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협회, 수습에서 고참까지
현역기자들의 희로애락 실전 엮어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예나 지금이나 ‘기자정신'
한국기자협회, 수습에서 고참까지
현역기자들의 희로애락 실전 엮어

▲ 한국기자협회 ‘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왜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 제목이 나왔을까 궁금하다. 기자의 일상이란 하루도 빠짐없이 국민생활 속에 살아 있지 않는가. 오래 전에 일이 끝나 무료해진 퇴기(退記) 입장에서 보면 현역기자들은 발전하고 눈부신 시절을 만나 박력과 자신감이 넘쳐 부럽고 자랑스러울 뿐이다.

신명과 자부심의 기자 시간은 빠르다

한국기자협회(회장 정규성)가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도서출판 포데로사, 2016.8)라는 제목을 선택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수습에서 고참에 이르기까지 기자세계의 희로애락이 있고 기자정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은퇴한 기자들은 오늘의 기자세계 내면을 충분히 알 수 없기에 세월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기자정신이라도 따로 생겼나 싶어 이 책을 읽고 싶어 한다.
이미 50여년이 지난 굴뚝산업시대에 기자가 됐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기자란 어느 직종보다 치열한 입사경쟁을 거친 우리사회의 최고 인기직업이라는 자부심을 잊지 못한다. 과거 망국(亡國)시절의 선배들은 독립투사처럼 살았다고 들었지만 요즘이야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의 시절이니 옛 무관(無冠)의 제왕(帝王)보다 한층 더 격상하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란 요물로 취재 보도하는 세월이니 얼마나 진보하고 혁신했는가. 새벽 출근, 통금(通禁) 직전 귀가하기까지 순전히 발로 뛴 ‘원시시대’와 비교하면 양반중의 상양반 아닐까.
그때 그 시절, 중노동 기자직이란 법도 원칙도 없이 연중 만근(滿勤) 특근(特勤)이 상습이니 고속, 진보, 혁신의 오늘과는 비교할 가치가 없다. 그렇지만 배고프고 피곤했지만 신명과 자부심으로 살았던 그 시절이 너무나 빨리 흘러 지금 은퇴하고 나니 허무하고 허전한 심정이니 오늘의 현역 후배들이 좋은 세월 만나 마음껏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 부럽고 자랑스럽다고 생각한 것이다.

‘상시전장’ 속의 고뇌들은 타고난 팔자

책 속에 나온 ‘기자들의 사는 법’, ‘위기의 기자들’, ‘그래도 기자다’라는 대목마다 현역들의 삶에도 빛과 그림자가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첨단산업, 첨단기술 시절이니 취재와 보도도 송곳이나 바늘처럼 날카롭고 뾰족하게 콕 찌르는 경쟁일 것이다. 이 때문에 발로 뛴 옛날 기자세계와는 달리 정신노동, 두뇌노동의 강도가 매우 높을 것으로 짐작된다. 더구나 언론자유 속에 신문, 방송, 인터넷 언론 등 경쟁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니 24시간 ‘상시전장’(常時戰場) 아닌가.
어쩌면 첨단시대 첨단장비 요물들의 감시와 견제로 노예처럼 꼼짝달싹 못하는 신세로 사방팔방 압박감을 면할 수 없을 테니 얼마나 고달픈가.
예나 지금이나 수습과 견습시절은 경찰서 기자실의 애환부터 체험하고 고참과의 갈등이 남아 있는 모양이니 기자세계의 직업적 속성은 변할 수 없는가 보다. 고참이라야 여유 있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따로 있을까. “기자는 나이로 일하는 게 아니야”라는 대목이 고참들의 뒤통수를 치는 장면으로 연상된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기자세계의 시간은 너무 빨라 수습도 금방 고참이 되고 마는 원리다.
데스크의 고뇌도 옛과 달라진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기사 고민, 후배와의 소통문제는 본업의 기본 속성이라고 이해하지만 요즘도 데스크 입장에서 회사 경영을 곁눈질해야 한다니 언론산업의 오랜 병폐다. 경쟁이 심한 언론산업의 저성장, 저수익이 문제로 다소 불가피한 측면이 있겠지만 저널리즘과 수익성과는 독립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장시간 중노동은 기자직 속성의 올가미

‘주 5일제 언감생심’ 대목에 느껴지는 항목이 참으로 많다. 찬반 논란 속에 도입된 주 5일제 근무가 보편화됐지만 ‘상시전장’ 언론의 승부세계는 고통스럽지만 언감생심이 맞는 말이다.
법정근로시간, 근무환경 등을 이유로 집단 시위하는 것은 세칭 귀족노조 ‘노동권력’들의 몫이라고 체념하고 넘어갈 수 있는 항목이다. 옛날 기자들은 장비와 재능이 모자라 자진하여 노동시간을 늘려 보충하고자 휴일이나 공휴일에도 뛸 수밖에 없어 주 7일 만근했다. 그렇다고 오늘의 현역들이 주 5일제를 누리지 못하는 처지가 당연하거나 옳다는 말은 아니다. 기자직의 기본 속성의 올가미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사실이야 너무 안타깝다.
한창 신명을 바칠 30~40대 중견들의 이직과 전직이 많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이는 언론산업의 인적자산 관리가 잘못 됐거나 기자 스스로 능력과 용기가 있어 선택했거나 결코 바람직하다고 동의하기는 어렵다. 옛 기자시절에도 도중에 전직하여 교수, 연구직, 기업 임원과 CEO 또는 정치권과 문화계로 진출하여 성공한 모델이 적지 않았지만 반면에 실패한 사례도 많았다고 기억한다.
‘위기의 기자들’ 편은 징계와 해고가 일상화 됐다는 내용이니 불쾌하게 느껴진다. 노사간 단협과정의 말썽으로 이런 사태가 빈발하는 모양이지만 언론계의 노사관계가 일반산업과는 달라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간절하다. 6.29 선언 이후 노조의 투표를 거쳐 편집국장을 지낸 쓴 경험을 안고 있기에 기자세계가 노사관계로 징계나 해고를 당하는 경우가 빨리 없어지기를 소망한다.

