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풍월=최서윤 기자] 제주 성산일출봉 게양대에는 세 개의 깃발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얼굴인 태극기, 국제자유도시를 나타내는 제주특별자치도기, 경제발전의 초석인 새마을운동을 상징하는 새마을기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뭔가 이상합니다. 태극기와 제주도기의 끝부분이 심하게 훼손돼 있습니다. 흡사 누가 일부러 칼로 일정하게 그은듯한 모습입니다. 그나마 새마을기는 멀쩡합니다. 내년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임을 인지한 걸까요?

반전이 있었습니다. 게양대 밑을 보니 교체 전의 것으로 보이는 새마을기가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던 것입니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새마을기 끝부분을 보니 두 깃발과 똑같은 모양으로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게양대 구석에 볼품없이 심어진 우리나라꽃 무궁화는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태극기의 경우 훼손됐다면 즉시 교체해야 합니다. 국무총리훈령 제538호 ‘국기의 게양·관리 및 선양에 관한 규정 제17조(국기 게양 관리) 제1항에는 국기를 게양하는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게양된 국기의 깃면 상태를 수시로 점검하여 오염·훼손된 국기는 즉시 교체하도록 하고, 국기게양대 상태를 월 1회 이상 정기점검하여 변색 또는 파손된 국기게양대는 규정에 맞게 보수하거나 교체하여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성산일출봉은 세계적인 관광명소입니다. 이곳은 지난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데 이어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2010년) 받았습니다. 국내 자연생태관광 으뜸명소(2011년)·한국관광기네스 12선(2012년)에 선정되기도 했고, 미국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50선’에도 들어갔지요. 그러다보니 하루 평균 1만 명 관광객 중 ‘유커’라고 불리는 중국관광객들이 절반을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외국인 방문객들이 우연이라도 이 태극기를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요?

제주도청(지사 원희룡) 관계자는 지난 11일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태극기 관리는 도에서 합니다. 다만 도청에서 (성산일출봉이) 좀 멀다보니 산하기관인 한라산연구소에서 자체 관리하고 있습니다.”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원장 이순배)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바닷가라 해풍이 불어 빨리 훼손이 됩니다. 교체 주기는 따로 없습니다. 작년에 교체했는데 금방 닳아졌습니다. 교체하도록 하겠습니다.”

▲ 제주 성산일출봉 전경(사진제공=제주관광공사).

혹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국기 게양에 민감해하는 건 고리타분한 모습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태극기의 위상이 달라진 것은 사실입니다. 지난해 12월 광화문광장에 태극기 상시 게양을 추진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과 난색을 표한 박원순 서울시장간 갈등, 논쟁 끝에 지난달 철거된 롯데월드타워의 초대형 태극기 사건 등을 봐도 태극기가 어쩌다 이런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도 듭니다.

1919년 3·1운동(삼일절)과 1945년 8·15 해방(광복절)을 거치며 우리 민족의 한을 간직해온 태극기.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응원도구로 활용돼 애국심을 극대화 시켜준 태극기. 대한민국의 얼굴이 세계인이 찾는 성산일출봉에서 일그러진 채 바람에 날리고 있다면 이 또한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은 아닐까요?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