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파” 그 오해와 진실

작년 2014년 4월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란 비극적 사고로 인해 실종자 및 희생자 유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이 큰 슬픔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들에게 있는 것처럼 여론이 조성되어 갔다. 그때까지 세월호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던 대다수의 교인들은 어느 날 갑자기 1천4백만 기독교인(가톨릭포함)은 물론, 선량한 국민들이 얼굴을 돌리는 이상한 집단이 되고 만 것이다.
그 엄청난 사고가 교회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많은 언론들도 핵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면서도, 그 사고와 304명 사망 및 실종의 원인이 마치 구원파라 불리는 기독교복음침례회와 그 대표라고 추측하는 유병언 전 세모 그룹 회장에게 씌우는 본질 희석의 고전적인 방법 “간첩단사건” 식 보도에 맞추느라 혈안이 되었었다.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책임이 있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벌써 일 년 반 이상이 지났지만 실제 사고 선박과 관계가 있는 실무자 몇 명 외에는 아무에게서도 책임을 물을 만한 일을 찾지 못한 상태이다. 이에 대해 생각이 있는 몇몇 언론사들은 자성의 소리를 높였다.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내용이다

< 현직 방송기자들이 세월호 참사 보도를 성찰하는 보고서를 냈다.
전국 58개 방송사 소속 기자 2700여명이 가입해 있는 ‘방송기자연합회’는 최근 재난보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등을 담은 <세월호 보도 저널리즘의 침몰>이란 제목의 230쪽짜리 보고서를 냈다고 6일 밝혔다. 이 단체는 지난해 6월 ‘재난보도 분과위원회’를 만들어 세월호 보도를 둘러싼 논란을 정리해 왔고, 이번 보고서는 그 최종 결과물이다.
이들은 세월호 보도의 문제점으로 △사실 확인이 부족한 받아쓰기식 보도 △비윤리적·자극적·선정적 보도 △권력 편향적 보도 △본질 희석식 보도 △누락·축소 보도 등 5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받아쓰기식 보도의 대표적 사례로는 ‘전원 구조’ 오보가 꼽혔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구원파’ 보도는 대표적인 ‘본질 희석 보도’로 꼽혔다.
이들은 이런 보도가 이뤄진 원인으로 △기자 개인의 취재윤리 약화 △정치권력 등 외부 간섭 △방송사 간부들의 권력 편향 △기자 집단의 저항정신 실종 등 4가지를 꼽았다. 보고서는 세월호 이후 저널리스트의 자세에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특히 지난해 언론 5개 단체가 공동 제정한 ‘재난보도준칙’이 현장에서 지켜지고, 기록되어야 한다고 했다.
김OO 기자 tra**@hani.co.kr >

이로 인하여 교회신도들의 사생활은 물론 계열회사들과 여기에 종사하고 있는 근로자들이 입은 불명예와 영업의 불이익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이에 대한 대응은 기껏해야 잘못된 내용을 삭제 또는 정정보도해 달라고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신청을 하는 것밖에 없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수개월간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와 유병언 전 회장과 관련된 보도는 무려 85,000건에 달했다. 우리는 보도된 내용을 전수 조사 하여 오보라고 판단된 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신청을 하였는데 그 건수가 무려 16,117건에 달했다. 이 숫자는 언론중재위원회가 발족된 후 가장 많은 신청건수였고 중재위가 1년간 처리하는 건수의 몇배나 되는 막대한 양이었다. 그중에 각 언론사로부터 245건(2015년 9월 25일 현재)의 정정 및 반론 보도문을 받아냈는데, 이것은 가로 세로 3, 4센티짜리 작은 정정보도가 아니라 중재위의 결정에 따라 정식으로 해당언론 매체에 기사화하여 사과형식의 정정, 반론, 삭제 등의 중재를 이행케 한 것이었다. 원칙상 오보의 횟수만큼 정정 및 반론보도를 해야 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하여 245건의 정정 및 반론보도로 대체하고 15,000여 건의 기사에 대하여는 언론사와의 합의를 통해 해당기사를 삭제 혹은 수정, 하단에 정정 및 반론보도를 게재하는 식으로 처리하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소위 언론들은 엉터리기사의 비빔밥이었고 받아쓰기 복사기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이러한 결과들을 얻었지만 이미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각인된 부정적인 이미지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기록으로라도 남겨 다음에 다시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인지 약 10개월 전 세월호 사건 일주년이 되었을 때, 그처럼 요란스럽던 “구원파, 유병언 때려잡기” 보도는 자취를 감춘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의 사명은 복음 전파에 있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에 대하여 잘못 알려져 있는 부분들에 대하여는 최선을 다하여 바로 알려야할 책임을 느낀다.