‘그래도 기자다’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언론자유시대에 ‘소송에 시달리는 기자들’의 고통도 예사롭지 않고 언론산업 저성장 속에 ‘영업에 내몰리는 기자들’ 편도 속상하는 대목이다. 기자들의 딱한 처지와 독자들의 권리주장, 언론사의 경영문제가 겹쳐 이런저런 생각이 많지만 현명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어중간한 조언 밖에 할 말이 없다.
기자직의 과로(過勞)는 사실상 타고난 팔자로 사전 각오가 필요하다. 두뇌노동이 육체노동보다 고강도로 기자들의 수명이 일반인들보다 짧다는 통계는 과거에도 나왔었다. 결국 중노동과 과로 속의 건강관리는 기자직을 천직으로 선택한 이상 자신의 몫이라고 수용해야 한다고 본다.
‘기자라고 얘기하니 소개팅에도 나오지 않더라’는 경우는 상대가 고약한 사람 아닐까. 또 ‘저녁 데이트는 먼 나라 이야기’도 딱하다고 위로는 할 수 있지만 스스로 극복해 내는 재주로 처리할 사항이라고 본다.
‘그래도 기자다’ 편이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대목이다. ‘살아있는 권력’, ‘자본권력’, ‘숨은 권력’과의 투쟁이 괴로운가, 부담스러운가. 기자이기에 담당해야 하는 사명감과 자부심 아니고 무엇인가. 기자직의 본업이 싫다면 포기할 수 있지만 아무리 벅차고 힘들어도 보람 있는 길을 기피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기자직을 통해 스페셜리스트가 속출하고 있다는 사례가 일부 소개되어 있지만 얼마나 훌륭한가. 기자직이 각 분야 전문가들을 열심히 만나 특정분야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으니 참으로 좋은 직업 아니고 무엇인가. 독자와 시청자들의 눈에 익숙한 스페셜리스트들의 활약에 대해 시중에서 호평이 나오고 있으니 더욱 용기를 갖고 정진하기를 당부한다.

원시시대 패졸기자가 증언한다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다음에는 ‘은퇴한 퇴기(退記)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응답이 나올만 하다.
상전벽해나 천지개벽으로 이야기할 만큼 그때와 지금은 세월과 시대가 너무 달랐다. 지금보다 박봉에다 무제한 노동시절 기자들은 담배 피우며 손으로 원고를 작성했다. 사전이나 옥편을 옆에 두고 한자나 영문을 찾고 연도(年度)나 통계를 일일이 찾거나 문의해 가면서 기사를 써야만 했다.
1960년대 초 편집국 낡은 책상 위에는 재떨이와 성냥이 준비되어 있고 잉크와 철필에다 등사용지 이면지에다 기사 쓰고 해설, 초점, 사설 쓸 때야 200자 원고지를 사용했다. 원시시대 손으로 쓰는 기사가 오늘의 컴퓨터기사와 비교하여 노동 강도가 낮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석간신문 마감 11시 30분은 너무 엄중하여 다급하게 쓴 난필을 교정부팀이 와서 “도대체 무슨 글자냐”고 따지고 조금 지나면 때 묻은 손의 식자공(植字工)이 올라와 “오늘 신문 안 낼 작정이오”라며 혼을 빼가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초판이 인쇄되어 나오면 죽다가 살아난 기분이지만 탈오자가 나타나고 경쟁지와 비교하여 낙종이 발견되면 밥맛이 싹 가신다. 마감 전후 호통소리들, 데스크의 상습 눈총에다 경쟁지에 패한 낙망감으로 찾아갈 곳은 퇴근길의 막걸리집 밖에 어디 있는가.
죽기살기로 뛰고 뛰었지만 일선 취재시절 경쟁지에 이긴 경우가 며칠일까. 늘 전쟁에 지고만 패졸(敗卒)의 신세로 통금 직전 귀가했다가 다시 새벽 6시 출근하며 근로시간, 근무환경, 휴일, 휴가를 어찌 생각할 겨를이 있겠는가. 그러다가 어느 날 데스크, 국장 거쳐 논설위원하며 정책토론회, 외부특강, 방송외도(外道) 몇 차례 하고 나니 정년퇴직이라 지금은 할 일 없는 퇴기(退記) 노인으로 현역 후배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지켜보는 신세다.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한마디로 기자정신으로 산다고 응답하는 것이 오직 한 가지 단일 정답이라고 믿는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7호 (2016년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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