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넘은 원로의 일생 추모 영원

김재순, 윤장섭, 고홍명
각계 큰 족적 잇단 별세
아흔 넘은 원로의 일생 추모 영원

▲ (왼쪽부터) 김재순 전 국회의장 ▲윤장섭 성보문화재단 이사장 ▲고홍명 한국빠이롯드만년필 회장

청명한 계절 5월, 지난 4.13 총선으로 여소야대 정국으로 개편된 뒤 정치권이 여당의 ‘정신적 분당’ 사태로 소란스러울 때 정·재계에 큰 족적을 남긴 원로들의 별세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5월 15일, 개성상인 정신으로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해 온 윤장섭(94) 성보문화재단 이사장과 국산 만년필의 대부 고홍명(91) 한국빠이롯드만년필 회장이 노환으로 별세했다. 이어 5월 17일에는 7선(選)의 정계원로 김재순(93) 전 국회의장이 별세했다.
또, 지난 19일에는 백범 김구 장남 김신(94) 전 공군참모총장이 별세하여 공군장으로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토사구팽’ 어록 남긴 7선 정계원로

대체로 아흔을 넘긴 원로들의 별세는 천수(天壽)를 누렸다고 볼 수 있지만 고인들이 일생동안 특유의 신념과 의지로 살아온 큰 발자취를 회고하면 아쉽고 안타까운 심정이다.
김재순 전 국회의장의 경우 1923년 평양서 출생하여 평양상업과 서울대 상대를 나와 정계에 진출하여 온갖 정치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7선 의원을 기록했으니 정계 최고의 원로로서 삶을 마감했다. 고인은 1954년 조병옥, 장면 박사의 민주당에 입당하여 1960년 4.19 학생혁명 후 5대 민의원으로부터 1992년 김영삼 대통령시대 정계에서 은퇴하기까지 자신의 노선을 꿋꿋하게 지켜왔다.
고인은 민주당 장면 정부에서 재무부 정무차관으로 발탁됐지만 5.16 혁명 후 반혁명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으나 그 뒤 공화당에 입당, 6~8대 의원과 유정회 의원을 지냈다. 제5 공화국 시절에는 야인으로 돌아갔다가 1988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 여소야대 국회의 의장을 맡았고 1992년 대선 때는 YS 대통령 만들기에 참여했지만 재산 축소신고 논란이 일자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비통한 심정을 토로하고 은퇴했다.
고인은 1970년 월간 교양지 ‘샘터’를 창간, 출판문화계에도 기여했다.

개성상인의 빠이롯드만년필 국산화

한국빠이롯드만년필 창업주인 고홍명 회장과 호림박물관을 설립한 윤장섭 회장은 개성 출신으로 최후의 개성상인 정신의 별세로 묘사된다.
고홍명 회장은 일본 메이지대 법학과를 나와 6.25 전쟁 때는 국군에 자원입대하여 수도사단에서 중위로 2년간 복무한 후 1954년 문구류 전문 신화사를 설립, 문구류 국산화의 길을 개척했다.
고인은 1962년 빠이롯드만년필과 볼펜을 개발, 전 국민의 필기구를 공급함으로써 빠이롯드로 공부한 세대들이 국가와 사회를 주도하는 시대를 열었다. 특히 고인은 철저한 개성상인 정신으로 신용을 중시하고 빚을 지지 않는 경영철학을 실천해 왔다.
고인은 문구사업에 전념하면서도 1976년 한양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경제학회 회원으로 활동해 왔으며 한·태국 경제협력위원회 상임위원과 안양대 명예교수도 역임했다.

호림·간송·호암등 3대 문화재 수집가

호림(湖林) 윤장섭(尹章燮) 성보문화재단 이사장은 국보 문화재를 일본서 되찾아온 문화재 수집가로서 간송 전형필, 호암 이병철 회장과 함께 국내 3대 문화재 수집가로서 큰 발자취를 남기고 갔다.