1.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구원파”)는 어떤 교회인가?

보도 내용을 읽으면 여객선 사고의 책임이 마치 “구원파라고 하는 기독교복음침례회와 유병언 전 회장에게 있는 것처럼 그 이름이 가장 많이 거론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사고책임의 급한 불을 끄려고 사고선사의 선주를 찾은 모양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유병언 전 회장은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난 지 십여 년이 지났고 선사의 회장도 아니고 그 회사의 주식은 단 1주도 갖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선주도 아니다. 만일 선주라고 하더라도 사고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일 터인데 (전 세계적으로 그런 예가 없다고 함) 그처럼 온 나라가 시끄럽게 ‘구원파와 유병언 때려잡기’에 열광하는 것은 참으로 알 수 없는 무엇이 있었지 않나 의구심을 일으키는 일이다. 사고의 책임에 대해서는 선사 실무자들과 관련 감독기관 외에는 밝혀진 것이 없고 아직도 재판이 진행 중이니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된다. 그렇다면 왜 그 화살이 교회와 유병언 회장에게 쏟아지게 된 것 일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우리를 향한 중오심의 폭발과 오해는 우리 교회의 성격과 그 걸어온 발자취를 독자들께 알려드린다면 이해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유병언 전 회장은 교주가 아닌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전신인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를 이끌어 온 평신도이자 성경강사이고 경영의 멘토일 뿐이다. 현재까지의 오보들과 오해들의 발단은 지난날의 우리의 역사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 다음에 설명하는 내용을 관심 있게 읽어준다면 진실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1)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시작

기독교복음침례회 교회는 별난 교회가 아니다. 일반 개신교 기독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 우리의 유일한 교리는 신구약 성경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신조로 요약한 내용인 사도신경을 구체화한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라는 12항목의 교리가 교단설립 정관에 명시되어 있다. 본 교회가 설립된 것은 1960년대 초이지만 그 믿음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2000년 전 오순절 초대교회의 시작으로 갈 수 밖에 없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시작된 그리스도의 복음은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에 세속화 되고, 또 거듭 변질되었으며 결국 16세기에 들어 종교개혁을 거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약 100년 전에 우리나라에 기독교의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고 많은 교파들이 생겨났다.
1960년대 초, 대구의 대한예수교장로회 목사였던 권신찬 목사는 네덜란드의 선교사 길기수 (Keith Glas) 씨를 초청하여 집회를 했는데 그의 집회 설교에서 “여러분 거듭난 경험이 있습니까?”라고 하는 강한 외침에 권목사는 충격을 받아 자기의 신앙을 돌아보는 기회가 생겼다. 그러던 중 어느날 주일 교회설교를 준비하던 중에 다음의 성경구절에 부딪치게 되었다.

