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安濟 교수, 2,800쪽 생애기록 출판
살아있는 민생역사 깨알처럼 빠짐없이

출생에서 고희까지 70년
진기한 인생백서
金安濟 교수, 2,800쪽 생애기록 출판
살아있는 민생역사 깨알처럼 빠짐없이

▲ 70년 세월을 ‘人間白書’ 로 편찬한 서울대 김안제 교수

살아있는 민생역사라 할까, 보물급 국민기록이라고 할까. 살아있는 70년 세월을 인간백서(人間白書)로 편찬한 진기한 생애기록이 전집으로 나왔다.
토속적 유머와 진솔한 언변으로 4통8달의 인간관계를 쌓아온 고희의 김안제(金安濟) 교수가 자신의 출생에서부터 지금까지 전 생애의 발자취를 한 점 빠짐없이 깨알처럼 기록했다.

2,800쪽의 전 생애기록

김 교수의 인생백서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현재까지 한순간 중단 없이 자신과 가족과 사회 변동사를 국배판 2천800쪽으로 기록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의 생애기록을 넘어 시대역사이자 국민의 기록으로 사료(史料)로까지 이야기될 수 있다.
전집 2천800쪽의 기록량이 얼마큼 부피와 중량이 나갈런지 헤아릴 수 없다. 게다가 시대년표와 활동사진까지 빈틈없이 첨부했으니 철부지 시절에서부터 천성적으로 타고난 역사의식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김 교수는 생애상보를 7개 영역으로 구분, ‘나는 누구인가’라는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발가벗겨 세상에 공개했다. 여기에 남다른 정직과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믿어진다.
출생기원, 가족구성, 생애연혁, 학문업적, 생활편혁, 가계재정, 연합총계 등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실오라기 한 점 걸치지 않은 완전 나체 기록이다. 다시 생애일지에서는 자신과 가족사항과 국내외 발생 사건을 일자별로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출생 이전의 혈통사까지 망라했다.
참으로 진기하고 특출한 이 시대의 기록 문화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경주 김씨 66세손의 탄생

우주는 150억 년 전 빅뱅이란 대폭발에 의해 창생되고 우리의 태양계와 지구는 45억 년 전에 생성됐으며 바다와 육지가 갈리고 한반도의 모습이 드러난 것은 30억 년 전이다.
또 지구에 생물이 생겨나고 400만 년 전 아프리카 빅토리아호 동남방, 현 탄자니아 올두바이 지역에 직립원인(直立猿人)이 출현했으며 100만 년 전에 인류가 유럽과 아시아로 이동해 왔다. 김 교수는 자신의 탄생을 이 같은 시간과 공간의 형성 기원으로까지 끌어올렸다.
국조 단군왕검이 백두산 아래 고조선을 건국한 것이 기원전 2333년이었고 경주 김씨 시조가 경주에서 태어난 것이 65년이었다. 단군에서부터 4,269년 뒤, 경주 김씨 시조로부터 1,871년 뒤인 1936년 경북 문경에서 경주 김씨 66세손으로 김안제가 태어났다. 그로부터 김안제는 일제, 미군정, 대한민국 시대까지 살면서 오늘에 이른다.
시조로부터 김안제에 이르기까지 직계 선조는 65명, 출생년대로 보면 신라조 28명, 고려조 22명, 조선조 15명이며 평균 수명은 50~59세이다. 또 직계 제왕은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 등 6명이다.
직계 선조 가운데 관직에 오른 분이 55명, 나라로부터 호를 받은 선조는 24명, 거주 지역은 신라 때 경주, 고려 때는 경주, 제천, 개성, 조선조 때는 안동, 광주, 충주, 청주, 문경 등이었다. 선조들의 묘소는 경주, 장서, 개성, 개풍, 제령, 광주, 음성, 용인, 청원, 문경 등지에 분포되어 있다.
김안제 가족은 1965년부터 서울로 옮겨와 살고 있다.

