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미술학자 이성현, 올해의 논쟁작 자부

서화에 숨겨둔 조선정치인
추사(秋史) 코드
글, 미술학자 이성현, 올해의 논쟁작 자부

조선조 명필 정도로 알고 있는 추사(秋史) 김정희의 생애와 작품을 ‘추사코드’라는 도전적인 제목으로 파헤친 미술학 전문가의 글이 우리네 무식쟁이 눈으로는 뜻밖이다. 필자 스스로가 ‘올해 최고의 논쟁작’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필시 관계 전문가들의 논란을 불러일으킬 모양이다.

미술학 학자가 본 도전적 반란

필자 이성현(李成鉉)은 홍익대 미술학 박사로 30년간 작가와 교육자로 활동해 왔으며 조선조 청백리 열전 등 많은 작품을 남긴 고 이용선(李鏞善) 씨의 차남으로 언론계 인맥이 두터운 학자이다.
그가 ‘추사코드’ 452쪽 대작을 발표하면서 ‘서화에 숨겨둔 조선 정치인의 속마음’이라고 부제를 달았으니 이 분야 문외한이 볼 때는 참으로 뜻밖이다. 추사를 정치인으로 분류한 것부터 생소하게 여겨질뿐더러 “당신이 알아온 추사는 추사가 아니었다”라고 주장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제1부, 천재가 설계한 미로, 제2부, 대밭에 묻힌 추사, 제3부, 추사의 가면극 등 중간제목부터 파격이고 도전적 반란격이지만 저자는 전문화가의 눈으로 확인한 추사의 모습이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자신의 선친과 교분이 있는 경제풍월 사무실을 방문하여 추사코드를 선물하기에 대강이나마 논점을 이해하고자 읽기로 했지만 불가능했다. 너무나 벽이 두터운 전문가 영역이었기에 제목만 훑어 볼 수밖에 없었다.

성리학으로 보면 ‘괴팍한 비운의 천재’

저자의 머리글 속에 추사코드의 밑그림 일부가 나타나 ‘논쟁작’이라고 주장한 의미를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추사의 문예작품 평가에 잡음이 생긴 것은 추사를 고증학(考證學)의 대가라고 부르면서 조선조 통치이념인 성리학(性理學)의 잣대로만 이해하려 했기에 어긋난 결과라고 했다.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추사가 그린 ‘모질도’ .

성리학 측면에서 보면 추사는 ‘괴팍한 비운의 천재’이나 저자는 그의 생애와 작품은 고증학적 성과를 통해 해석하는 것이 정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분야의 연구 결과가 없기에 추사가 남긴 흔적들을 추적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왜 추사가 고증학에 심취했을까. 당시 조선 선비가 주자의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삼는 시대에 과거시험과 무관한 고증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추사는 명문가 출신으로 과거 급제가 절실했다. 그의 생부 김노경(金魯敬)이 홍천현감이던 40세 늦은 나이에 과거에 응시하여 왕실의 축하를 받았다.
대과 급제 후 4년 만에 호조참판으로 올라 동지사 겸 사은부사로 연행(燕行)길에 오르자 추사는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동행했다. 그 뒤 과거시험의 위력을 옆에서 지켜 본 추사는 24세에 생원시(生員試)에 1등으로 합격하고 10년이 지나 34세에 대과에 합격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부귀영화를 타고난 추사는 자부심 강한 지식인으로 55세에 귀양길에 올라 울화와 불안감으로 ‘모질도’를 그린다. 저자는 이를 귀양길에서 평상심을 잃은 순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약방문이나 부적인 셈이라고 해석한다.
추사가 활약한 조선 말기의 조정 권력구도는 강력한 외척 안동김씨가 조선 성리학의 적통임을 자부하며 정치이념을 선점하고 있고 차순위 외척 풍양조씨가 경주김씨와 함께 안동김씨 세력과 맞설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럴 때 안동김씨가 정적인 추사를 위험한 선동가나 책사로 보고 감시하고 견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한다.

작품속 구석구석에 경천동지할 코드

저자는 추사가 걸출한 예술작품을 남긴 문예인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문화사 연구가들의 작품해설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저자는 작품의 특이성이나 절묘함에 감탄하면서도 내용상 어리둥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장의 내용이 너무 단순하거나 때론 앞뒤가 맞지 않는 사실 앞에 실망하고 이율배반도 느낀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추사가 단순한 문예인이 아니라 평생 개혁을 추구한 뼛속까지 정치인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추사는 명문가 중 최고의 명문가문 출신으로 작품 속 구석구석에 경천동지할만한 번득이는 코드가 가득 차 있다고 표현했다. 이 때문에 추사코드란 암호해독표를 들고 160년 만에 민낯의 추사를 다시 만나고 조선 말기의 역사도 다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들녘출판.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2호 (2016년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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