로마서 3:21-2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라는 말씀이었다. 그는 평소 예수를 믿고 의롭게 살려고 최선을 다하면서도 양심에 부족함을 느끼는 갈등과 목회생활을 하면서, 오랫동안 마음속에 쌓였던 율법과 현실적인 신앙생활 사이의 괴리에서 고민해 왔다. 그러다가 위의 로마서 말씀에서 사람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의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믿어짐으로서 마음의 갈등이 해결된 것이다. 그날 그는 하루 종일 미친 듯이 “내 죄 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 뒤 ...”(찬송가 210장) 찬송을 부르는 아버지를 보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딸은 크게 걱정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그는 목회생활 10년 만에 거듭난 체험을 하고 변화되었다. (자서전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99쪽) 그 후 성경에 나오는 세례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산다.”는 뜻을 가진 침례(浸禮)라는 것을 알고, 장로교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물을 뿌리는 세례가 아닌 물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를 받았다. 이 일로 장로교회의 헌법에 위배된다고 해서 장로교회의 목사직에서 면직되었다. 이로 인해 자유로운 복음 전도자의 길을 가게 된 그 무렵 그는 또 다른 장로교회 20대 청년이었던 유병언씨를 만났다. 자유로운 화가의 생활을 하던 유병언씨는 젊은 나이에 신앙생활과 현실과의 갈등으로 고민해 오던 중 역시 같은 네델란드 선교사 길기수씨의 집회설교를 듣게 되었다. 마태복음 22장 1-14절의 말씀이었다.

22:8-12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 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이 말씀을 듣는 중에 예복은 사람의 율법적인 행위가 아닌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 그리스도의 (義)임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예수그리스도의 속죄를 깨닫고 의의 옷을 입고 거듭나”는 경험을 한 그는 미국의 또 다른 선교사 딕 요크 씨가 운영하는 선교학교에서 평신도 전도인의 훈련을 받았다. 그 후 유병언씨와 권신찬 목사는 함께 ‘평신도복음선교회’(기독교복음침례회의 전신)라는 이름을 가지고 전도인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그들 주변에 날로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늘어났다. 그들이 전한 것은 “구원”과 “거듭남”이었다.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단어이고 기초적인 교리이다. 그런데 그처럼 새로운 반응을 일으킨 것은 전하는 사람들도 놀랄 정도였다. 사실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 이래 여러 개신교회의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개인적으로 거듭난 경험을 한 분들이었다. 시작은 모두 다르지만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 승천 후 오순절 성령강림에서 시작된 “주님의 몸된 하나의 교회” 안에서 같은 구원의 복음을 전해 온 분들이다.
본 교단도 역시 그 옛날 개혁자들처럼 인간이 쌓은 행위와 공로가 있어야 하나님께 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속죄함을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단순한 복음을 전했을 뿐이다. 우리는 인간이 믿으려고 노력하는 의지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그 모든 것 위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성령의 도우심을 경험해야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이러한 경험은 어떤 특별한 사람만의 경험이 아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엡 2:8)의 말씀대로 믿으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선물은 공짜여야 선물인 것이다.

2) “구원파 이단”의 발단

1970년대 초 권신찬 목사와 유병언 씨가 함께 대구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대구를 떠난 권신찬 목사는 인천에 있던 국제복음방송국(극동방송국 전신)에 방송목사로 초빙되어 “은혜의 아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설교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청취자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국제복음방송은 대 공산권방송으로 우리말 방송을 비롯해서 중국어, 러시아어, 영어 등 4개 국어로 복음을 전하는 방송을 했다. 우리말 방송은 주로 대북 복음방송이지만 청취자의 반응은 거의 알 수 없는 상태였고 정 남북 지향성 중파방송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북쪽의 정 반대 방향인 충청남도,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제주도가 가청지역으로 청취자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
이 반응은 직접 전도로 확대되어 청취자 집회가 여러 곳에서 열렸으며, 여름에는 청취자수양회란 이름으로 서울시내의 학교나 잠실 체육관등 넓은 체육관에서 전도 집회를 열어 ‘구원’의 붐을 일으켰고, 국제복음방송은 그후 극동방송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구원파’는 당시 평신도복음선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전도를 계속했다. 이때 극동방송국은 방송운영자금 조달을 위하여 평신도복음선교회와 극동방송국과의 쌍방 대표의 계약으로 한국어방송 운영 기금을 조달하여 운영하기로 했으며, 이때 유병언씨가 방송국의 부국장으로 취임했다.

