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정래, 무사도기반 경제대국 입국

일본 근대화의 정신사상
일본 무사(武士) 이야기
글 유정래, 무사도기반 경제대국 입국

‘일본 무사(武士) 이야기’가 흥미를 끄는 책 제목이다. 일본은 칼잡이 ‘무사의 나라’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저자 유정래 씨는 일본유학 후 17년간 일본에 체류하면서 무사의 기원에서부터 일본 개화의 주역으로서 무사의 역할을 연구해 왔다고 소개했다. 무사에게는 무사도(武士道)정신이 있고 이것이 일본 근대화의 정신이라고 하니 일본을 알아보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근대일본 개화의 주역 무사들

저자는 일본이 패전을 겪고도 경제대국으로 일어선 배경은 전통적인 무사도 정신이 기반이라고 해석했다. 해외로 파견된 상사원들, 각국에 나가 있는 외교관 등이 모두 무사도 정신으로 싸워 이겼노라고 평가했다. 이보다 앞서 일본의 조기 개화도 무사도 정신이었으며 이에 따른 서양문물의 도입으로 공업화와 무역입국을 이룩한 과정도 무사정신이 기반이었다고 밝혔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의 일본을 알고 일본을 이길 수 있는 길을 찾는 것도 무사도 정신을 먼저 파악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게 된다. 반면에 조선조 임진왜란이나 한말의 망국과 36년간 식민지배는 무사도 정신에 유린된 결과이니 일본정신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전까지 683년간 무사들이 지배하는 나라로 70여개 집단이 영토분쟁을 일삼아 오다가 전국을 통일한 것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시조이나 부하의 배신으로 일찍 할복자살하고 그의 부하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가 실질적인 통일을 성취했다. 그는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지만 예상보다 일찍 병사하여 에도시대(江戶時代)를 연 무장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참을 인’(忍)의 상징으로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전술 전략가로서 집권 이래 15대, 265년간 통치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일본 근대화의 주역 무사로 개항을 결단한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에서부터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까지 21명의 무사들을 소개했다.
일본 개항의 주역 이이 나오스케는 총리(大老)시절 천황의 칙허도 받지 않고 1858년 미국과 통상조약(日米修好通商)을 체결했다. 또 메이지유신 시절 명 무사로 종횡무진한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는 조선통으로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조선을 경영했던 인물이다.
이들 일본 무사도에는 유도, 검도, 합기도, 가라테 등으로 단련된 강인한 체력과 정신이 기반이라고 한다.

일본인이 좋아한 한국인 최영의, 역도산

일본인이 좋아한 외국 무사 편에는 2명의 한국인이 소개되어 있다. 일본 공수도(空手道) 창시자인 최영의(일본명 오야마 마스다츠) 씨는 1923년 7월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16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항공기술학교에서 가라테를 배우고 학병을 다녀온 후 와세다 대학을 중퇴했다. 최영의는 1947년 교토 가라테 선수권 대회 우승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하여 1952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복싱과 레슬링을 수련하고 귀국 후에는 맨손으로 소 47마리를 격파했다고 한다.
그 뒤 격투기 연구에 몰두하여 극진(極極)공수도를 창설했으며 1994년 70세로 별세했다는 일생이다.
또 한 사람 역도산(力道山, 일본명 리키도잔)은 본명은 김신락(金信洛)으로 1924년 11월 함남 홍원군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가 스모에 입문, 1940년 9월에 처음 무대에 데뷔한 후 일본 레슬링 천하를 제패했다. 그러나 1963년 12월 아카사카 나이트클럽에서 폭력단과 충돌, 칼 맞고 사망했다.
박치기왕 김일 레슬링 선수가 바로 역도산의 제자로 한국 레승링계를 개척했다.
어문학사 발행 2016, 10. 255페이지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8호 (2016년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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