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명의 노병, 메모리얼 데이 행진

6·25 참전 용맹 무공
잊을 수 없는 미 흑인부대
6명의 노병, 메모리얼 데이 행진

글 / 裵興稷(배흥직) 목사 (안동, 慶安老會 功勞 목사)

6·25 남침전쟁 때 최전선에서 활약한 미국 흑인병사들의 역할을 잊을 수가 없다. 지난 2011년 5월 30일 미국 메모리얼 데이(한국의 현충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참전용사 퍼레이드 때 6·25에 참전한 미 육군 제2 공수 특전부대(레인저부대) 소속 흑인 노병 6명이 참가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2011년 5월 31일자 메트로 섹션 톱기사에 ‘역사를 만들었던 흑인 육군 레인저 부대가 한국전 참전에 대해 뒤늦은 헌사를 받았다’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인종차별 속에 흑인부대 편성

이들 레인저부대 용사들은 6·25 전쟁 기간 중 어느 부대보다 혁혁한 전과를 올렸지만 그동안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퍼레이드를 통해 비로소 예우를 받았다는 요지다.
1950년 당시 미국에는 인종차별이 심해 육군 레인저 부대에 흑인들로만 구성된 중대를 따로 편성했다. 이들은 매우 혹독한 훈련을 거쳐 6·25 전쟁에 투입됐다. 지금은 참전용사 모두가 80세를 넘은 노병으로 퍼레이드 내내 레인저 부대가 역사에서 잊혀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면서 감격했을 것이다.
당시 흑인 병사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입학 등록금이 없어 군대에 지원했었다. 케이프 버드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의 허큘러스 다이아스 씨는 “지독하게 힘든 훈련과정을 거쳤다”고 말하고 부대장은 “어느 누구도 낙오하지 않도록 비상한 각오로 임하라”고 강훈을 지시했다고 한다.
6·25 참전 직후 ‘적진 후방으로 침투하라’는 명령을 받은 다이아스 씨는 부대원들과 함께 1951년 3월 23일, 한반도 38도선 이북 적진으로 낙하산을 타고 침투하여 불과 몇 시간 만에 목표고지를 탈환하는 전과를 올려 아군의 진격을 도운 전공을 세웠노라고 한다.

죽을 때까지 그들의 은공 잊을 수 없다

다이아스 씨는 메모리얼 데이에는 대부분의 베테랑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생각하지만 “우리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전우 레인저 부대원들을 잊을 수가 없다”고 회상한다.
퍼레이드에 참가한 6명의 레인저 대원들은 미국의 5월 찌는 날씨에도 레인저부대 제복과 군모를 쓰고 수시로 땀을 훔치면서 간간히 모자를 벗어 군중들에게 인사했다.
2011년 6월 25일은 6·25 남침 61주년이다. 역사는 무정하게 자꾸만 흘러가지만 참전 세대들은 80을 넘어 아흔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 시절의 삶은 참으로 비참했다. 당시 유엔군의 참전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우리 후손들에게 이들 흑인부대를 비롯한 미군과 유엔군의 참전 공적을 잊을 수가 없는 일이다. 6·25를 맞고 보낼 때마다 다시 한 번 그들의 도움에 감사의 환호성을 하늘 높이 외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4호 (2016년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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