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게 물어봤으니… ’ 노무현 말 솔직정황

▲ 전 외교부장관 송민순의 외교회고록.

‘차기’ 자격기준 제1순위
북핵대응 확고한 이념
송민순 회고록, 색깔론 아닌 국민생존권
‘북에게 물어봤으니… ’ 노무현 말 솔직정황

노무현 정부의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기권방침 결정과정에 북한 의견을 물어봤다는 증언이 여야의 첨예한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못마땅하다. 이 문제를 ‘색깔론’, ‘종북타령’, ‘안보장사’로 덮어씌우려는 기도는 말이 안 된다. 북핵 엄중상황에 대북정책 이념이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의 자격기준 제1순위로서 대한민국 국민과 국가의 생존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기억이 안 난다’로 덮을 사안인가

노무현 정부의 외교장관 송민순 씨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가 지난 2007년 11월 유엔 표결에 앞서 관계장관회의에서 찬성과 기권으로 갈라지자 김만복 국정원장의 제의로 북측 의견을 들어보자고 했고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이 이에 동의했노라고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씨는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하고 “저 문재인이 가장 앞서가니 두려워서…”라며 색깔론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송 장관은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진실은 어디 가지 않는다”는 말로 단호하게 응수했다.
북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가장 엄중한 시기에 내년 대선을 향한 잠룡들의 언행이 정치권을 요동시키고 있는 시점에 이보다 더 중요한 쟁점이 있을 수 있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중 보여준 대북정책의 연장선에 서 있는 문재인 전 실장으로서는 이에 대한 명백한 입장을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할 상황인데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한마디로 해결될 수 있는가.
문재인 전 대표가 차기 대선주자로 가장 앞서가기에 두려운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지만 국민의 입장에선 행여 북한에 대해 지금껏 굴종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지 않느냐는 여부가 가장 관심일 뿐이다.

왕조시대 상소문 심정으로 대통령께 편지

‘빙하는 움직인다’는 회고록 속에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노 정권 안보정책 라인의 종북 언행 정황이 소상하게 드러나 보인다.
2007년 10월 3일은 평양에서 노무현, 김정일 남북 정상회담, 11월 14~16일은 서울서 한덕수, 김영일 남북 총리회담, 이 기간 중인 11월 15일은 청와대에서 유엔 결의안 관련 안보정책조정회의가 열렸다. 이재정 통일부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백종천 외교안보실장, 문재인 비서실장 및 송민순 외교장관 등 5인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송 장관은 결의안 찬성을 주장했으나 다른 참석자들은 기권을 주장했다. 그들은 북한인권 결의안이 곧 북한체제에 대한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송 장관은 “찬성과 기권을 병렬하여 대통령의 결심을 받자”고 했지만 문재인 실장이 “왜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나, 기권으로 하자”고 주장했다.
다음날 16일에는 노 대통령이 북측 총리회담 대표들을 초청 오찬을 마친 뒤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방금 북측 대표와 오찬 함께하고 인권결의안 찬성하자면 ‘참 그렇네’라고 의견을 개진했다. 이때 김만복 국정원장이 “남북채널을 통해 북측 의견을 확인해 보자”고 제안하자 문 실장이 ‘그래’라고 동의했다. 당시 남북대화 채널은 국정원에 설치되어 김 원장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송 장관은 ‘왕조시대 상소문(上疏文)을 올리는 심정’으로 A4용지 4장 분량의 대통령께 바치는 편지를 만년필로 써서 올렸다.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은 인권정책을 넘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추진동력을 얻는다. 지난해(2006년) 결의안에 찬성할 때 북한이 소리를 냈지만 그 뒤에도 수시로 접촉해 왔다”는 요지였다.
노 대통령이 이 편지를 읽고 “외교부가 여러 나라를 설득하여 결의안 내용을 완화시켰는데 기권하면 민망하고 찬성하면 남북관계에 영향을 줄 위험”이라는 심정을 드러냈다. 이어 대통령이 다시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재검토해 보라고 지시하여 일요일인 11월 18일 ‘서별관회의’가 열렸지만 송 장관에게 “이미 결정된 사항을 자꾸 문제 삼느냐”고 따지는 기류였다.