출생, 성장, 가구 장만까지

김 교수는 2남3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평산 황씨가의 장녀와 1966년에 혼인하여 서울에서 장녀, 장남을 낳고 차녀를 미국서 낳았다. 그리고 장녀는 남평 문씨가에 출가 시키고 장남은 성주 도씨가와, 차녀는 탐진 유씨가와 혼인했다.
1936년 김 교수가 태어날 때 신장은 50.3㎝, 체중은 2.7㎏이었으며 20세까지 영양부족으로 발육이 부진했다. 2006년 현재는 신장 170.6㎝, 체중 67㎏이며 혈액형은 B형, IQ는 135이다. 안경은 68년 9월부터 착용했고 한차례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1936년 출생 당시 부모 소유의 문경 흑덕동 초가는 대지 200평에 건평 55평, 본인이 66년 12월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마련한 양옥은 대지 30평, 건평 12평이었다. 지금은 강남구 역삼동에 대지 137평, 건평 97평의 2층 양옥에서 거주한다.
개인 승용차는 82년 3월 마크 V 이코노미를 처음 구입했다가 4번 교체하여 지금은 에쿠스 350을 타고 있다. 가제도구는 64년 8월 라디오, 66년 3월 선풍기, 68년 1월 전화기, 69년 4월 TV, 78년 7월 냉장고, 88년 7월 침대, 88년 9월 자전거, 95년 8월 팩시밀리, 2004년 5월 휴대폰 구입 등으로 발전했다. 또 골프채는 82년 10월 중고품을 구입했고 팩시밀리와 휴대폰은 선물로 받았다고 기록했다.

생애 활동시간과 수면시간

김 교수의 70년 생애 총 시간은 61만3천632시간, 이중 학교수업 직장근무 11만3천640시간, 혼자 공부하거나 연구, 집필 12만7천946시간, 회의 자문 행사 등 사회봉사 3만4천963시간, 휴식, 식사, 위락 14만158시간, 수면 19만6천925시간으로 쪼개 썼다. 그동안 섭취한 음식물은 광물류 8종, 식물류 138종, 동물류 110종 도합 256종이다.
김 교수의 인격은 가정, 학교, 직장, 군대, 종교, 사회집단, 독서 등을 통해 형성됐으며 근원적으로 성선설(性善說)에 가깝다고 인식한다.
1945년 4월 초등학교 입학에서 76년 8월 27일, 미국서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31년5개월간 순 수학시간만 26년6개월이었다. 문경서 초·중 등교, 안동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문리대, 행정대학원, 미국 신시내티대학원 도시계획석사, 지역경제학박사 등 학위 4개.
훈련은 미 국무성 유학 프로그램, 통일원, 중앙정보부, 새마을운동 중앙연수원, 민주평통 자문회의, 해외개발공사, 자동차운전학원 등을 거쳤으며 초등, 고등학교 정교사, 국제운전면허 등을 취득했다.
훈장은 1980년 보국훈장 천수장, 93년 새마을 근면장, 99년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상장과 표창장 13개, 감사장, 공로패 65개 등 도합 81개를 받았다.
일생동안 거쳐 온 경력은 군복무, 민중서관 사원, 수도사대 부속여고 교사, 서울대 전임강사, 정교수, 학과장, 연구소장, 환경대학원장, 정책과정 주임교수,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 등. 이밖에 대한국토계획학회, 지방자치학회 회장, 문경중 총동창 회장, 교육부, 건교부 자문, 심의 위원장, 대통령 직속 지방이양추진위원장, 경북도청 이전추진위원장, 건교부 중앙도시계획위원,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집필 원고량 12만8천매

연구실적은 저서 26권, 논문 799편, 연구보고서 133권 등 도합 958건, 집필 원고량은 200자 원고지 기준 12만8천351매로 집계된다.
학술발표는 기조발표 82회, 주제발표 113회, 사회 298회, 토론 112회, 초청감사 18회 등 도합 623회, 특별강연 777회, 연설 및 인사 633회, 보고설명 91회 등 총 1천501회에 이른다. 또 신문게재 187회, TV 출연 109회, 라디오 출연 73회. 70년간 강의 수강생 1만9천52명, 개인조교 27명, 논문지도 1천593명.
개인 활동으로는 단체가입 57건, 임원취임 87건, 시, 비문 작문 50건, 주례 160회, 받은 연하장 9천164장, 국내여행 2천63회, 해외여행 352회, 방문국 52국, 총 여행거리는 162만1천716㎞로 지구둘레 40바퀴, 지구와 달 사이 2회 왕복한 거리에 해당된다.
취미생활은 어릴 적 숨바꼭질, 구슬치기, 재기차기에서 술, 담배, 볼링, 골프에 가창, 영화감상 등 다양. 70년간 매년 담배 301갑, 술 303병 마시고 노래 10곡 부르고 소설 23권 읽고 영화 25편 감상했다.

