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대통령, 문재인실장의 외교참사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북에게 물어보고’ 정권
노무현대통령, 문재인실장의 외교참사

글/ 이진곤(정치학박사,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전 주필, 전 논설고문)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노무현 정부의 대북 인식과 자세다. 이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노 전 대통령의 대북인식을 분명하게 보여준 바 있다. 그가 ‘NLL 포기’를 명시적으로 선언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화록의 맥락을 보면 의심할 만한 소지가 다분하다.
정상회담에서 북한 김정일은 “서해 북방 군사분계선 경계선을 쌍방이 다 포기”, “그 옛날 선(線)들 다 포기”, “이제 실무적인 협상에 들어가서는 쌍방이 다 법(法)을 포기” 등의 주문을 했고, 노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예, 좋습니다”라거나 “나는 위원장하고 인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라며 동의를 표했다.

NLL관련 국가기록 봉하가서 삭제된 사건의 전례

다른 문제도 아니고 NLL과 관련, 그런 자세를 보인 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나 2013년,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당시 야당과 이른바 진보측은 국정원의 정치개입, 정부와 여당의 비겁한 정치공세, 정치적 모함 등으로 되레 여당을 몰아붙였고, 결국 여론을 무마하거나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문재인 더민주당 전 대표는 새누리당의 NLL 공세가 가열되고 있던 이해 6월 30일 ‘새누리당에 제안합니다’ 제하의 성명을 냈다. 그는 이 성명에서 “국가기록원에 있는 기록을 열람해서 NLL 포기 논란을 둘러싼 혼란과 국론 분열을 끝냅시다, 기록 열람 결과 만약 NLL 재획정 문제와 공동어로구역에 관한 노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입장이 북한과 같은 것이었다고 드러나면, 제가 사과는 물론 정치를 그만두는 것으로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이에 앞서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목전에 이르렀던 12년 12월 17일 동인천역 유세에서 “제가 그 회의록을 최종적으로 감수하고, 그것을 정부 보존 기록으로 넘겨주고 나온 사람입니다. 앞으로 북한과 대화할 때 참고 하라고 이 정부에 넘겨주고 나온 사람입니다”라고 했었으나,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대화록은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지 않고, 노 전 대통령이 봉하리 사저로 가져간 이지원(e知園) 시스템에 담겨 있다가 삭제되었다. 이를 검찰이 복구함으로써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국정원본이 정확하다는 게 입증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전 대표가 책임을 진 적은 없다.

송민순 전외교 회고록의 폭로사건

문 전 대표는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에 대해 아주 포용적인, 그러면서도 상당히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사드 배치와 관련, 그는 ‘공론화’, ‘국회비준’, ‘배치 절차 잠정 중단’을 주장 혹은 요구해 왔다. 사드 배치를 국민적 논란 속에 밀어 넣고, 야당이 장악한 국회의 비준을 거치게 함으로써 무산시키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야권 인사들이 입버릇처럼 내놓는 처방이 있긴 하다. 북핵문제는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화란 상대가 있어야 성립된다. 뻔히 알면서도 그런 처방만 되풀이해서 내놓는 것은 북한의 처분에 맡기자, 북한 김정은 일당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자는 말이나 다를 바 없다.
이처럼 북한에 대해 유화적인 입장으로 일관해 온 문 전 대표의 남북관계 및 대북 인식을 유추할 수 있는 정책 결정 과정의 일단이 밝혀졌다. 노무현 정부 때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 총장이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2007년 11월 21일 유엔은 대북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때 대한민국은 기권했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북한 김정일 폭압집단의 반인권적 작태에 대해 경고하는 결의안이었다. 2천 수 백만 명의 북한 동포들이 한줌도 안 되는 김정일 일당에 의해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당하는 현실에 대해 우리가 분노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그런데도 ‘민족공조’를 강조하던 진보정권은 오히려 압제자 편에 섰다.
같은 달 16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 주재로 북한인권 결의안에 대한 입장을 정하는 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날 저녁 송 전 장관은 A4 용지 4장에 만년필로 자신의 생각을 담아 직접 편지를 써서 밤 10시쯤 대통령 관저로 보냈다.
“지난해 우리는 처음으로 이 결의안에 찬성했고 그때도 북한이 소리만 냈지, 실제 자신들이 필요하면 수시로 우리에게 접근해 왔습니다. 이미 우리의 주도로 결의안 내용을 많이 완화시킨 것도 북한이 알고 있습니다. 기권할 경우 앞으로 남은 기간 비핵화를 진전시키고 평화체제 협상을 출범시키는 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막막합니다.”

