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풍월 최서윤 기자] 추석 연휴를 앞두고 CJ CGV 등에서 개봉한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을 보면 판사 앞에서 검사와 변호사, 방청객들이 기립했다가 앉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장면은 ‘밀정’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닙니다. 실제 재판장이 법정에 입정하면 법원 경위가 방청객들을 향해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앉아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1994년 이전에는 “일동 기립”, “착석”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왜 판사 앞에서 일어서야 하는지 궁금증을 갖고 있습니다. 판사가 일방적으로 인사를 받는 것이 권위적으로 비쳐지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 사진=영화 '의뢰인' 스틸컷.

결론부터 말하자면 판사 앞에서 기립하는 것이 법으로 강제된 사항은 아닙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경제풍월과의 통화에서 “이는 오래 전부터 관행처럼 이어져온 것으로 법원 내규 등에 정해진 사항은 아닙니다. 일어서지 않았다고 해서 감치 같은 처벌을 받는다는 얘기는 더더욱 오해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도 판사 앞에서 기립을 합니다. 이는 법관 개인에 대한 인사가 아니라 사법부에 대한 존중과 존경의 의미로 해석됩니다. 여기에는 재판 시작 전 분위기를 정돈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의혹과 막말 판사에 대한 지적이 제기된 지 오래이고, 최근에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김수천 부장판사가 구속되면서 법조계 윤리불감증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이쯤 되니 사법부를 과연 존중하고 존경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지 의문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결국 지난 6일 양승태 대법원장은 ‘현직 부장판사 구속’이라는 사태가 벌어진 데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김현아 대변인은 8일 “법조계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조직으로 거듭나야 합니다”라고 말했고,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전면적인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이 시작돼야 합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국회에서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을 위한 논의도 오가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 법조인의 일탈 행위로 인해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나머지 법관들의 사기가 꺾여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2003년 당시 서울시 도시개발공사(현 SH공사)가 소외계층을 상대로 제기한 건물명도 소송을 담당한 곽용섭 판사는 자신이 체납금을 부담하겠다면서 원고에게 소 취하를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사법부의 온정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 지난 4월1일 대법원 강당에서는 신임 법관 74명에 대한 임명식이 열렸다(사진=대법원).

최근에는 판사가 일방적으로 인사를 받기만 하지도 않습니다. 나승철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요즘은 판사들도 방청객들에게 목례를 하거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말을 합니다”라며 달라진 법정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방청석보다 높은 곳에 있는 법대와 한여름에도 입는 긴 법복 등은 사법부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다만 사법부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법부에 대한 존경과 권위를 세우는 것이 ‘존경하는 재판장님’으로 시작하는 변론이나 방청객 인사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자정 노력만이 존경받는 사법부로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대국민사과 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법관에게 청렴성은 다른 기관에 있어서의 청렴성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그것은 법관의 존재 자체와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렴성을 의심받는 법관은 양심을 가질 수 없고, 양심이 없는 법관은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없습니다. 청렴성에 관한 신뢰 없이는 사법부의 미래도, 법관의 명예도 없습니다.”

▲ 법원 내 설치된 법과 정의의 상(왼쪽 위), 자유·평등·정의 각자(刻字), 정의의 여신상 조형물(사진=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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