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풍월=왕진오기자] 무(無)에 가까운 색을 지닌 대상을 표현하는데 있어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 백지상태를 뜻하는 라틴어 '타블라 라사(Tabula Rasa)'에 주목한 작가 정치영의 개인전이 오는 9월 1일부터 압구정동 갤러리바톤에서 열린다.

▲ 정치영, 'Untitled'. oil on canvas, 89.4 X 130.3cm, 2016.(사진=갤러리바톤)

작가가 포토리얼리즘으로 재현한 천은, 사진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 표현 단계를 넘어서 회화적 요소를 강조한 새로운 형식의 사실주의를 만들어냈다.

무에 가까운 색을 지닌 대상을 표현하는 데 있어 그의 접근법은 대상의 즉물적인 반영과 묘사를 넘어서 정서적 감정을 자극하며 천 너머 존재하는 또 다른 의미를 탐구하도록 만든다.

전시장에 걸리는 작품은 작가가 고대 그리스의 유명 화가 제욱시스(Zeuxis, B. C. 5세기)와 파라시오스(Parrhasios, B. C. 5세기)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찾았다.

제욱시스가 자신의 그림을 덮은 천을 들추자 그림 속 포도 덩굴에 새가 날아와 앉았다. 이어서 제욱시스가 파라시오스에게 천을 들어 올리라고 했지만, 바로 그 천이 파라시오스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마치 솔거가 황룡사 담벼락에 그린 노송도에 새들이 날아와 앉으려다 벽에 부딪혀 떨어졌다는 일화와 비슷할 정도로 작가는 천과 눈속임이라는 모티브를 끌어냈다.

▲ 정치영, 'Untitled'. oil on canvas, 130.3 X 97cm, 2016.(사진=갤러리바톤)

뚜렷한 형체 없이 존재감만을 살짝 드러내는 그 너머 공간은 예상치 못한 대상의 등장 혹은 허무한 결과를 상상하게끔 하는 단서가 된다.

또한 정 작가는 사회에서 자신의 본질을 숨길 수 있는 페르소나로도 천을 이용한다. 가면이 된 천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하면서, 천의 얇고 가벼운 특성은 한 사람의 나약한 인간인 그를 은유하는 주관적인 은유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 정치영 작가.(사진=갤러리바톤)

정치영 작가는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 장치로 천을 활용해 작품에서 자기 자신은 물론 나아가 어지러운 사회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인생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숭고함마저 불러일으키는 정적인 색채와 구겨진 접힘 묘사가 그의 사실주의적 기교 속에서도 추상성을 발휘한다. 전시는 10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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