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수종의 인공조림은 병충해 취약

[풍류경영론⑩]

자연주의 경영④
[광릉숲의 잡목 다양성]
단일수종의 인공조림은 병충해 취약


글/황인용(수필가)

세계의 임학자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숲이 우리나라의 광릉숲이다. 진화의 정점에 서 있는 극상림(極上林)으로 단위 면적당 수종이 제일 풍부하다.
반면에 서양의 숲은 대부분 인공조림 지역으로 단일 수종의 숲이 태반이다. 그러한 숲은 병충해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이다.

단일수종 전체주의와 잡목숲 차이

비유컨대 단일 수종의 숲은 나치 같은 전체주의 표상이라면 광릉숲은 목주주의(木主主義)의 천국이다. 단일 수종의 숲은 지시와 복종으로 일관하는 타율사회 즉 획일주의 집단주의의 폐쇄사회 같다면 지나친 말일까.
그에 비한다면 잡목숲은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열린사회로서 자율성이 핵심 미덕인 민주주의 사회 그대로다.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란 책도 다원주의를 옹호하려는 목적이었음은 물론이다.
전체주의 사회는 제국주의 일본처럼 흥할 때도 일사불란하지만 망할 때도 일사불란하다. ‘브레이크 고장 난 벤츠’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터이다.
수종이 풍부한 잡목숲일 수록 일견하여 혼잡한 모습이다. 혼란스럽기 그지 없는 광경은 훌륭한 복잡계의 표상이다. 복잡계는 무질서의 극치이면서도 동시에 고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야누스 같은 세계다. 그 비결을 한마디로 규정해 주는 말이 ‘무질서의 질서’로서 도가의 역설에 따르면 최상의 질서를 뜻한다. 바로 자연생태계의 질서로서 민주주의 또한 무엇이 다르겠는가.

독일은 불행한 천국, 한국은 행복한 지옥

자연생태계는 복잡다단하기 그지없어도 공생과 천적관계로 고도의 균형을 유지하는 복잡계다. 그 상생상극 구조를 완벽히 설명해 주는 이론 모형이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임은 물론이다. 말하자면 음양오행설은 인간과 자연세계의 균형을 설명해 주는 합목적적 세계의 정수(精髓)인 거다.
장자(莊子)를 보면 혼돈왕(混沌王) 이야기가 나온다. 남해 임금 숙(儵)과 북해 임금 홀(忽)은 중앙 임금인 혼돈왕에게 자주 놀러왔다. 그때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고는 보답하기로 했다.
“사람은 누구나 이목구비가 있는데 혼돈왕만 없다. 우리가 만들어 주자”
이렇게 의논하고 하루에 한 개씩 얼굴에 구멍을 뚫어주었다. 혼돈왕은 이레 만에 죽고 말았다.
이 우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위자연의 질서가 최고의 질서이고 인위적 질서를 부여하는 순간 만사휴의(萬事休矣)라는 뜻이다.
과연 외국인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겠는가. 단적으로 ‘맥시멈 코리아’를 쓴 스콧 버거슨을 보자. 그는 한국이 ‘마구 뒤섞여 있는 행운의 과자’와 흡사하다고 한다.
거의 비슷하게 독일에서 귀화한 이한우 씨는 “독일은 불행한 천국이라면 한국은 행복한 지옥이다”고 말한다. 독일은 고도의 질서사회여서 오히려 따분한 반면에 한국은 무질서해도 역동적이어서 오히려 살맛이 난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 너무 틀에 잡혀 있으면 기계적 삶일 따름이다. 고도 산업사회가 기계의 부속품 같은 삶을 강요할지라도 사회의 전체 분위기만큼은 자유분방해야 역동성이 살아나면서 활력이 제고되지 않겠는가.
이상의 모든 논의를 요약하자면 자연주의 경영은 순리(順理)에 따르는 합리(合理)적 경영이다.
‘理’자는 옥의 결을 뜻하는 글자다. 밭(田)에 이랑(土)이 있듯 구슬의 무늬가 드러나도록 갈고 닦는다는 뜻에서 ‘다스리다’의 뜻으로 쓰인다. 또한 구슬의 무늬는 조리(條理)가 있다하여 이치(理致)의 뜻으로도 쓰인다.
바로 절차탁마(切磋琢磨)는 옥을 자르고 갈고 쪼으고 닦아 광채나게 하는 과정이라면 기업 경영이라고 무엇이 다르리오. 아주 세심하면서도 집중적으로 쏟아 부어야 하는 공력 말이다.

무리는 곧 불합리와 비리

“무리(無理)는 통하지 않는다”
사마천(司馬遷)은 불후의 명작인 사기(史記)를 완성하고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무리는 환언하면 불합리이고 부조리이고 비리(非理)다. 사람은 왜 무리하는가. 답은 욕심에 눈멀어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즉 무도(無道)하니까 무리하고 그러다 보면 더욱 길이 사라지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길에서 벗어나면 일찍 망한다” 노자(老子)는 도가(道家) 철학의 원조답게 길의 이치 즉 도리(道理)를 잘도 설파했다고 하겠다.
안양 군포 안산 시흥 광명시의 구심점 마냥 솟아 있는 수리산(修理山)이다. 무리하면 무도하고 무도하면 무리하다면 길을 닦음(修道)과 이치를 닦음(修理)은 무엇이 다르겠는가.
오랫동안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중후장대(重厚長大)형 산업들이 중국 등의 추격으로 길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이듯 새로운 길을 닦아 마땅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산업구조를 더욱 고도화하는 일말이다.
물론 그 과정은 무리하지 않은 순리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 언제나 길을 닦았고 더불어 이치를 닦았던 옛사람들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1호 (2016년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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