북측에 물어보고 표결 기권결정한 정권

노 전 대통령은 18일 저녁에 다시 장관들을 소집했다. 주무장관인 외교장관이 그토록 찬성하자고 하니 비서실장이 다시 회의를 열어 의논해 보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이때 김만복 국정원장이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의 의견을 직접 확인해 보자고 제안했고 다른 세 사람(이재정 장관, 문재인 비서실장, 백종천 안보실장)이 찬성했다고 그는 기억한다. 20일 저녁 대통령 숙소에서 백 전 실장이 그날 오후 북측으로부터 받은 반응이라며 쪽지를 건넸다.
“역사적 북남 수뇌회담을 한 후에 반(反)공화국 세력의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북남 관계 발전에 위태로운 사태를 초래할 테니 인권결의 표결에 책임 있는 입장을 취하기 바란다. 남측의 태도를 주시할 것이다.”
유엔의 대북 인권결의안은 총회 제3위원회에서 ‘찬성 97, 반대 23, 기권 60’으로 통과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노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기권했다. 당시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저녁 늦게 송민순 외교장관과 백종천 안보실장이 대북결의안에 대해 보고해 노 대통령이 기권 방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남북 정상회담 등 최근 남북관계 진전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했다.
북한 정권의 인권유린 범죄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경고를 담는 결의안 찬반 여부를 결정하기에 앞서 북한 측에 의사를 물어봤고, 그 결과에 따라 기권을 했다는 것이다. 이게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관계 진전 상황’을 고려했다고 하지만 정상회담이 없었던 2003년(표결 불참), 2004년(기권), 2005년(기권)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해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정상회담 자체가 문제였다. 임기를 5개월도 채 남겨 놓지 않은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열어 ‘10·4남북공동선언(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라는 것에 합의하고 서명했다. 북한에 대한 광범위한 경제 지원이 수반되는 선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말에 다음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약속을 기세 좋게 북한과 한 것이다. 말하자면 대못을 박은 셈이었다. ‘NLL 포기’ 논란도 그 정상회담에서 비롯됐었다.

"왜 대통령에게 부담주나, 기권으로 하자"

송 전 장관의 이 같은 회고에 문 전 대표는 동문서답식의 반응을 보였다. 그는 지난달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노무현 정부에게서 배워라’ 제하의 글을 통해 “송민순 전 장관의 책을 보면서 새삼 생각한 것은 노무현 정부가 참으로 건강한 정부였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중요한 외교안보사안에 대해 “항상 내부에서 찬반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거쳤다”며 “(박근혜 정부는) 노무현 정부에게서 배워라”고 주문하기까지 했다.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앉아 ‘치열한 토론’을 하든 ‘한담’을 하든 결론은 뻔한 것일 텐데도 그는 천연덕스레 그런 말을 한 것이다. 만약 북한의 의사를 물어보고 결정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런 것까지도 배우라는 뜻이었는지 궁금하다.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자 야당 정치인들은 말 그대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기세로 봐서 이번에도 문 전 대표 보호 작전은 성공할 듯하다. 말재간이나 말싸움에서는 여당이 야당의 적수가 못되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의 결정이 내려졌던 그 시기에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으로 있었던 더민주당 김경수 의원은 기자회견을 갖고 문 전 대표가 결의안 찬성 의견을 냈었다고 주장했다. 또 “기권을 먼저 결정하고 이 사항을 남북정상회담 직후 남북 간 다양한 대화가 이뤄지는 시점에 북에 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유엔의 결의안 표결이 있기도 전에 우리정부의 입장을 북한 당국에 먼저 알려준 것이 옳았다고 하려면 충족돼야 할 전제 조건이 있다.
그 때 남북 사이에 가로놓인 휴전선이 걷혀 있었던가. 남북 양측의 대군은 무장해제를 한 상태였는가. 북한은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을 완전히 포기하기로 했었는가. 북한은 김씨 3대의 사이비 신정체제를 해체하고 인민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한다고 선언했는가.
그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주요 대북정책을 북한 당국과 의논하거나, 우리 측 방침을 알려준다면 그건 종북 정도가 아니라 ‘이적행위’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문 전 대표의 측근과 야당의 주요 인사들은 당당하기만 하다. 여론을 돌려놓는 일에는 자신이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해 11월 15일의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송 전 장관이 “찬성·기권 의견을 병렬해서 대통령 결심을 듣자”고 하자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은 “왜 대통령에게 그런 부담을 주나. 기권으로 건의하자”고 만류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그렇다. 북한의 의사에 따라, 그리고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기권을 결정했는지, 아니면 ‘치열한 토론’의 결과였는지는 두 사람이 대답해 줘야 한다. 그게 국민에 대한 도리다. 그렇지 않은가.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7호 (2016년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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