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태진 논객의 주말여행 에세이

전국 손맛, 인심 나들이
사람향기 그리운 날엔
글 오태진 논객의 주말여행 에세이

신문 논설위원의 취미가 사진과 여행이다. 매 주말이면 승용차를 운전하여 당일여행으로 전국을 누빈다. 때론 왕복 900km를 기록한다니 유명신문사 고연봉이라 해도 ‘길바닥에 돈 다 뿌린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조선일보 오태진 수석 논설위원의 ‘길 위에서’ 에세이집 이야기다. 책 제목 ‘사람향기 그리운 날엔’ 속에 전국의 맛집 인심이 다 들어있다. (550페이지, 나남출판, 2014.12 증보판)

영동고속도로 둔내IC에서 3km쯤 시장입구의 정우관은 국밥 35년의 노모가 쇠고기 된장찌개를 잘 끓여준다. 10년 묵은 시커먼 된장 맛에 무김치와 콩나물 손맛이 함께 배어 있어 6천원 값이 싸다는 느낌이다.
경포해변 남쪽 강문해안 횟집촌의 태광식당은 말린 우럭미역국 7천원 짜리가 일품이다. 강문토박이 여주인은 ‘머구리’의 딸로 태어나 자랄 때부터 우럭을 잡아오면 미역국을 끓여먹은 식성으로 식당 여주인이 됐다.
정읍으로 내려가면 충남집의 내장산 쑥된장국이 소문이 났다. 충남 강경에서 익산으로 시집왔다가 35세에 홀로 되어 식모살이 등으로 전전하다 쑥된장국 식당 44년에 이른다니 알만하지 않은가. 그사이 세월이 어떻게 흘렀는지 “아플 사이도 없었다”니 얼마나 열심히 살아 왔을까.
전남 해남군 화산면 해창막걸리는 “알만한 이는 다 알고 있다”는 명주다. 김남주 고정희 시인의 고향마을로 90년이 넘은 일본식 2층집에 800여 평의 정원에는 거목과 고목이 즐비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 집에 농촌진흥청이 공인한 전통주와 토종닭 소문이 오래 전 서울로 올라왔노라고 한다. 주인장 오병인·박미숙 부부는 택배(宅配)로 막걸리를 마시다가 옛 주인이 대(代)가 끊어지게 됐다면서 “한번 해 보겠소”라고 권유하여 아무 연고도 없는 해남으로 귀농했다니 신기하다는 느낌이다.

필자는 전남 구례읍 70년 누옥의 ‘동아식당’ 가오리찜, 돼지주물럭과 멸치국물을 예찬한다. 슬레이트 지붕, 함석판 간판의 시골형 식당 여주인은 얼핏 퉁명스런 인상이다. 때마침 어느 남자 손님이 술 다 마시고 나서 우물쭈물하며 절절매자 여주인이 ‘잉, 그냥 가아’라는 인심을 보여주더라고 했다. 그녀는 메뉴에 없는 것도 손님이 부탁하면 금방 밭에서 채소 캐오고 인근 농협마트서 재료 사다 끓여준다고 한다.
통영 서호시장 옆 수정식당은 ‘복국 잘하는 집’으로 듣고 찾아갔다. ‘생선회 8천원,’ ‘소금 적게 쓰는 식당’이라고 쓰여 있어 “회 조금만 됩니까”라고 물었더니 “해돌라(해달라)는 대로 해 드립니데이”라고 즉답했다. 2인분 1만6천원을 받아 놓고 보니 황송할 만큼 푸짐했다.
서울 와서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1982년부터 1인분 회 전문이다. 윤도수 할아버지는 “천원 남을 것 반만 남기겠다”는 정신으로 “해돌라는 대로…”장사를 해 왔었다는 이야기다.

저자 오태진 조선일보 수석 논설위원

제주도 서귀포 ‘춘자싸롱’의 독신 강춘자 할머니는 냄비국수와 멸치향이 전문이다. 30년 전 700원에 팔던 것이 지금은 2500원이지만 여전히 싸고 얼큰한 맛이다. 처음엔 면사무소 건너 골목에서 시작했다가 몇 해 전 큰길가로 나와 외지인들에 의해 냄비국수 소문이 퍼져 명소처럼 됐다고 한다.
제주시 일도 2동 주택가 골목 돌하르방 식당의 각재기국(전쟁이)과 멜국(멸치국) 뚝배기는 6천원, 일흔아홉의 강씨 할아버지가 빨간 티셔츠에 야구모자를 쓰고 주방일을 보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또 대정읍 모슬포항의 40년 된 산방식당은 밀냉면 5천원, 제주시 애월읍 숙이네 보리빵은 개당 400~600원.
현역 논객이 바쁜 틈을 쪼개 전국을 고루 여행하며 입맛, 손맛 감상하고 깊은 절 템플스테이에 참가하여 참선까지 체험한 기록을 읽으면서 참으로 부럽다는 소감이다. ‘사람향기 그리운 날엔’이란 책 제목이 여행 못 다닌 우리네 신세에겐 가슴에 너무나 팍 닿는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2호 (2016년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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