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 옛터 표지석·언론기념관 추진
근린공원 조성, 국립한국문학관 유치

▲ 서울시 은평구는 2일 옛 기자촌 부지에서 원로기자 등을 초청해 ‘ 홈커밍데이’ 행사를 열고 참석자들과 ‘ 기자촌 표지석’ 제막식을 가졌다. <사진=은평구청 제공>

7080 원로 언론의 고향
기자촌 ‘홈커밍데이’
은평구, 옛터 표지석·언론기념관 추진
근린공원 조성, 국립한국문학관 유치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 175번지,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옛 기자촌 건립 추진계획 50주년을 맞아 지난 6월 2일 홈커밍 데이 행사가 준비되어 대한언론인회 소속 7080 원로회원 등 100명이 참석하여 그때 그 세월의 추억을 되살리는 기회를 가졌다. 은평구청(구청장 김우영)이 언론단체와 원로 언론인들의 뜻을 모아 준비한 이날 행사는 ‘기자촌 옛터’ 표지석을 제막하고 기자촌 착공에서부터 기자촌 생활을 기록한 사진전을 관람했다.

▲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 175번지,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옛 기자촌

‘기자촌 옛터’ 표지석에 입주기자 명단

이곳 기자촌은 1960년대 말 한국기자협회가 건립을 추진하여 부지확보에서부터 건축공사 인허가 등 어려움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를 거치는 곡절을 겪어 1970년대에 현역기자들이 입주하여 ‘기자촌’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울의 급속한 팽창과정을 거치면서 기자촌이 낙후지역으로 전락하여 지난 2006년 은평뉴타운 지구로 지정되어 기자촌의 옛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은 입구의 ‘기자촌 교회’ 이외 주거지는 ‘진관근린공원’으로 보존되어 있다. 반면에 인근 지역에는 은평뉴타운, 하나고교,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등으로 변모하여 초기 기자촌에 입주하여 살았던 7080 세대의 눈에는 온통 상전벽해이자 천지개벽이다.

▲ 한국기자협회택지조성 기공식 (1969. 3. 29)

이 지역 옛 기자촌부지도 고층 아파트 입지로 꼽혔지만 은평구청이 근린공원 지역으로 고집하여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있어 이날 홈커밍 데이에 참석한 노기자들은 저마다 옛 집터를 가리키며 1970년대의 기자촌 삶의 애환을 회상했다.
은평구청은 이곳 근린공원 터에 언론기념관을 건립하고 국립한국문학관을 유치함으로써 언론인과 문인들을 위한 문화테마파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날 제막한 ‘기자촌 옛터’ 표지석에는 기자촌의 유래와 연혁을 기록하고 초기 입주자들의 명단을 새겨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취재한 기자들의 영원한 고향마을로 보존하려는 정성을 담았다.

산업화·민주화시대 취재생활 애환추억

1960년대 말, 1970년 초의 기자촌은 서울시에서 외진 산촌마을로 야근과 특근이 잦고 통금이 엄격했던 시절 출퇴근 애환이 너무나 많았다. 무악재 고개 넘어 불광동을 지나 연신내에 이르면 버스와 택시가 끊어지기 마련이다. 행여 무교동에서 한 잔 마시고 불광동에서 2차를 거친다면 통금 직전이라 택시 합승을 잡기가 별 따기와 다름없었다.

▲ 기자촌 종점슈퍼

이 때문에 파출소에 끌려가 옥신각신 언쟁을 벌이다 통금 사이렌 소리 듣고 귀가하면 갓 신혼생활 집집마다 부부싸움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 마을로 퍼져 나왔다.
그렇지만 이곳 기자촌 출신들이 경제개발 시대를 취재하고 민주화 투쟁기의 정치무대를 밤낮없이 누빈 경력으로 높은 지위로 출세한 사례도 많았다. 이날 행사에도 초기 기자촌 입주자 가운데 전직 국회의장, 국회의원, 장관 출신들이 참석하고 대학교수와 언론사 사장, 언론기관 대표직을 역임한 명사들도 다수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기자촌 건립 시 진관외리 175번지 산지를 기자촌으로 개발하겠다는 방침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도 군 관계당국의 비토에 시달렸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김원기 전 의장뿐만 아니라 채재욱 전 환경부 장관,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등이 이곳 기자촌에서의 고달팠던 신혼생활 사연들을 회고했다.
대한언론인회 이병대 회장은 은평구청이 이곳에 언론기념관을 건립하면 원로 언론인 단체에게 관리를 위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고 소개하여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작가 100여명의 문학 고향이 은평

옛 기자촌 터 보존과 근린공원 조성과 함께 추진하는 국립한국문학관 유치는 이호철(李浩哲) 원로 소설가가 위원장을 맡아 추진하고 있다. 함남 원산시에서 출생한 이호철 작가는 은평구 불광동 거주 50년의 토박이로 1966년 동아일보에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소설을 장기 연재한 바 있다.
이날 이호철 유치위원장은 1967년 불광동으로 이사 온 후 1971년 종로YMCA 민주수호국민협의회 운영위원, 1973년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 발기인, 유신반대 문학인 시국선언 주도로 보안사에 끌려가고 1980년 DJ 내란음모사건 연루혐의로 군사재판을 받은 고통의 세월을 잠시 회고했다. 그러나 자신의 많은 작품들이 미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중국, 일본, 멕시코 등 세계 각국어로 번역, 보급되어 이곳에 국립한국문학관이 유치되면 외국의 독자들이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호철 씨는 또 1980년 말 은평구 이웃에 살고 있던 박연희, 서기원, 김시철, 이근배, 장용학, 김성한 등 문인들과 함께 ‘은평클럽’을 조직, 지금껏 활동해 온 깊은 인연을 소개했다.
또 여류 소설가 김지연 씨는 1958년 홍제동에 문화촌이 들어선 후 많은 문인들이 불광동, 응암동, 갈현동 등에 모여 살고 1969년 기자촌이 건립되면서 언론인들마저 가세하여 은평문인협회가 결성되어 활동하게 됐노라고 밝혔다. 은평문인협회는 초대 회장 김지연 작가가 10년 장수한 후 지금은 6대 회장 오경자 수필가가 맡아 한국문협 지도부로서 활동하고 있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관장 황평우)은 국립한국문학관 유치를 위한 2016년 기획특별전을 갖고 은평문학이 8~90년대 한국문학의 중심역할을 맡아 왔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숭실학교 출신 윤동주, 김동인, 황순원, 김현승, 문익환 등과 이호철, 최인호, 김광주, 김훈, 신달자, 복거일, 신경숙, 김원일, 서기원, 박범신, 이근배, 김지연 등 100여 명의 문인들이 모두 은평을 고향으로 생각하며 문학터를 개간함으로써 이곳 옛 기자촌 터가 국립한국문학관 입지로 최적이라는 뜻이다.
한국문학 속의 은평전은 지난 4월 19일부터 6월 19일까지 열렸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3호 (2016년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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