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병 장군, 3선의원 83세 별세

군인 33년, 정치인 18년
온건 화합형 공직상
박준병 장군, 3선의원 83세 별세

▲ 박준병 전 민주정의당 사무총장이 숙환으로 별세한 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 됐다

군 출신 정치인으로 3선 의원과 집권당 사무총장을 여러 차례 역임한 박준병(朴俊炳) 장군이 향년 83세로 지난 3일 별세했다. 고인은 군인의 길 33년, 정치인의 길 18년 등 51년간 공직의 큰 발자취를 남기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영면했다.

학도병 이등병에서 육사12기로 임관

박 장군의 군인의 길은 대전중 5학년이던 1950년 5월 피난지 밀양에서 이등병으로 자원입대하여 학도병으로 출발하여 육군대장으로 전역했다. 당시 자원 학도병 가운데 안응모 전 내무부 장관이 신병 동기로 각별한 사이다.
박 이등병이 병장으로 승진했을 때 대구 육본에서 4년제 육사생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 육사 12기로 임관되어 직업군인의 길로 들어섰다. 임관 후 강원도 화천 북방에 주둔한 국군 9사단 소대장으로 시작하여 베트남전 참전, 각급 지휘관을 거쳐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33년간 복무했다.
현역시절 고인은 박세직 장군, 박희도 장군 등과 육사 동기생 엘리트 쓰리 박(朴)으로 불리며 선두경쟁을 벌여 결국 최고계급인 대장까지 승진할 수 있었다. 정치권 입문은 보안사령관 임기를 마친 후 야전사령관으로 승차할 것을 기대하고 있을 때 전두환 대통령이 출마를 권유하여 고향 보은, 옥천, 영동지구 민정당 후보로 출마, 압승하여 12대 국회부터 3선을 기록했다.

3김정치 파동, 3당 동상이몽 극복

▲ 1985년, 전두환 대통령이 박준병 민정당 당직자 임명장을 수여했다. <사진=국가기록원>

박준병 군 출신 정치는 초선의원 시절 국책조정실장으로부터 집권당 사무총장을 네 차례 역임하면서 3김정치 시대 난기류 속에 온건 화합의 리더십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5공의 정통성 시비와 직선제 제헌론 등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민주화 투쟁 정치 속에 차기주자로 노태우 후보가 옹립되고 있을 때 ‘6·29 선언’으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노태우정부 시절 여소야대 국회가 5공청산을 부르짖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백담사 유배와 국회 청문회 등으로 정국은 좀처럼 수습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때 민정, 민주, 공화당의 3당이 합당을 추진할 때 고인이 추진위원장을 맡아 3당간의 동상이몽을 끝까지 조정하는 역할을 완수했다.
3당합당시 민주당에서는 이기택, 노무현 의원이 끝내 합당을 거부했지만 YS는 민정당 집권하의 차기주자의 지위를 확보했다. 이 과정에 YS가 특유의 밀어붙이기 방식으로 다수파인 민정계와 공화계를 밀어내는 위력을 보여 주었다.
그 뒤 YS는 집권하자마자 군내 하나회 척결, 5·18 소급입법으로 ‘역사바로세우기’에 나서 전, 노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 처벌했다. 박 장군의 경우도 광주사태시 ‘반란 주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됐지만 1심에서 대법원까지 무죄로 혐의를 벗어났다. 당시 5·18 재판에서 무죄선고는 고인이 유일했다.

소급입법에 따른 5·18재판 정치벌

고인은 20사단장 시절 10·26 국변으로 서울출동을 지시받았지만 5·16 당시의 체험을 떠올리며 반대했다. 박 장군은 중위시절 육사요원으로 파견되어 이한림 교장의 신임을 받아 이 장군이 1군사령관으로 전보할 때 전속부관으로 동행했다가 5·16을 만났다.
이한림 장군이 5·16을 끝까지 반대하여 혁명군에 의해 서울 덕수궁으로 압송될 때 전속부관으로 수행, 헌병대에 3일간 구금됐다 석방된 바 있다.
5·18 광주사태시에는 현지로 출동하여 온갖 악성루머가 판을 치는 험악한 분위기 속에 계엄사령부가 자위권 발동지침을 하달했지만 어떤 경우에도 민간인에게 선제사격을 하지 말도록 강력 지시했다. 민간 시위대와 3차례나 충돌사건이 있을 때도 큰 사고 없이 수습한 후 광주 시가지 정리와 외곽 농촌일손돕기로 광주 출동의 임무를 마치고 본 주둔지로 귀환했었다.
고인은 생시에 집권당의 소집명령으로 정치권에 입문하여 초선시절부터 너무나 뜨거운 맛을 보면서 3김정치와 3당 합당과정까지 파란곡절을 겪었노라고 회고 했다. 그리고 5·18재판의 경우 YS의 소급입법에 따른 일종의 ‘정치벌’을 겪은 셈이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50년이 넘는 공직 은퇴 후 오랜 학풍을 되살려 독서와 대학강의로 소일하면서 회고록 ‘군인의 길, 정치인의 길’을 지난 2012년 8월 출간했다. (도서출판 기파랑) 고인은 군시절과 정치활동을 통해 평생의 신념으로 ‘영예는 상관과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라는 군인정신을 잊지 않았노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4호 (2016년 8월호) 기사입니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