자녀 혼인 축하객과 부조금

수입은 전반 35년 총 수입 8억6천980만원, 총 지출 8억7천741만원으로 761만원 적자, 후반 35년은 총 수입 118억2천만원, 총 지출 110억2천900만원으로 7억9천만원 흑자.
70년간 총 수입 누계 126억9천100만원, 총 지출 누계 119억696만원.
1993년 1월 장녀 결혼식 축하객 1천503명, 2천년 4월 장남 결혼식 축하객 940명, 2천4년 차녀 결혼식 축하객 940명.
73년 12월 어머님 장례, 75년 11월 아버님 장례 조문객은 모두 312명, 부조금은 132만원.
89년 2월 국토도시계획학회 상금 500만원 중 식사대접 등 180만원 지출, 99년 서울시문화상 1,000만원 상금 중 장학금 기증과 식대 대접비로 700만원 지출. 97년 1월 회갑기념집 출판기념회 축하객 754명, 수입 1억4천만원, 지출 1억640만원으로 흑자 3천500만원.

겉은 약간 어수룩한 양반

초범(草凡) 김안제 교수의 인생백서를 끝까지 읽기가 너무나 벅차다. 도대체 연구, 집필, 발표, 외부활동 등으로 평생 분초를 쪼개 생활해 온 노교수가 언제 무슨 열정으로 이만큼 엄정하고 세밀한 인생기록을 쌓을 수 있었을까. 우리네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대외활동에서 김 교수와 원탁에 함께 앉아 토론하거나 그의 특강을 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으로 특이한 분이라고 느꼈다. “괴짜 교수님 아니시냐”고 농을 걸어 보기도 했다.
역발상이라는 말도 김 교수에게 적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옆길을 찾거나 뒤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유머스럽지만 뼈가 꽉 들어차 있는 특유의 역발상 해법이다.
회의나 토론의 분위기를 금방 살려 심각한 대화를 왁자지껄한 사랑방으로 옮겨 제물에 대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이끄는 인품이다.
몇 해 전 김 교수는 스스로 “김안제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인생 수상집을 발간했다.
여기에서 “나의 겉은 약간 어수룩한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물이 너무 깨끗하면 고기가 살지 못하고 집안이 너무 청결하면 재물이 모이지 않는다. 사람도 너무 말끔하고 까다로우면 사람이 모여들지 않는다. 속은 꽉 차되 겉은 약간 어수룩한게 좋다”
김 교수는 “사람들이 나를 그렇다고들 한다”는 유머로 자신을 홀랑 벗겼다.
김 교수는 이 수상집을 통해 “그동안 얻어먹은 식사와 술과 골프와 선물 및 국내외 여행을 돈으로 환산하면 서울의 60평 아파트 한 채는 될 것”이라고 밝혀 읽는 이들이 배꼽을 쥐고 웃게 했다.
그는 스스로를 복 탄 사람이거나 파렴치한이라고 적었다. 역시 김 교수다운 어법이지만 미리 아는 이들이 킬킬 웃으며 읽으라고 던진 말이다.
금연운동이 한창일 때 “담배 끊으려고 애 쓰면서 죽자고 피웠다. 그저 피울 때까지 피우다 가야겠다”고 능청을 떨었다. 그리고는 ‘한심하고 못 말릴 사람’이라고 자신을 비하시켜 놓고는 스스로 웃는다.
결국 그의 인생 수상집은 평생 높낮음 없이 사귀어 온 친지들에게 마음껏 웃어보라는 이야기였다.

대한민국 국민 기록의 신기원

▲ 김안제 교수의인생백서

초범 김안제 교수가 고희를 맞은 2007년 2월 2일 서울 COEX 컨벤션 센터에서의 인생백서 출판 축하모임에는 ‘김안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모였다. 대다수가 김안제의 인생백서에 이름이 올라있는 이들이다. 함께 자장면 먹고 여행하고 토론한 사람들이 예외 없이 올라있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자치발전연구원장과 건국대 석좌교수로 아직도 생애기록을 쌓고 있는 현역이기에 넓은 그랜드볼룸이 꽉 찼다. 약력 보고, 가족 소개, 백서해설, 축사, 답사 등 모든 절차가 김 교수 분위기로 진행됐다.
그의 인생 70년은 어수룩한 점이 없고 속이 꽉 찼다. 복 탄 사람이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민 기록의 신기원을 남겼다는 소감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90호(2007년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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