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진상은 아직도 전모가 절 밝혀졌다.

[김동길 박사 ‘이게 뭡니까’]


나에게 남아 있는 단 하나
아, 나의조국 대한민국
누구라도 비방하는 자를 증오한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태평양위원회 이사장)

나는 아주 옛날 사람이라 이 문명시대에 아직도 원고지에 볼펜으로 원고를 쓴다. 인터넷에 올리는 ‘자유의 파수꾼’ 2,997장을 그렇게 썼고 오늘도 여전히 펜으로 원고지에 이 글을 쓴다.

3번 생각 끝에 한마디 한다

나도 여러분도 속 뒤집히는 일들을 많이 봤지만 꾹 참고 이날까지 살아왔다. 그러나 참을 만큼 참았지만 더는 못 참겠다고 ‘목에 칼이 꽂혀도’라는 엄포 아래 글을 썼다.
오늘의 한국인에게 커다란 약점이 하나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다. 한마디로 성미가 급하다는 것이다. 한국에 온 외국 관광객들이 맨 먼저 배운 말이 ‘빨리 빨리’이다. 외국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할 때 “제일 빨리 되는 걸 주세요”라고 주문하는 국민이 한국인 말고 또 있을까.
중국의 옛글에 삼사일언(三思一言)이 있다. 말 한마디 내뱉기 전에 세 번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우리는 참지 못해 말부터 해놓고 고생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나도 이제 세 번을 생각했으니 한마디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했기에 내 목에 칼이 꽂힌다 해도 할 말을 하고 말 것이다.

광화문 세월호 천막 철거할 때 됐다

첫째, 광화문 충무공 동상 앞에 콘크리트를 깔고 세워진 세월호 유가족들 텐트는 서울시장이 서울시 치안을 담당한 경찰을 동원하여 즉시 철거해야 한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있지 않기 때문이다.

▲ "사드 성주군 배치" 발표에 따른 성명서를 발표한 성주군. <사진=성주군청 홈페이지 캡쳐>

둘째, 과격시위에 가담하여 경찰에게 폭행을 가하는 사람들은 징역에 처하지 않고는 나라의 치안을 유지할 수 없다. 그런 자들을 번번이 무죄 석방하는 사법부 공직자가 있다면 국민의 이름으로 마땅히 처단돼야 한다.
셋째, 한국에 사드 배치를 결사반대하는 자는 그가 죽더라도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 그가 죽기를 기다리다가 때를 놓치면 우리는 중국의 속국이 되고 말 것이다. 중국은 먼저 북핵을 제거하고 우리에게 사드 철거를 부탁하는 것이 순리이다.
우리는 참을 만큼 참아왔다. 공자께서 “옳은 일을 보고 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見義不爲 無勇也)라고 했다. 나도 ‘용기 있는 노인’처럼 의롭게 살다가 가려한다.

‘너 죽고 나 살자’식 노동운동 안돼

오늘 네 번째는 남들이 말하기 꺼려하는 노조의 불법투쟁을 전적으로 비판한다. “기업이 망해도 노조는 산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이 사람들은 임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 생활이 윤택해 지기를 바라는 조심스런 사람이어야 하는데 언제나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투쟁하니 일반 국민들은 보고만 있으라는 말인가.
나라가 망해도? 정부는 왜 노동개혁을 말만 하고 단행하지 못하는가. 이러다가 우리는 다 죽게 된다.
다섯 번째는 제주 4.3 사태의 엄정한 재평가이다. 국민화합 차원에서 4.3 기념일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 일로 인해 죄 없는 도민들이 목숨을 잃은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한 공비들의 편을 들고 공비토벌에 나선 군인과 경찰을 역적으로 모는 일을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끝으로 광주항쟁에 관해 한마디 하면 5.18의 진상은 아직도 전모가 덜 밝혀졌다는 점이다. 광주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현지로 급파된 국군 특수부대의 잔인무도한 진압현장을 매체를 통해 여러 번 보았다. 만일 국군의 수준이 그렇게 밖에 안 되는 것이라면 국가방위의 중책을 맡길 수 있을까 의심도 생긴다. 그러니 진상의 전모가 더 밝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여