이 무렵 청취자의 반응은 놀라웠다. 방송과 집회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다는 사람이 늘어가면서 일부 교단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교인들 가운데 극동방송 집회에 갔다 온 사람들 중에는 “구원받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들은 기성 교회 목님들에게는 매우 충격을 주는 말들이었다, 드디어 방송국장 앞으로 항의의 글들이 날아왔다. “권신찬 목사가 누구이기에 그의 설교를 듣고 온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느냐? 기성교회 목사들의 설교를 부정하는 것이냐?” 하는 항의였다. 당시 방송국장이었던 윈첼 씨는 “권신찬 목사의 신앙은 이상이 없다. 우리 선교부의 신앙노선과 일치한다”는 답변을 해주었다. 이에 격분한 일부 장로교회의 교단본부에서는 그렇다면 앞으로 극동방송 청취거부운동과 그 선교단체인 복음주의동맹선교회 (TEAM MISSION)의 선교사업에 일체의 협력을 거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한국교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는 선교사업이 어렵다는 것을 안 일부 선교사들은 반 구원파 세력으로 선회했다.

이러한 분쟁 속에서 한 몫을 한 사람이 다름 아닌 종교문제연구소 소장 탁명환 씨였다. 그는 그때까지 극동방송에 출연하여 “신흥종교” 특집대담 시리즈 프로를 맡아왔는데, 자신이 소속했던 교단의 불신을 우려하여 즉시 극동방송출연을 중단하는 한편 정 반대 입장이 되어, “극동방송 권신찬 목사 이단 사이비”를 주장하는 선동적인 글을 써서, 기독교 신문들에 유포하고 강연을 하고 다녔다. 몇 안 되는 교계 신문과 간행물의 영향력으로 그 이단 운운하는 소문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극동방송의 ‘구원의 복음’으로 교인을 빼앗기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회자들은 적극적으로 탁씨의 선전을 받아드려 교인들에게 경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탁씨의 선전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교인들의 이탈방지에 “이단”은 특효 처방이었다. 이처럼 교인 이탈 방지처방을 간절히 바라는 교파들이 있는 한, 한 번 이단으로 지목되면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는 것이다.

권신찬 목사와 함께 방송국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결국 방송국을 떠나야했다. 그 후 탁씨와 평신도복음선교회와는 법정공방이 계속 이어졌고, 탁씨는 기회가 있는 대로 자신이 발행하는 월간지와 책자들을 통해서 우리를 이단이라고 매도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보호했다.
기성 교회의 지도자들은 어느 누구도 우리의 주장이나 교리나 신앙신조 등을 심도 있게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각 교단들의 연례총회나 교계 동향보고서에도 예외없이 구원파는 이단으로 보고되었다. 특히 한국의 기독교계에서는 누가 이단이냐하는 문제가 큰 관심사가 되어있어 대중인기를 노리는 사이비 신학자들도 예외 없이 이단감별사들의 주장을 재생산하면서 관심사인 “구원파 이단”설에 덧칠을 하는 것이었다. 기독교계뿐만 아니라 종교계 소식에 캄캄한 신문 방송등 일반 언론들도 기독교관련 사건만 일어나면 탁씨와의 인터뷰는 빼놓지 않는 메뉴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탁씨는 “구원파 이단 만들기의 권위자”가 된 것이다. 그의 행각은 오대양사건으로 이어진다.

3) ‘오대양 구원파’

구원파를 이단 사이비로 몰아가는 데 단골메뉴로 쓰이는 제목이 바로 이 오대양사건이다. 1987년 사건 당시에도 경찰과 검찰의 면밀한 조사가 있었고 그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이슈로 삼아 재론하는 자들이 있어 국정조사까지 몇 차례 이루어졌지만 그때마다 결론은 같았다.
그것은 타살이 아니었다. 그들 집단이 운영하는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중에 집단 내부에 구타로 인한 치사에 암매장 행위까지 자행한 상태에서 경찰의 수사압박이 두려워 공장 천정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극단적인 불안상태에서 사흘 만에 집단자타살로 마감한 사건라고 여러 차례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바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탁씨를 비롯한 몇몇 사람은 “정권의 비호를 받은 구원파 교주 유병언이 타살의 배후”라고 주장하였고, 그럴 때마다 수차례 재수사를 벌이게 되었고, 결론은 관련이 없다는 한 가지뿐이었던 것이다.

