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톡 최서윤 기자] 국정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 씨의 개입 정황이 포착된 미르·K스포츠재단의 기업 모금 양상이 6년 전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이하 박정희기념관) 건립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더해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지난 2일 광화문에 ‘박정희 동상’ 추진 계획을 밝혔다가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면서 기념관이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박정희기념관 건립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다. 1999년 발족한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은 김 전 대통령이 맡았다. 고문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 초대회장은 고 신현확 전 국무총리가 이름을 올렸다. 시공사는 삼성물산이다.

▲ 서울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내부 모습(사진=경제풍월DB).

◇ 전경련, 2010년 ‘박정희기념관’ 및 2015년 ‘미르·K스포츠’ 모금 주도

2010년 상암동 박정희기념관 건립 당시에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모금을 주도했다. 전경련은 기념관 건립에 추가로 필요한 자금인 400억여원을 만들기 위해 삼성 60억원, LG·현대차·SK·포스코에 각 30억원, GS·롯데·현대중공업에 각 20억원, 이외 16개 그룹에 대해 각 10억원 등 기부를 독려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액수는 재계 순위로 책정했다.

공기업인 한국전력(한전)이 10억원을 납부한 것 외에 다른 기업들의 기부 금액은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다. 기업 관계자들도 당시 기부 내역을 알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코노미톡이 확인한 기념관 내부에 설치된 ‘기부금 기탁자 명단’에는 ▲전경련 ▲서울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삼성 ▲LG(엘지) ▲SK(에스케이) ▲현대자동차 ▲포스코 ▲롯데 ▲현대중공업 ▲두산 ▲한화 ▲GS(지에스) ▲STX(에스티엑스) ▲한진 ▲한국전력 ▲KT(케이티) ▲LS(엘에스) ▲현대 ▲효성 ▲풍산 ▲코오롱 ▲영안모자 ▲롯데물산 등이 기재돼 있었다.

국세청 공시자료에 따르면, 2010년 성환옥 씨 등은 270억여원(266억5217만원)을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에 출연했다. 2011년에는 GS건설 2억4천만원, KT 10억원, 코오롱패션머티리얼과 코오롱인더스트리, 영안모자가 각 1억원 등을 출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은 전경련이 800억원을 모금했다. 미르의 경우 ▲SK(68억) ▲현대차(68억) ▲삼성생명(25억) ▲삼성화재(25억) ▲삼성물산(15억) ▲삼성전자(60억) ▲아모레퍼시픽(2억) ▲대림산업(6억) ▲두산(7억) ▲아시아나항공(7억) ▲CJ E&M(8억) ▲대한항공(10억) ▲LS(10억) ▲한화(15억) ▲GS(26억) ▲롯데면세점(28억) ▲포스코(30억) ▲LG(48억) ▲KT(11억)가 돈을 냈다.

K스포츠에는 ▲삼성생명(30억) ▲삼성화재(29억) ▲제일기획(10억) ▲에스원(10억) ▲현대차(43억) ▲SKT(21억5천) ▲SK종합화학(21억5천) ▲LG그룹(30억) ▲롯데케미칼(17억) ▲GS(16억) ▲한화생명(10억) ▲KT(7억) ▲LS(6억) ▲CJ제일제당(5억) ▲이마트(3억5천) ▲신세계(1억5천) ▲두산중공업(4억) ▲부영주택(3억) ▲아모레퍼시픽(1억)이 자금을 댄 것으로 나타났다.

▲ 박정희기념관 내부에는 기부금 기탁자 명단이 기록돼 있다. CJ는 명단에 없었다.

◇ CJ는 박정희기념관에 기부 않고, 현대중공업은 미르재단에 출연 안 해

이들 재단 출연 기업에서 대표적으로 눈에 띄는 기업은 CJ(씨제이)와 현대중공업이다. CJ는 박정희기념관 기부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CJ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영화 ‘변호인’을 배급하고, ‘광해: 왕이 된 남자’ 제작에 참여했다. tvN ‘SNL 코리아-여의도 텔레토비’로 정치 풍자를 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CJ 관계자는 “기업은 투자 대비 흥행성 등을 고려한다. 정치적 의도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이재현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이 불이익을 당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CJ는 박근혜정부에서 어느 기업보다 더 적극적으로 ‘창조경제’를 홍보하고, K-컬처밸리 사업에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박정희기념관에는 기부했지만 미르·K스포츠에는 돈을 내지 않았다. 이를 두고 대주주이자 박근혜 대통령과 장충초등학교 동기인 정몽준 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정 전 대표는 2014년 6·4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고배를 마신 이후 현실정치에서 손을 뗀 상태다. 싱크탱크 중 하나인 ‘해밀을 찾는 소망’도 해체했다.

전경련은 박정희기념관 모금 당시도 미르·K스포츠재단 때와 마찬가지로 “자발적”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경제개발에 기여한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기업들이 기념하기 위해 기부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9월21일 국회 비대위 회의에서 자신의 경험을 들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했다는 데 정면 반박했다.

박 비대위원장에 따르면, 박정희기념관 건립 계획 초기 전경련에서 30억원을 모금했을 뿐, 다른 기업들은 모금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18년간 집권했고, 많은 재벌을 탄생시킨 대통령이기 때문에 200억원 정도는 단숨에 모금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되질 않았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그러다가 박근혜 대통령께서 이명박정부 후반 대통령 후보로 거의 확정적이니까 그때 약 1000억원이 모금돼 현재 상암동 박정희기념관을 건립했고, 지금도 4~500억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것이 재벌이다. 이런 대기업 재벌들이 800억원을 자발적으로 냈다고 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박 대통령도 권력의 부침(浮沈)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기념관은 총 사업비 709억원 가운데 기부금 500억원을 제외한 209억원을 국고로 채우기로 한 바 있다. 하지만 기념사업회 측의 민간 모금액이 100억원에 그치자 2005년 노무현정부는 보조금 지원 결정을 취소했다가 대법원으로부터 패소판결을 받기도 했다.

2003년에 개관한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의 경우 금호아시아나, 영안모자, 풍산, SK텔레콤 등에서 1억원 이상의 후원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최근 5년 동안은 2011년에 ▲천재교육(5천만원) ▲인제대 백중앙의료원(1천만원) ▲하나은행 외(2천만원), 2012년에 ▲천재교육(1억원) ▲하나은행(2천만원), 2013년에는 ▲한화(2천만원) ▲서울시(9100만원) ▲천재교육(1억원) ▲하나은행(1천만원)이 기부금을 냈다.

▲ CJ는 K-컬처밸리 사업에 1조4천억원을 투자하기로 하는 등 현 정부 정책을 뒷받침해 왔다. 최근 이미경 부회장이 청와대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CJ그룹 건물 전경(왕진오 기자).

한편, 국세청이 공개한 기부금 수입 상위 30개 공익법인 현황에 따르면, 재단법인 미르는 연간 기부금 수입이 486억원으로 23위다. 1위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5227억6900만원이다. 미르보다 기부금 수입 상위를 보면 7위 삼성생명공익재단 1167억9900만원, 21위 포스코교육재단 500억6000만원, 22위 삼성미래기술재단 500억원이다. 미르의 기부금 수입은 25위인 삼성문화재단 451억400만원, 28위인 대한적십자사 364억3900만원보다 많은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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