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의 선도역
미래 먹거리 디자인

글/ 나경수 (사) 전자정보인협회 회장

디자인(Design)은 건축·공업제품·복식(服飾)·상업미술·산업미술 등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조형 작품의 설계와 도안을 말한다. 오늘날에 와서는 일반 가전제품, 홈 인테리어 등 폭넓게 우리생활 주변에 자리 잡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 영향력은 크게 파급되어 나갈 것으로 예측된다.
실용 생산품의 기능적 형태에 조형적(造形的) 디자인을 가미하기 위한 운동이 있었는데, “디자인 운동”(design 運動)이었다. 19세기 말 영국의 모리스(W.Morris) 등의 공예 부흥운동으로 비롯되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미술·공예 양식인 아르누보(Art Nouveau)에 이어져 점차 산업 디자인으로 발전하였다.
모리스(William Morris: 1834~96)는 영국의 시인·공예가·사회주의자였다. 중세를 예찬하고 수공예에 의한 장식 미술을 우리의 일상 속에 살릴 것을 제창하였다. 켈름스코트 인쇄소를 설립하여 활자(活字)·제책(製冊)에 크게 기여했는데, 작품에 이야기 시로 분류되는 ‘지상 낙원(地上樂園)’이 있다. 작품에 ‘시야’와 ‘불의 설교’ 등이 있는 미국에서 1910년에 태어난 소설가 모리스(Wright Morris)와는 다른 인물이다.
오늘날 디자인은 그 범위가 무진장으로 확장되어 사회의 모든 부문 곳곳에 그리고 우리 생활과 주위에 꽉 들어 차있다. 따라서 우리들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디자인은 약방의 감초를 넘어서 핵심으로 ICT(정보통신기술)확산에 촉매제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정보기술(IT)의 전파는 물론 한국 경제발전의 추진 동력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디자인 산업은 모든 분야, 정치·경제·문화·예술·기술·상업 따위를 융합·발전하여 대외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귀중한 툴로써 응용할 필요성이 충분히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과 서비스산업 그리고 산업을 연결하여 가치 창출을 진작하여 창조경제에서의 일자리 창출과 저성장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좋은 모멘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창조 경제가 선도적이고 리더형으로 탈바꿈하는 계기로 삼아 디자인 산업을 한 차원 높여 개발·응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종래의 협의의 디자인을 시급히 라이프스타일·패션·엔터테인먼트·콘텐츠·디바이스 등 범위를 확대하여 모든 산업에 공히 응용할 수 있는 부문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창조와 혁신에 기반을 둔 우리 경제에 밑거름이 될 수 있고 강력한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 우리의 강점인 소프트 분야에 계속 정진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산업의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는 디자인 즉 “디자인 자산(Design Assets)”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만능의 디자인’을 빠른 시일 내에 정비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만능(萬能)의 디자인(versatile design)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10가지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이를 ‘디자인의 십계(十誡; the Design Decalogue)’라 한다.
첫째, 역동적(力動的; dynamic)이어야 한다. 힘차고 활발하게 움직여야 한다. 자연계의 근원은 힘이며, 힘이 모든 것의 원리라고 주장하는 역본설(力本說)에 근거한다. 일명 다이너미즘(dynamisim) 혹은 역동설이라고도 하는 이 설은 데카르트의 기계론에 반대하여 제창되었다.
둘째, 창조적(創造的; creative)이어야 한다. 새로운 예술작품 따위를 만들려는 의욕이 넘쳐야 한다. 생명은 물질의 기계적인 질서에 의해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충동인 “생명의 비약(飛躍)’에 의하여 진화해가며, 거기에 새로운 발전으로서 창조가 이루어진다.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H.L. Bergson)이 주장하는 서적 ‘창조적 진화(創造的 進化)’에 연유한다.
셋째, 심미적(審美的; aesthetic) 이어야 한다. 미(美)를 살펴 미의 본질을 밝히고 구현하는 안목, 곧 심미안(審美眼)이 있어야 한다. 칸트의 용어로 미적 판단력(美的判斷力)이 있는데, 합목적성(合目的性)의 쾌(快)·불쾌(不快)의 감정에 의하여 주관적으로 포착될 때의 반성적(反省的) 판단력을 말하는데, 이는 목적론적 판단력과 대비된다.
넷째, 편재적(遍在的; ubiquitous)이어야 한다. 사방에 두루 퍼져 있어야 한다. 한곳에 치우쳐 있으면 안 된다(偏在). 기독교에서 말하는 편재론(遍在論)이다. 이 우주의 일체의 사물에는 예외 없이 예수의 힘이 편재한다.
다섯째, 혁신적(革新的; innovative)이어야 한다. 묵은 조직이나 제도·관습·방법 등을 바꾸어 새롭게 하여야 한다. 종래의 관습·조직·방법 등을 바꾸어 새로운 방향을 지향하는 입장이나 사고방식을 고집하는 혁신주의(革新主義; progressivism)에 충실하여야 한다.
여섯째, 인간적(人間的; humanistic)이어야 한다. 인간다운 성질이 있는, 곧 인간적인 따듯한 마음씨와 소탈하고 다정다감함이 배어 있어야 한다. 인간은 세계 및 일체(一切)의 세계에 발생하는 것의 중심이며 궁극(窮極)의 보는 세계관, 곧 인간 중심주의(人間中心主義; anthropocentrism)이어야 한다.
일곱째, 교훈적(敎訓的; instructive)이어야 한다. 가르치고 타이르는 것이다. 앞으로의 행동이나 생활에 지침이 될 만한 것이 배어 있어야 한다. 동시에 지식을 부여하고 개인의 능력을 신장시키기 위하여 가르치고 지도하는, 이른바 교육적(敎育的; educative)일수록 바람직하다.
여덟째, 환경친화적(環境親化的; environment-friendly)이어야 한다. 생물이나 인간을 둘러싸고 직접 혹은 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인 환경은 우리 인간들의 보금자리이며 영원한 터전인 것이다. 자연환경이나 생활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갖가지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대기와 수질의 오염, 환경 파괴 등을 적극 막아야 한다. 또한 인간이 건강한 생활을 하기 위해 주위 환경의 보전 또는 꾀하는 일을 사회적인 노력으로 유도하여야 한다.
아홉째, 사회공헌적(社會貢獻的; society-oriented)이어야 한다. 사회는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생활의 총칭이다. 가족·마을·조합·교회·계급·국가·정당·회사·협회 등은 그 주요 형태이다. 운명이나 생활을 같이하는 조직체, 곧 공동체에서는 상부상조하여야 한다.
열째, 공감적(共感的; synesthetic)이어야 한다. 공감은 남의 의견·감정·생각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이다. 서로 공감하는 공감대(共感帶)가 형성되어야 한다. 상대방의 마음이나 감정을 밖에서 지적(知的)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느끼는 그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상대의 마음에 깊이 느끼어 일어나는 흥취, 감흥(感興)이 일어나야 한다.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디자인은 종래의 좁은 틀 속에 묶여 넓은 세계를 못 보고 있다. 오늘날 저성장, 저출산의 ‘뉴 노멀’의 시대를 탈피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시급한 디자인 산업의 육성이다. 한국 경제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지만 많은 부분을 수출하고 있는 중국과의 앞으로의 미묘한 관계라 할 수 있다. 다행히 중국은 아직까지 소프트분야에서 한국에 뒤지고 있다. 저성장 기조가 국내외적으로 깊어지는 뉴노멀(new normal)시대에서 한국 기업의 대응 전략과 돌파구인 디자인 분야를 육성시켜 모든 분야와 융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7호 (2016년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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