4) ‘이단 감별사들’의 사건 개입

오랜 동안 구원파와 이단시비로 법정공방을 벌여왔던 탁씨는 1987년 오대양집단 변사사건이 일어나자, 그의 머리에는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사건을 구원파와 엮어보자는 것이었다. 사건이 일어나자 그가 달려간 곳은 용인에 있는 집단자살 현장이었다. 헌병출신인 데다가 평생 모험적인 취재 행각에 뛰어났고, 현직목사들의 사생활을 들춰내어 보도했다는 등, 그에 대한 명예훼손 송사는 줄줄이 끊이지 않았지만 곧잘 피해 다닌다는 인물이었다. 아직 경찰이 현장통제도 하기 전, 그는 당돌하게 32명의 변사체가 누워있는 공장의 천정 현정에 올라가 샅샅이 사진을 찍어 보도 자료로 돌렸고, 자기의 매체에는 상세히 그 장면을 공개했다. 그리고 그는 이 사건 배후에는 구원파의 유병언이 있다고 공언했다. 심지어는 “유병언이 죽여 공장 천정에 올려놓은 것이다”라는 말까지 퍼뜨렸다. 물론 그것까지는 사람들이 믿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유병언 관련설은 매우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었다. 4년 후에 오대양 내부 구타치사로 인한 암매장 관련 자수자사건이 발생했을 때 크게 작용했다. 박찬종 전 의원이 노골적으로 유병언 전 회장이 관련되어 있다고 보도 자료를 배포하는 바람에 다시 사건은 호도되어 오대양사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드디어 검찰은 유 회장에게 잠깐 물어볼 일이 있다고 하면서 불려가 구속시키고 심문했다. 그러나 그에게 오대양에 관해서는 단 한 건의 기소도 할 수 없었다. 이유도 없고 물증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였는지 전에 무혐의 처분되었던 사건을 다시 들추어내 상습사기라는 죄목으로 집행유예 없는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세상에는 유회장이 오대양사건과 관련되어 감옥에 갔다고 알려졌다. 그것이 바로 정부나 탁씨 같은 사람의 노림수이었을 것이라고 짐작케 한다. 그러나 이에 관하여 진실을 파헤쳐야할 언론은 전혀 무관심했다. 결국 오보 투성이 거짓 기사들만 기록으로 남겨놓은 것이다.

여기에 더해져 전부터 구원파와 명예훼손 등 법정분쟁 관계에 있던 정동섭 목사가 가세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글이나 강연을 통하여, 오대양 사건이 구원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왜곡된 선전을 해 왔다. 그러던 중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위에 기술한 지난 이야기들 중 부정적인 부분들은 쉽게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어 그런지 공정해야할 사법당국이나 정치인들에게 까지 우리에게는 악 영향을 주었다. 더구나 몇몇 언론들은 재빨리 우리와 분쟁관계에 있던 이러한 사람들을 초청하여 사실이 아닌 내용을 남발하도록 부추겼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여론, 특히 매스컴에 의해 부정적인 영향은 대부분 종편 텔레비전 방송들에 의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종편방송들의 날조 오보된 내용들도 낱낱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되어 반론, 정정, 삭제 처분을 받아냈다. 이 오대양사건에 대하여 과거 본 교단으로서는 가장 심각한 명예훼손과 피해를 봤는데, 또 다시 오대양사건과 오공과의 관계에 대해서 오보가 재 생산되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고, 이에 검찰에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밝혀 달라고 요청하였고 결국 사건을 담당했던 인천지방검찰청에서는 수사의 핵심과 빗나간 사안이라 구원파가 오대양 사건과는 관련이 없음을 공문을 통하여 밝힌바 있다.