▲ 백지묵서묘법연화경 (국보 211호). <사진=문화재청>

고인이 사재를 출연하여 설립한 호림박물관은 국내 최대급 사립 박물관으로 국가지정 국보 8건, 보물 46건, 서울시지정 유형문화재 9건 등 총 1만5천여 점의 문화재를 보유한다. (2012.10월 발행,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
고인은 1922년 개성에서 태어나 공립개성상업과 보성전문 상학과를 나와 성보실업 창업으로 경제계에 투신, 1981년 성보문화재단 설립, 1982년 강남구 대치동에 호림박물관 설립, 1999년 관악구 신림동으로 확장이전, 2009년 강남구 신사동 분관 개관 등으로 문화재 수집·보존에 온갖 열정을 쏟았다.
고인의 문화재 수집 관련 공적으로 2001년 국민훈장목련장, 2009년 은관문화훈장을 받고 2011년에는 명지대로부터 미술사학 명예 박사학위도 받았다.
고인의 문화재 수집 신념과 집념을 기록한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에 따르면 국보급, 보물급 문화재 수집 과정의 어려운 사연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중개인이 문화재를 소개해 오면 1차로 박물관 학예실이 검토하고 자문위원들의 검증을 거친 보고서가 작성되면 윤 회장과 학예실 직원들 간 난상토론을 거쳐 최종 구입결론을 내린다. 이 과정을 통해 문화재가 아무리 가치가 높아도 도난품이나 도굴품으로 의심되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경우는 결코 구입하지 않는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수집된 1만5천여 점은 고인의 지극한 문화재 사랑의 결정체라는 해석이다.

개성출신 고고사학 3인방과 인연

고인이 문화재에 관심을 갖고 호림박물관을 설립하기까지는 개성 출신의 고고미술사학계 거두 3인방과 태생적 인연이 작용했다. 개성 출신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1916~1984)과 황수영 박사(1918~2011) 및 개성상업학교 선배인 진홍섭(1918~2010)씨 등 3인을 말한다.
최순우 박사는 일제 시 개성박물관 서기로 출발하여 1974년부터 10년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맡았고 황수영 박사는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이어 동국대 박물관장과 동국대 총장을 역임했다. 동향 출신인 이들 두 문화재 거목이 실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윤장섭 성보실업 대표를 찾아가 월간 고고미술(考古美術) 발간비 지원을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고인이 이 월간지 발간을 지원하면서 고고미술 동인이자 고향선배인 진홍섭 씨와 만나 필생의 문화재 수집가의 길로 나서게 된 것이다.

▲ 1982년 10월 20일 호림박물관 개관 때 윤장섭 이사장의 멘토인 박물관‘ 개성 3인방’ 이모였다. 오른쪽 두번째부터 황수영, 진홍섭 교수, 윤 이사장, 최순우 관장. <사진=호림박물관>

고인이 국보 고려 사경(寫經) 백지묵서묘법(白紙墨書妙法) 연화경(蓮華經)을 수집한 과정이 매우 극적이고 감동적인 사연이다.
1971년 황수영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고인에게 ‘대단한 물건’이 나왔다고 알려왔다. 황 관장이 일본 출장 가서 재일교포 장석구 씨로부터 국보급 고려 사경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고국에 반환할 의사가 없느냐고 타진하여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노라는 요지였다.
‘백지묵서묘법연화경’이란 고려 우왕 3년(1377년) 필사본으로 7권 7첩 완질본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니 이 분야 전문가로서는 흥분을 감출 도리가 없었다. 당시 황 관장은 이 국보급이 임진왜란 시 약탈되어 갔다가 재일교포 장 씨 손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했다.
소장자인 장석구 씨는 이를 고국으로 되돌려 주겠다는 생각이라고 했지만 얼마 뒤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그 뒤 아들 장갑순 씨로부터 선친이 이를 “고국으로 되돌려 보내라”고 유언했다고 연락이 와 고인에게 알려 준 것이다. 이에 고인이 황급히 일본으로 달려가 장갑순 씨를 만나 보니 오동나무 함 속에 잘 보관된 국보가 600년 세월을 잊은 듯 말끔히 보존되어 있었다. 이를 사전에 약속한 대로 소장자에게 대금을 지불하고 인수하여 국보로 지정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고인들은 떠나도 개성상인 정신은 계승

고인은 생시에 매주 토요일에는 혜화동 자택에서 걸어 나와 지하철 4호선, 2호선, 7호선을 갈아타고 강남구청역에 내려 박물관으로 출근했다고 한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하철 무임승차가 제도화되어 있으니 구태여 승용차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는 이야기다. 평일에는 중구 소공동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하여 꼬박 근무하는 성품이었다.
고인은 호림박물관을 설립하면서 재정자립을 뒷받침해 주기 위해 유물의 소유권을 몽땅 이전시키고 부동산과 유가증권도 기부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윤재동 성보화학 부회장, 윤재륜 서울대 교수, 윤경립 유화증권 회장 등 아들이 사업을 승계하고 호림박물관은 며느리 오윤선이 관장을 맡고 있다.
고홍명 한국빠이롯드만년필 회장, 윤장섭 호림박물관 설립자의 별세를 애도하며 고인들은 떠나가도 개성상인 정신은 후세에 의해 승계되어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2호 (2016년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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