일제 강점기에 중등교육을 마치고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초등학교 교사 자격시험 보고 평남 평원군 영유라는 시골의 괴산 공립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3학년 담임을 맡았고, 몇 달 뒤에 8.15를 맞았다.
학교를 그만두고 평양으로 돌아와 김일성이라는 젊은 소련군 장교가 스탈린의 등에 업혀 ‘왕검성’에 입성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지켜봤다. 그는 소련군의 지시에 따라 인민위원회를 조직하고 적위대(Red Army)도 만들고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감행했다. 우리가족은 일제 때보다 더 잔인무도한 괴물 같은 정권의 횡포를 겪다 못해 38선을 넘어 월남을 결심했다.
막상 월남하고 보니 미군정 하의 남한이 엉망진창이었다. 좌우의 갈등과 대립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정판사 위폐사건’ 등 남로당 프락치들은 사회혼란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1948년 이승만의 선견지명(先見之明)으로 대한민국이 수립됐다. 당시 남한의 민주적 지도자들은 좌우합작이니 남북협상 같은 어리석은 꿈만 꾸다가는 졸지에 적화통일이 되고 말 것을 내다보고 이승만이 서둘러 대한민국을 수립했으니 그들의 현명한 판단이 오늘의 이 나라를 세운 것 아닌가.
6.25를 겪었다. 세계 16개국 젊은이들이 달려들어 인민군을 저지했지만 통일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밤중에 피리를 불면서 달려들어 다시 피난길에 올랐다. 그래도 이승만의 대한민국이 버티어 그들의 남침을 휴전선으로 막아내어 오늘의 이 번영을 가져왔다.
이제 살날이 많이 남지 않아 내게 남아 있는 것은 조국 대한민국 하나뿐이다. 대한민국이 없으면 나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누구라도 대한민국을 비방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는 자는 살려둘 수 없다. 그가 누구이건 한 결 같이 증오한다. 그가 노조원이건, 교사이건, 교수이건 그대로 둘 수 없다.
또 경상도 사람이건 전라도 사람이건 대한민국을 헐뜯는 자는 내 원수이고 대한민국 안에 살려둬서는 안 되는 인간이라고 믿는다. 국민의 70% 이상이 같은 생각이라고 믿는다. 나는 우리들의 승리를 확신한다.

한국의 5.16과 터키의 7.15

▲ 터키에서 15일(현지시간) 발생한 군부 쿠데타 시도가 6시간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사진=채널A 동영상뉴스 캡쳐 20160717>

터키의 군사 쿠데타가 실패했지만 민간이나 군인 사상자가 많았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터키의 국회의사당이 쿠데타 군에 의해 무참히 파괴됐지만 혁명군은 ‘터키의 민주주의를 위한 쿠데타’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터키 국민이 군인들을 향해 ‘노’라고 응답하여 쿠데타가 실패했다.
왜 터키의 7.15 쿠데타가 12시간 만에 실패했을까. 군의 극소수가 가담했기에 실패했을 것이다. 주동자 10여명은 이미 사살됐다고 전해졌는데 군에서도 존경받는 지도자가 나서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군부의 지지를 못 받는 혁명지도자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는 더욱 없는 것이다.
한국의 5.16은 어떻게 성공했을까. 우선 박정희 소장이 군내의 신망 높은 장군이었다. 군 내부에서 “박정희가 주도한 혁명이라면 기대할만 하다”는 인식이 있었고, 무능한 장면정권을 한탄하던 국민들도 새로운 질서를 갈망하던 터이다. 은근히 무슨 새로운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한국역사 5천년에 군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을 기회는 이전에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5.16은 미국을 위시하여 우방국들이 혁명정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5.16정권 18년 막판에는 유신체제, 유신헌법으로 얼룩지고 말았지만 부정부패와는 거리가 먼 정권이었고 경제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여 주변국들로부터 박수를 받게 된 것이 사실이다.
오늘의 박근혜정권은 박정희의 후광을 받아 등장했지만 위기의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게 됐다. 군대도, 국회도, 사법부도, 언론도 대통령 박근혜의 말을 듣지 않는 새로운 현상이 빚어졌다. ‘여소야대’ 국회를 불가피하게 만든 것은 대통령 자신이다. 이제 대통령 자신의 반성이 없으면 정권은 이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 명백하다고 생각된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3호 (2016년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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