2. 잘못 알려진 교리들

1) “한번 구원받으면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

도대체 어느 종교가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종교든지 종교라면 우선 ‘선’을 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파’를 비방하는 자들은 우선 이 말부터 퍼트린다. ‘구원파’의 누가 언제 어디에서 이런 말을 하더라는 것은 없다. 우리중 누구든지 이런말을 공식설교에서 했다면 이는 결정적 이단일 수 밖에 없다. 그런 말을 누가 했다는 근거를 지금이라도 가져온다면 크게 포상하겠다고 해도 가져오는 사람조차 없다. “아니면 말고” 식 정도의 가벼운 헛소문이 아니라 매우 의도적인 중상이다. 이런 모략적 거짓말을 사실 여부 확인 없이 받아들여 교인들에게 퍼뜨리는 무책임한 교역자들도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전도할 때 빼놓지 않고 전하는 말이 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이라고 했다. 어린양은 구약성경에서 희생의 제물로 바쳐졌던 양을 말한다. 이처럼 속죄는 다 이루어졌지만 각 사람에게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보편적인 성경구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함이라” 는 말과 같이 “믿는 자마다” 라는 단서가 있다는 것에 유의하여야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옙 2:8)

위의 말씀도 같은 내용이다. 이 밖에도 영원한 구원과 영생에 관한 성경구절은 수 없이 많다. 위의 말씀과 같은 뜻을 가진 성경구절들은 신학적인 용어로 ‘구원의 영속성’에 해당하는 말씀이다. 어떤 해석도 필요 없는 진리이다. 이를 확대 해석하면서 “그럼 영생 받으면 죄를 지어도 영생하나?” 라는 트집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의 공격에서나 나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영생’은 단어의 뜻 그대로 영생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그렇다고 해서 죄를 마음대로 지어도 된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허위 주장이다.

롬 6: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성경에서 분명히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기독교복음침례회 설교자들도 집회 때마다 누누이 설교해 왔던 제목이기도 하다.

2) 구원파는 율법폐기론자들이다 - 십계명을 부정한다?

이말도 우리를 이단으로 몰기위한 대표적인 왜곡 비난의 말이다.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모든 찬송가의 뒷 표지에는 <십계명>이 큰활자로 인쇄되어 있어 대부분의 교회에서 주일 예배시간에 전 교인이 암송하거나 낭독을 한다. 그만큼 십계명은 기독교의 핵심교리에 속하는 것이다. “십계명을 부정한다”고하면 두말할 것 없이 기독교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당연히 이단이다. 그만큼 예민한 내용이다. 과거 우리의 대표적인 설교자였던 권신찬 목사는 십계명을 포함한 율법의 참 뜻을 깨닫고 구원을 받았다. 로마서 3장 20절-23절이다. 20절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이를 뒷받침할 성경구절은 수도 없이 많다. 결국 사도 바울의 서신 전체와 신 구약성경 내용이 이를 뒷받침한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그가 창조하신 인간이 적당히 착하게 살다가 죽으면 천국으로 데려가겠다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하나님의 자녀 됨을 원하신다. 그래서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3:28)) 이와 같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우리의 믿는 도리에 관하여 잘 모르는 사람은 “구원파 교리의 핵심은 율법 폐기론이다.” 라고 쓰기도 한다. 우리는 율법 폐기를 말한 적이 전혀 없다. 율법은 구약성경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하나님의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다.

롬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위의 성경말씀들은 서로 모순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두 구절 모두 믿는 우리는 ‘율법폐기론자’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 율법을 완성해 주신 분으로 믿는 것이다.

마 5: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우리는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는 말씀에 근거해서 십자가의 도를 전할 뿐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의문이 있으면 성경을 펴놓고 이 성경을 기록한 2000년 전의 사도들과 따져보는 방법 밖에 없을 것이다. 성경를 어떻게 부정하겠는가 ?

