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정치 못해요

[김동길 박사의 '이게 뭡니까']


왜 그렇게 정치 못해요
국민의 화풀이
대통령 사랑하지만 자기중심적 싫어해요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태평양위원회 이사장)

총선결과 보니 ‘국민의 화풀이’

총선 결과를 지켜보면서 ‘국민의 화풀이’라는 한마디가 떠올랐다. ‘화풀이’는 ‘한(恨)풀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화’는 풀면 풀리지만 ‘한’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 끈질긴 무엇을 내포하고 있어 엄청난 비극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국민은 박근혜의 새누리당에 대해 화가 났다. 왜 그렇게 정치를 못하는가. 왜 혼자서 당도 국회도 쥐고 흔들려고 하는가.
국민이 대통령의 참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회가 제구실을 못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당 후보자 공천에 일일이 간섭하면 당을 지킨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국회가 청와대의 들러리 노릇을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국민이 왕창 화가 나서 여소야대의 기형적 국회를 만들어 놓았다. 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극소수의 반동분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한국인이 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한다. 결코 미워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의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은 다 싫어한다.
왜 그런가. 박 대통령의 편애를 믿는 나머지 방자하게 구는 자들이 없지 않다. 이 사람들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 책임은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한구가 후보자를 선택하는 일에 왜 개입하도록 대통령이 허락했을까. 우리로서는 이해가 곤란하다. 대구사람 유승민에게 새누리당 공천을 안 준 것은 잘한 일인가. 그가 70% 넘는 득표율을 자랑하게 된 것은 누구의 덕분인가.
새누리당이 국민의당 안철수를 떨어뜨리기 위해 젊은 사람 한 사람을 후보로 내세운 것은 과연 잘한 일일까. 정치가 아무리 각박한 몸싸움을 하는 ‘비정의 예술’이라 해도 한 정당의 당수에 대한 예우는 아니지 않을까. 그것도 동방예의지국에서, 당 대표인 김무성에 대한 청와대의 공세가 너무 가혹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선거 참패의 책임을 홀로 지고 즉시 대표직을 사퇴했다.
그러나 그가 계속 밟히기만 하는 처지에서 끝까지 가만히 있을 사람은 아니지 않는가. 그를 다시 등장시키지 않고는 안 될 일이 새누리당에 있는 건 아닐까요.
친박이 생기니까 비박이 생기고 친박이 있으니까 진박(眞朴)이 나타나는 것이죠. 또 비박이 있으니까 반박(反朴)도 생겼을 것이다. 같은 새누리당 울타리 안에서…

▲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투표를 하고 있다.

이제라도 가능한 일은, 그리고 꼭 필요한 일은 친박·진박·비박·반박의 깃발을 다 걷어치우고 ‘자유민주주의’라고 쓴 큰 깃발 하나만 들고 나가면 대한민국은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될 것이다.

국회의원 100명이면 충분해요

앞으로의 정치가 어떻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정치학자도 정치의 미래를 점칠 수 없고 경제학자도 경제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정답은 아마 ‘잘 모르겠다’ 일 것이다. 4.13 총선결과를 보고나서 여론조사 믿을 수 없고 출구조사도 정확치는 않았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론조사가 정확하다면 선거일을 정해 놓고 젊은 운동원을 동원하여 길거리에서 춤추고 광대짓 하게 할 필요는 없겠지요. 후보자들의 고생 또한 말로 다하기 어려웠다.
선거비용으로 2억 원은 쓸 수 있고 득표율이 투표자의 10%만 되면 국고에서 돌려받게 된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지역구마다 그렇게 입후보자가 많은 것이 그런 사연 때문이란 걸 알았다. 낭비가 이만 저만 아니다. 국민 혈세를 그렇게 낭비해도 되는 것인지 도덕적 불쾌감이 치솟기도 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조그마한 나라에 국회의원 300명은 무리한 숫자다. 입법을 위해 100명 이상 국회의원이 필요하지 않다. 그것도 소선거구를 포기하고 대선거구로 개편하지 않고는 계속 세금을 낭비하는 괴물 같은 국회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입후보자들의 개별 선거운동은 금지하고 시·도별, 인구비례로 의원수를 배정하여 전국적으로 TV를 통한 정견발표와 토론만이 용납돼야 한다. 또 임기는 5년으로 늘리되 소환제도(recall)를 도입하고 국회의사당 가까이에 법원과 구치소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통일이 되면 북측 인구를 감안하여 50석은 늘려야 할 것이다. 오늘날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되고 휴대용 전화가 거의 만능에 가까울 때 구태의연한 정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도 귀담아 들어야만 한다.
20대 총선을 겪은 정당들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제대로 일은 안 하고 멋대로 놀다가는 어느 칼에 죽을지 모른다는 느낌이 강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은 우리 정치의 시금석 같은 것이었다고 확신한다.

