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정우택 의원.

[경제풍월 최서윤 기자] 여권 잠룡 중 한 명인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은 요즘 본의 아니게 고해성사(?)를 하고 다닌다.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장 재임 당시 통과 시킨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과 관련해서다.

애초 청탁금지법은 공직사회의 부조리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자 만들어졌다. 이 법을 둘러싸고 소비심리 위축 등 각종 우려가 제기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등이 반영돼 지난달 28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정 의원은 사실 이 법의 시행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미풍양속이 있어 현재의 문화와 조화를 이루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해서다. 또 서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통과에 신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정 의원의 판단은 들어맞았다. 제자는 교수에게 캔커피를 줬다가 친구로부터 신고를 당했다. 김영란법 1호 재판의 대상은 경찰관에게 떡을 주며 고마움을 표시한 민원인이 됐다. 스폰서검사, 벤츠검사 등 고위공직자의 부정비리를 근절하고자 도입한 법이 취지와 다르게 서민들에게 적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는 찬바람까지 불고 있다.

정 의원은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서민경제가 위축되고 있는 만큼,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금액은 허용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농어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농·축·수산물 등에 대해서는 금액의 한도를 반드시 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까지는 제공이 가능하다지만 적용범위를 놓고 여전히 해석은 제각각이다.

다음은 정우택 의원과의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인터뷰 일문일답.

- 작년 정무위원장 재임 때 김영란법이 통과 됐다. 통과 시킨 당사자인데 지금 주장은 좀 다른 것 아닌가.

“내가 김영란법 통과 주역이라는 것은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통과 전부터 법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고 얘기했다. 우리에게는 미풍양속이 있다. 그래서 우리 문화와 관행에 맞춰 김영란법이 정착하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봤다.

또 하나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다.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니 통과 시키는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부정부패에 방점을 찍었다. 대통령도, 언론도 그랬다. 그 때 통과를 안 시키면 나는 부정부패 방조의 원흉으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문제점을 지적한 뒤 통과시켰던 거다.”

- 청탁금지법 시행 후 논란이 된 사건을 보면 과연 문제가 되나 싶은 것들이다. 캔커피, 떡, 케이크 등을 선물하거나 나눠 먹다가 신고 당하고. 인터넷 댓글만 봐도 ‘잡으라는 큰 도둑은 안 잡고 엄한 사람만 잡는다’는 비아냥거림도 있더라.

“그 때 우려한 문제점이 지금 현실화 돼서 나타나고 있는 거다. 지난 9월 대정부질문에서 황교안 총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경제, 사회적으로 부작용이 많은데 정부가 어떻게 대처를 할 거냐고. 이에 총리는 9월 28일부터 시행은 그대로 하고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고치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답변했다.

법은 이미 시행됐으니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 내수침체 문제, 특히 농축수산물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간 사회상규와 다르게 너무 엄격하다. 우리 사회는 인정사회다. 인간의 정을 느끼는 사회인데 너무 삭막해졌다. 이에 대해서는 여론과 많은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서 고쳐나가야 할 거다.”

- 김영란법 1호 재판 대상이 조사시간을 변경해준 경찰관에게 떡을 보낸 민원인이 됐다. 경찰서에 범죄자들만 조사받는 것도 아니고, 사정을 고려해 시간을 변경해준 경찰관에게 4만5000원 상당의 떡을 선물했다가 날벼락을 맞게 됐다.

“그 얘기를 페이스북(페북)에 올렸다. 그동안 사회상규상 관행처럼 주던 선물이 직무관련성으로 김영란법에 따라 자칫 처벌을 받게 됐다. 물론, 직무관련성이 있어도 5만 원 이하의 선물은 허용하고 있어 어떻게 결정이 될지는 모른다. 난 이것이 범죄행위라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페북에도 무죄가 나지 않을까 하고 여러분의 생각을 물어본 거다.