3) “저들은 회개가 필요 없다고 한다”는 말에 대하여

이 말 역시 ‘구원파’를 기성 기독교회와 이간시키려는 억지주장이다. 회개가 필요 없다는 말은 우리를 비방하기 위해 만든 잘못된 말이고, 이것은 거듭남 즉 구원을 위해서는 확실한 한 번의 회개로 족하다는 뜻을 곡해한 것이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를 보면 집을 나갔던 탕자는 한번 회개하고 돌아왔다. 그것으로 아버지는 죽었던 아들이 돌아왔다고 기뻐했다. 용서를 받았다는 확신이 없거나 아들이 나타났는데도 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다면 두 번 세 번 아버지를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찾아가서 겨우 만난 것도 아니다. 아버지가 오히려 미리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달려왔다. 아버지의 용서를 받고난 다음에 다시 엎드려 “죽을 죄를 지었으니 용서해 주세요” 라고 빌고 또 빌고 하지 않았다. 당당한 아들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눅15:21-24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결론은 간단하다. 십자가의 죄 사함도 한 번에 이루어졌고 회개도 한번으로 족하다. “한 번 아들이면 영원한 아들”이다.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이렇게 단번에 용서를 받았어도 여전히 죄를 범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성경은 ‘자백하라’고 되어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죄를 자백하는 생활이 필요한 것이다. 이 ‘회개’와 ‘자백’을 혼돈해서는 안 된다.

요일 1:8-10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구원파는 회개를 부정한다”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도 위의 성경구절을 잘 알고 있고 구원파의 의도도 알고 있을 것이다. 성경을 잘못 이해하면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오히려 이단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만일 기독교인임을 자처하면서 확실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함을 믿지 못하고 교회당 마당만 밟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회개를 거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짜 회개는 일생 단 한 번으로 족한 것이다.

4) 시한부종말론, 극단적인 세대주의

세상은 그 끝이 있다. 그러나 사람은 그 끝이 언제인지 모른다. 우리의 설교자중에 그 끝이 언제일 거라고 년 월 일을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예수님 당시 제자들도 그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예수께 물었을 때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사도행전 1:7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라고 대답하셨다. 다만 벧전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라는 말씀이 있을 뿐이다.
우리를 “극단적인 세대주의자”라고 말하는데 성경의 내용은 인류 역사의 시작과 끝을 말하고 인류역사를 지배했던 중요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사실대로 기록했으며 그 역사는 하나님이 지배하신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도 집회를 할 때 “성경은 사실이다”라는 제목을 내 걸기도 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과 인류의 역사를 성경을 통해서 매우 자세하게 배운다. 그런 것을 “극단적인 세대주의”라는 말을 붙여 폄하 하려는 것은 우리를 너무 잘못알고 있는 것이다.

5) 구원받은 날짜를 모르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생년월일이 있다. 그러나 자기의 생일이 언제인지 모르고 자라나 어른이 된 사람도 있다. 그래도 태어났다는 것은 현실이고 지금 몇 살인지는 안다. 마찬가지로 지옥 갈 인생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으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요 1:12)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날, 거듭난 날, 그 감격스런 날짜는 기억은 못해도 태어난 그 날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태어난 날조차 없다면 이직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날짜를 가지고 트집 잡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다. 초대교회이후 교회의 지도자들은 모두 그들의 구원받은 간증에서 정확한 날짜를 말하고 있다.

6) “‘구원파’에만 구원이 있다고 한다”라는 말에 대하여

“자기들에게만 구원이 있고 다른 교회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한다.”는 것은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기독교인은 누구나 화가 날 것이다. 기독교의 교리 자체가 “구원”이고 설교자라면 누구나 구원을 외칠 터인데, 왜 이처럼 “구원”이라는 단어가 구원파의 전유물처럼 되었는가? “구원파”라는 별명도 우리를 비난하려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우리의 설교자들은 구원은 우리에게만 있다고 전한 적이 없다. 그렇게 말했다면 정말 잘못된 말이다. 구원은 기독교의 기본 교리이다. 기독교에는 수없이 많은 교파들이 있어도 서로 비방하지 않는다. 만일 구원파에만 구원이 있고 다른 교회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했다면 우리 교단이 시작된 것이 1960년대 초인데, 그 이전에는 참 교회가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를 모함하는 것은 참으로 터무니없는 일이다.