투표일 전날의 이런저런 예측

총선을 스무 차례나 치러보는 이 몸이 선거를 앞두고 전혀 감이 안 잡힌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6.25 피난 다니며 재건이니 부흥이니 하며 분주하던 암울하고 고통스럽고 배고픈 시절에도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도 있었으니 이승만의 대한민국은 정말 불사조와 같은 신비스런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부정선거가 노골적으로 이뤄진 때도 있었고 개표과정에 교묘한 마술이 도입되어 승리가 확실시 되던 야당 후보가 패배의 쓴맛을 본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던 우리 선거도 많이 근대화되어 지난 몇 차례 선거는 비교적 공정하게 치러졌다는 자화자찬도 가능하다.
20대 국회의원 선거는 이슈가 너무 없어 무미건조한 선거라는 비난도 없지 않았다. 여야당이 동시에 불협화음으로 시끌시끌했기 때문에 선거에 앞서 정당이 더 문제가 많다는 의견이 파다했다. 어쨌든 재미없는 선거라는 사실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투표마감 1시간이 남은 시각,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나 혼자 짐작으로 개표결과를 묻는다면 내 점괘는 이렇다. 새누리당 150석, 더민주당 100석, 국민의당 30석, 나머지 무소속과 군소정당 20석 등으로 300석이 찰 것이다. 무소속은 상당수가 새누리당으로 가서 정국은 나름대로 안정을 찾을 것으로 짐작한다.
새누리당은 친박, 비박이 갈라서서 칼부림을 했으니 창피한 일이나 유승민과 주호영이 당선되어 올라와 청와대로 박 대통령을 찾아가 당선인사를 할 것이고 대통령과 각을 세운 적이 없는 김무성의 당내 지반은 비온 뒤 땅이 굳어지듯 더 공고해 질 것이다. 김종인은 107석을 장담하다 집에 가서 쉬게 될 것 같고 원내교섭단체라도 만들게 해 달라고 애원하던 안철수는 겨우 정당대표 자리는 굳히게 될 것 같다.
기성 정치권에 들어와서도 계속 운동권 행세를 하려던 철부지들도 이제 좀 철이 들게 될 것이다. 여성 대통령을 두고 ‘이년 저년’ 하던 자도 부끄럽다고 생각되어 정치판을 떠나게 될 것 같고, 총선이 끝난 뒤 박 대통령의 정치철학도 일변하여 ‘미운 놈 떡 한 개 더 주는’ 능숙한 정치인으로 변신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총선이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정반대로 굴러가 야당이 압승하고 여당이 참패해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대한민국일 것이다. (김동길 박사의 투표전날 예측은 빗나갔지만 오랜 경륜의 소망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기록으로 남긴다. 대한민국에 국회의원 300명은 무리한 숫자다. 입법을 위해 100명 이상 국회의원이 필요하지 않다. 선거비용으로 2억 원은 쓸 수 있고 득표율이 투표자의 10%만 되면 국고에서 돌려받게 된다니… 국민 혈세를 그렇게 낭비해도 되는 것인지 도덕적 불쾌감이 치솟는다. : 편집자)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1호 (2016년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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