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고 뒹굴고 나면 허물없다

[골프칼럼(28)]

88올림픽 이후 놀이문화
골프치고 목욕하고
벗고 뒹굴고 나면 허물없다

글 / 장홍열 (한국기업평가원 원장, 전 경기지방공사 사장)

우리가 살다 보면 크던 작던 신세를 진 사람이나 앞으로 신세를 지게 될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에게 작으나마 마음의 정성이 담긴 선물이나 접대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18홀 다섯 시간의 그린 선물

필자 세대들이 현역으로 한참 열심히 일하던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만 해도 접대하면 테니스를 즐기는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우나 목욕을 함께한 후 방석집에서 고스톱을 하거나 술을 마시면서 하루 저녁 즐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88서울올림픽 이후 놀이문화에도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살만하게 되니 자연 건강문제가 직장인들의 화두가 되었다. 술 보다는 골프 한 라운딩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골프 18홀은 접대를 하거나 접대 받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장장 4시간에서 5시간 가까이 공기 좋은 파란 풀밭에서 높은 하늘을 벗 삼아 함께 거닐며 이런저런 세상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쉬운 18홀이 끝난다. 그리고 19홀에서의 맥주 한잔을 곁들인 성찬은 그날 골프 모임의 하이라이트가 된다.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열어놓고 함께할 가까워지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식사를 함께 하는 것, 두 번째는 한방에서 잠을 함께 자는 것, 세 번째는 목욕을 함께 하고 난 후이다. 기업체는 신입사원 연수교육과 부서 간 정기인사 이동을 하고 난 후 먼저 하는 것이 MT를 보낸다.
함께 식사하고 함께 잠자리에서 뒹굴고 함께 욕탕에 몸을 담그는 것이다. 해외든 국내든 골프투어를 하면 이 세 가지를 다 함께 즐길 수 있다. 골프투어를 함께 하고 나면 그 후에는 매우 친숙하게 된다.

벗고 사귀면 평생 친구

인간의 심리란 참 묘한 것이다. 벌거벗은 상태에서 함께 지내고 나면 알고 지낸 기간이 얼마가 되든 간에 더 없이 가까워진다. 러브 스토리도 여자가 욕탕에서 옷을 벗으면 끝이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살 때는 벌거벗고 지내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순수했다.
그러나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먹은 다음부터 자기들이 벗고 있다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고 죄의식을 갖게 된다. 그 후 옷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나뭇잎으로 부끄러운 곳을 가리면서 순수함이 사라진다.
낙원에서 쫓겨난 인간들은 좋은 옷을 만들어 입고 계속 죄를 짓게 된다. 이유는 옷은 몸과 마음의 치부를 가려주는 가면이기 때문이다. 지난날 사내아이들의 백일사진이나 돌 사진을 보면 아랫도리를 벗기고 찍은 사진들이 많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들의 고추를 자랑스러워하는 젊은 엄마들의 잠재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커서 동네어귀에서 모여 찍은 빛바랜 흑백사진 중에는 같은 또래의 사내아이들이 아랫도리를 안 입은 채 고추를 내놓고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제는 이런 낭만마저 거의 사라져버렸다.

골프와 목욕이 이래서 좋다

아주 친한 친구를 봉알친구 또는 불알친구라고 한다. 이는 아랫도리를 벗고 다니며 마음이 순수했던 어린 시절부터 사귄 친구라는 말이다. 서로 아랫도리를 보여줘도 창피하지 않은 오래된 옛 친구다.
어린 시절 친구끼리 아랫도리를 서로 보여주면서 느끼던 묘한 동료의식의 추억이 어른이 되어서 아련히 되살아 나는 곳이 바로 함께 목욕을 하는 곳이다. 따끈한 탕 속에서 몸을 담그면 그렇게 포근할 수 없다. 도원경이 따로 없다. 물속에 있을 때는 원초적으로 돌아간다. 마음을 순수하게 해준다. 벗은 몸으로 플레이 내용을 도란도란 복기하면서 서로 상대방의 좋은 플레이를 칭찬하거나 격려하는 덕담을 주고 받으면 어릴 적 벌거벗고 같이 놀던 봉알친구로 돌아가는 것이다. 골프와 목욕이 그래서 좋은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90호(2007년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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