북에 물어보지 말고 찬성, 장관사표 받을까도…

11월 19일은 노 대통령이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싱가포르로 출국하여 송 장관과 백 실장이 수행했다. 이날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조중표 외교차관을 만나 결의안 찬성을 요청하는 미국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11월 20일, 싱가포르에서 노 대통령이 송 장관을 숙소로 불러 “북한한테 물어볼 것 없이 찬성투표하고 송 장관 사표를 받을까도 생각했었다”는 심정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유엔 표결에 찬성하여 국제사회에 대한 체면 살리고 장관 해임으로 북측 체면도 살리는 고육지계를 검토했지만 북에게 물어봤으니 그냥 기권으로 갑시다”라고 말하고 “사표 낼 생각은 마세요”라고 솔직하게 당부했다는 내용이다.
천호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정부의 결의안 기권 방침을 공식 발표했고 유엔은 97개국의 찬성으로 북한인권 결의안을 가결했다.
이로써 한국정부는 2003년 결의안 불참, 2004년 기권, 2005년 기권, 2006년 찬성, 2007년 기권 등으로 ‘왔다 갔다’하며 방황한 진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그 뒤 2008년 이명박 정부 때는 공동제안국으로 찬성했다.
송 장관 회고록 출간을 계기로 사전에 북측 의견을 들었는지, 그냥 기권입장을 통보했는지를 두고 정치적으로 첨예한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꼴사납다. 당시 노 정권의 대북라인이 몽땅 친북 종북성향의 언행을 국민 앞에 보여줬으며 심지어 솔직 담백한 노 대통령이 “북측에 물어봤으니…”라고 언급한 대목이 너무나 진솔하게 들리지 않는가.
이런 관측에서 보면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보다 이재정 통일부장관, 김만복 국정원장이 기권방침 결정을 주도하고 문 실장이 이를 수용한 모양새로 느껴지기도 한다.

남북정상회담 추진과정 북에 끌려다닌 정황

송 장관은 2007년 8월 3일 평양 남북정상회담 추진과정에서도 외교라인은 철저히 배제되어 그 뒤 한미관계상 외교손실을 겪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은 7월 말에 북측과 날짜 조율을 끝냈지만 송 장관은 8월 8일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에서 처음 듣고 말았다. 이 때문에 송 장관이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 전화로 이를 통보할 때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썼다.
또 10.4 남북공동성명 초안에 ‘3자 또는 4자 정상의 6.25 종전 선언’ 추진 문구를 보고 송 장관이 놀랐다. 3자면 정전협정에 서명한 미국, 중국, 북한을 뜻하니 한국을 배제시키자는 의미다. 이에 송 장관이 문 실장에게 ‘3자 또는 4자’ 대신에 ‘직접 관련 당사자’로 바꿀 것을 요청하자 문 실장이 “김정일이 지시한 사항으로 변경의 여지가 없다”는 북측 입장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국 남북정상회담 추진과정이나 공동성명 채택까지 북측에 끌려 다닌 정황이 너무나 뚜렷하지 않는가. 노 정권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하여 대북 굴종식 저자세로 일관하지 않았느냐는 관측이다.
송 장관은 2005년 11월 17일 경주 한미정상회담시 부시 대통령이 “대북 압박정책에 한국과 중국이 가담해야 한다”고 강조하자 노 대통령이 “쌀과 비료가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고 증언했다. 그 뒤 2006년 10월 9일은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감행하며 1시간 전에 중국에 통보하자 후진타오 주석이 전화로 부시 대통령에게 이를 통보했다.
그렇지만 미국정부는 한국정부에게 이를 알려주지 않아 한미관계의 불편함을 드러냈다. 북의 핵실험 다음날 버시바우 미 대사가 우리정부에게 “금강산 관광 등 현금유입 통로 차단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PSI)에 동참해야 중국에게 대북압박을 요구할 수 있다”는 미국정부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나 노 정부는 “금강산 관광의 현금유입 규모가 소규모이라 이를 차단해도 효과는 별것 없고 국내적으로 문제만 유발시킨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이들 모두가 노 정부의 한미관계 불편에서 가져온 외교적 손실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으로 이해된다.

차기 유력주자이기에 엄중 검증 필요

송 장관 회고록 내용을 여야가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 특정 차기 대선주자의 흠결로만 악용하려는 기도도 옳다고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는 당시 노 정권의 역대 통일부장관과 주적(主敵)앞에 굽실굽실하고 눈웃음 친 모습을 드러낸 국정원장 등의 성향과 유엔 결의안 관련 사전에 북측 의견을 듣겠노라고 제안했다는 회고록 내용과 거의 일치하지 않느냐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대선에 출마한 바 있고 차기 대선 유력주자로 앞서가고 있기에 그의 대북관련 과거 행적이나 이념 및 지금의 신념, 이념 등이 국민 앞에 떳떳하게 검증받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믿는 것이다. 문 전 대표가 이를 색깔론이나 종북타령, 안보장사 쯤으로 덮고 넘어가려는 자세를 보인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강조한다.
엄중한 북핵 위협 앞에 한치라도 종북성향을 버리지 않고 국민의 눈을 속이려 하지 말고 스스로 진실을 말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7호 (2016년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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