 국회에서 야당의 주도로 시작되어야 한다. 바통터치가 쉬우면 ‘하야’도 쉬워질 수 있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8호 (2016년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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