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공산’ 빈집에 황소…
‘흙수저’ 반기문 현상
금수저 출신과 대비, 그러나 머나먼 길

글/ 朴美靜 편집위원(박미정 스카이뷰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지난 5월 25일 대통령이 머나먼 아프리카로 순방 떠난 바로 그날 한국에 들어온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은 5박6일 일정을 대선후보처럼 분주히 보냈다. 반 총장은 아이돌스타보다 더 화려한 매스컴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행운’을 누렸다. 그만큼 그의 엿새간 행적은 누가 봐도 대권도전을 염두에 둔 치밀한 행보로 보였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반 총장은 중견기자들과 비공개 회견을 가졌다.

5박6일 방한후 ‘반기문 현상’ 떠들썩

이 기자회견에서 그는 평소답지 않게 ‘격정적 어조’로 ‘대선출마’를 시사했고 깜짝 놀란 기자들은 비공개 약속을 깨고 바로 보도해버림으로써 ‘반기문 대선출마’는 거의 기정사실화 됐고 그 순간 이후 대한민국은 ‘반기문 현상’으로 떠들썩하다. 비정치권 인사가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이렇게 파란을 일으킨 일은 거의 없었기에 매스컴에선 반기문의 행보를 일일이 대서특필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란 이처럼 대단한 것이다. 이 격정적 기자회견 탓에 반 총장이 주최하는 만찬은 40분이나 늦어졌고 아무리 힘없는 ‘전직’들이라지만 일본을 비롯한 외국 전직 정상들과 참석자들은 ‘멍 때리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누구보다도 외교의전에 해박할 반 총장이 ‘지각 만찬’을 가질 정도로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 신경을 썼다는 건 그만큼 그가 ‘차기’에 대해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일 거다.
물론 반 총장 자신은 이런 매스컴의 보도에 과대해석을 제발 자제해달라고 신신당부했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면서 ‘대권행보’로 해석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반 총장은 ‘비공개 개인 일정’의 첫날 충청지역의 오래된 맹주 김종필(JP)을 전격 방문함으로써 ‘대권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해줬다. 이른바 ‘충청 대망론’에 불을 지핀 셈이다. 구순이 넘은 JP는 무슨 이야기를 나눴느냐는 우문에 ‘비밀 얘기’를 했다는 노련한 현답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원천봉쇄했고 최근엔 ‘반 총장이 결심을 단단히 한 모양’이라며 대선출마를 강력히 시사해줬다.

반 총장은 노신영 이현재 한승수 고건 등 80대 국무총리 출신들과 장관 출신, 조선일보 출신 70대 후반 언론인 등 내로라하는 원로인사들을 롯데호텔 최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초청해 ‘구국의 만찬’을 가지기도 했다. 이런 그의 행보는 변명의 여지없는 대선주자의 움직임 그 자체였다 해도 과언은 아닌 듯하다. 이 만찬엔 73세 반 총장이 최연소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무주공산 빈집에 ‘황소 들어온 격’

지난 총선에 완전 대참패를 당한 새누리당은 ‘쓸만한 대선후보들’이 모조리 낙마하는 바람에 ‘무주공산’으로 황폐해져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었다. 대선후보 없는 ‘불임정당’이라는 치명적 약점 탓에 새누리당은 내분에 휩싸일 정도였다. 이 와중에 그야말로 ‘빈집에 황소 들어온 격’ 으로 대한민국 초중고 교과서에 ‘위인’으로까지 소개된 반 총장이 ‘화려한 깃발’을 들고 나타남으로써 새누리당은 모처럼 활기를 되찾았다.
최근 나온 각종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도 반 총장의 약진은 뚜렷하다. 활발한 대권행보가 영향을 미쳤는지 한 조사에서 반 총장은 33%를 얻어 16%를 얻은 문재인과 10%에 그친 안철수를 누르고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바로 얼마 전 여론조사만 해도 문재인이 1위, 반 총장이 2위였었던 걸 감안하면 이번 반 총장의 ‘유사 대선 행보’는 그의 이미지를 높여줬다는 걸 입증했다.
매스컴에선 반 총장을 한때 강력한 대선후보로 꼽혔던 고건 전 총리와 비슷하다는 비교분석까지 해가면서 ‘차기대선’에 도전할 반 총장에 대해 거의 매일 미주알고주알 보도했다. 두 사람은 공무원으로 잔뼈가 굵어온 고위 관료출신이라는 점에선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확연하게 다른 차이점들이 꽤 있어 보인다. 호남과 충청 출신이라는 고향도 다르지만 두 사람의 성향이나 주변상황 등이 크게 다른 것 같다. 무엇보다도 고건 전총리가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으로부터 ‘배척’당한 것과는 달리 반 총장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총애’받고 있다는 점이 하늘과 땅 같은 차이를 보인다.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을 되게 하긴 어려워도 떨어뜨릴 힘은 있다는 세간의 속설도 있듯이 반 총장은 고건과는 ‘출발점’부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셈이다. 작년 가을 유엔을 방문했던 박 대통령은 이틀 사이에 반 총장을 7차례나 면담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만큼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는 얘기다.

대중적 친근감에도 ‘멀고 긴 여정’

더구나 ‘샤이한 B형 스타일’ 고건과는 달리 ‘저돌적 O형 스타일’ 반기문은 ‘권력의지’도 훨씬 강한 편 같다. 그렇기에 반기문과 고건은 이 점에서 무엇보다도 다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선후보로서 권력을 쟁취해내려는 정신력’면에서도 두 사람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어차피 ‘대권’이란 ‘차려준 밥상’을 얌전히 받아먹는 게 아니라 피 튀기는 투쟁 과정을 이겨내야 한다는 점에서 반기문에겐 고건에 비해 ‘야생성’이 좀 더 있어 보인다. 유명 부친을 둔 고건이 ‘금수저 출신’인 반면 평범한 집안 장남인 반기문은 ‘흙수저 출신’이라 파이팅 정신의 강도가 다르다. 잘생긴 귀공자 이미지의 고건이 대중성이 약한 반면 반기문은 수수한 외모에 대중적 친근감을 주는 강점을 갖췄다. 대선후보에게는 ‘대중성’이야말로 득표율의 바로미터인 점을 감안한다면 반기문의 온유해 보이는 인상이 대중에게 먹혀들 것 같다.
어쨌거나 반 총장 말대로 아직 유엔 총장 임기가 6개월이나 남아있고 내년 12월 대선까지는 ‘길고 긴’ 여정이 남아있기에 반기문 총장 앞에는 ‘비단길’만 깔려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벌써부터 젊은 20~30대 층에선 이번 반 총장의 대권행보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반기문이 보여준 엿새간의 ‘대권 행보’를 놓고 볼 때 적어도 새누리당 차기 후보 자리에는 누구보다도 한 발 앞서 다가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다 죽어가던 새누리당’으로선 반기문의 화려한 대권행보 덕분에 강력 대선후보가 있는 정당으로서 회생의 기회를 가지게 됐다는 점에서 ‘반기문 추대론’마저 슬며시 고개를 든다는 풍문도 떠돈다. 물론 민주정당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반기문 대선 후보 확보’는 적어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겐 현재로선 강력하고도 한시름 놓은 유효한 카드로 보인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3호 (2016년 7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