김영란법은 스폰서검사, 벤츠검사 등 고위공직자의 비리와 부정청탁을 막기 위해 시작된 법이다. 그런데 선량한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면 되나. 하루빨리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혼선을 줄여야 한다. 청렴한 공직사회를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올렸다.”

- 무죄가 난다고 해도 소송이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경찰서나 검찰을 드나들면 심리도 위축되고. 권익위원회에서 지침을 준다고 해도 기자들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문제는 김영란법에 대한 수천, 수만 개의 사례가 존재한다는 거다. 과연 이 사례가 법에 어긋나는지를 모든 시민이 판단해야 한다. 이 법을 주도한 이성보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판사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도 생각해봐야겠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일반 시민들도 이 법 적용에 대해 행동할 때 일일이 물어보고 확인하고 해야 한다. 이건 우리 법의 실효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 청탁금지법 시행에 대해 일반적인 여론은 사실 나쁘지 않다. ‘이 기회에 부정부패를 척결하자’ 이런 반응들이 많고.

“우리가 말하는 것은 부정청탁이다. 부정청탁에 대한 처벌조항은 형법에도 이미 있다. 기존에 처벌을 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부정청탁이나 금품수수에 대해 형법에 적용돼 있는데 이를 더욱 강화시킨 거다. 우리 사회를 청렴하게 만들자는 기본 취지는 좋다. 문제는 우리 현실과 이 법이 괴리가 있다는 거다. 요즘 대학생들은 각자 내는 더치페이를 많이 하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생활은 다르다. ‘내가 정말 저 사람한테 고마운 게 있으니 밥 한 끼 먹자’ 이런 미덕이 없어지는 거다.”

- 세계 경기 불황에 국내 경기도 안 좋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더 많은 식당이 문을 닫고 있다는 통계도 나온다. 경제는 순환해야 하잖나. 누군가는 생산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소비하고. 당장 화훼농가부터 울상이다. 가까운 누군가의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도 많을 텐데 단순히 법 적용을 받는 사람들을 향한 비난과 막연한 분노는 장기적으로 볼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비싼 식당은 힘들지만 가격이 싼 식당은 장사가 잘 된다고 하더라. 그런데 내 주변을 보면 그렇지 않다. 김영란법에 맞춰 메뉴도 새로 개발하고, 3만 원 이하로 가격을 낮췄는데 손님이 없다. 사람들이 만남 자체를 꺼려한다. 1차는 누가 내고, 2차는 누가 내고 이런 부분에 대한 해석도 분분해서 아예 안 만나는 거다. 그러니 사회통념상 미풍양속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은 허용해 줬으면 한다.”

- 예컨대 사람들은 가격이 싼 구내식당에서 먹는다고 하면 김영란법의 순기능만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최근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구내식당의 대기업 참여를 지난 1일부터 허용했다. 이에 따라 삼성웰스토리, 현대그린푸드, 신세계푸드, CJ프레시웨이 등 대기업은 물론이고 LG유통에서 분리된 아워홈, 풀무원계열의 ECMD, 동원홈푸드, 본푸드, 한울F&S 등 중견기업들이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영란법, 어떻게 해야 하나.

“김영란법을 통과 시킨 주역으로서 비난은 감수하겠다. 당장은 아니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금액을 조정하자는 얘기가 많이 나올 거다. 권익위가 해석을 너무 엄격하게 하고 있다.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 국회도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법을 일부 개정해야 한다. 농축수산물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중소기업 제품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여론을 살피고. 선량한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김영란법의 취지를 잘 살려 제대로 정착시켜야 한다.”

◇ 정우택 의원 프로필.

▲1953년생 ▲경기고 ▲성균관대 ▲행정고시 합격(22회) ▲경제기획원 법무담당관 ▲15, 16, 19, 20대 의원(청주 상당) ▲해양수산부 장관 ▲충북도지사 ▲새누리당 최고위원 ▲국회 정무위원장 ▲더좋은나라전략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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