실제로 일반 교회의 목사님들이 우리의 설교를 듣거나 읽어보고는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다. 성경에 ‘구원’ ‘거듭남’이란 단어는 극히 보편적인 성경적인 용어이다. 그런데도 실제로 “구원받았다” 또는 “거듭났다”는 말에 대하여는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교회에 다니는 어떤 기독교인이 우리의 집회의 설교를 듣고 “내가 이제 드디어 구원받았다”면서 기뻐한다면 그 교회의 목사님으로서는 축하해 주고 싶은 생각보다는 마음이 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오랫동안 설교를 해 왔는데 내 설교에서는 아무런 감동이 없던 사람이 ‘구원파’의 집회에 갔다 오더니 구원받았다”고 하니 화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되고 결국 다니던 교회를 떠나게 될 것이다. 아무도 이를 막을 수는 없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우리도 어떻게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 변화가 그 사람에게 생긴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자기가 결정할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불 난 데 기름 붓기’ 식으로 말을 만들어내는 “이단감별사”들의 목소리가 기독교계를 흔들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자기들의 말을 퍼뜨리는 대중 매체를 가지고 있다. 언론행세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신앙의 자유가 있다는 대한민국에서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고 있으나 구원의 복음은 전파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이대로 우리가 포기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배신자가 되는 것이다.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딥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3. 금수원은 금수강산 (錦繡江山)에서 따온 “錦繡苑”이다.

지난해 사고 후 언론에 여러 번 언급되고 있어 세인들이 궁금해 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관심사가 있다. 경기도 안성 소재 기독교복음침례회 안성교회가 있는 금수원이다 이 일대는 자연이 수려하고 쾌적한 곳으로, 교단에서는 해마다 여름이면 이곳에서 1만여 명의 신도들이 모여 여름수양회를 갖고 다양한 행사를 하는 교제의 장소이다. 이 장소는 본래 한 영농법인의 농장이었던 것을 1995년 기독교복음침례회가 오랫동안 수양회장소를 물색하다가 이곳을 발견하고 수양회장으로 쓰기 위해 매입한 장소이다. 금수원(錦繡苑)이란 이름은 이미 그 영농조합이 사용하던 이름이다. 즉 우리가 매입하기 전부터 사용하던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를 비방했던 한 잡지는 “禽獸園(동물원)이란 제목의 글로 구원파가 꿈꾸던 낙원, 유병원 교주의 거처가 있어 사실상 구원파 왕궁인 금수원, 각종 동물들을 가리키는 禽獸園인지 궁금하다”라는 글을 게재했다. 우리와 무슨 철천지원수가 되었는지 이런 글을 올려 짐승 취급을 하려는 것이야말로 기독교의 월간지로서의 품격을 포기한 수준 이하의 글이다. 그런데 다행히 이 월간지도 언론중재위원회의 중재에 의해서 반론 정정 삭제를 이행했다.
금수원에 있는 대강당 건물은 창고식 건물이지만 축구장보다 더 넓은 건물이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연례행사인 여름수양회에 국내외 만 여명의 신도들이 말씀과 기도의 장으로 쓰는 쾌적한 곳이다. 한참 시끄러울 때 언론들은 이 금수원이 일반의 출입이 통제된 폐쇄적 공간으로 언급했다. 사건이 일어나자 무분별한 언론취재진들과 경찰들이 몰려왔을 때, 우리는 몸으로 이를 저지했다. 그러나 그곳은 원래 폐쇄된 공간이 아니다. 주변은 경사가 급한 산이다. 그 안에 집회장, 교회당을 비롯하여 사무실 숙소,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쓰는 교육관 건물과 영농조합이 사용하는 식품창고 등 다양한 시설들이 있다. 그럼으로 차량 출입이 가능한 정문과 차도가 하나 있다. 주변이 넓어 울타리도 없다. 걸어서 들어온다면 금수원 주변 사방이 개방되어있어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는 열린 지역인 것이다. 이처럼 개방된 산을 폐쇄된 공간 운운하는 것은 우리를 비방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낸 말이다. 그렇지만 어떤 불순한 생각으로 침입하려고 한다면 저지를 당할 것이다.

<이용화(기독교복음침례회 고문) 님의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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