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장군 탄신 471주년
[임진왜란과 선조(宣祖)]


글/황원갑(소설가, 역사연구가)

4월 14일은 424년 전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날이다. 또 4월 28일은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탄신 471주년이 되는 날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날이지만 나라 사정이 갈수록 어지러운 때라 올해 장군의 탄신일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특히 국난의 역사가 그렇다. 임진왜란으로 망국의 위기를 당했으면서도 유비무환의 교훈을 무시하여 병자호란을 당했고, 결국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으며, 왕조시대가 끝난 뒤에도 6·25남침과 같은 참담한 국난을 당했다. 그런 까닭에 임진왜란을 막지 못한 무능한 국왕 선조(宣祖)가 생각난다.
임진왜란 뒤 공신을 선정하는데 1등공신은 이순신(李舜臣)·권율(權慄)·원균(元均) 세 사람이었다. 그러나 원균은 처음에는 2등공신으로 올라갔다. 공신도감 도제조, 즉 공신선정위원회의 위원장 격인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이 선무공신을 정할 때에 원균을 김시민(金時敏)·이억기(李億祺)와 함께 2등으로 올렸는데 선조가 1등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때 선조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일찍부터 원균을 지혜와 용맹을 겸비한 사람으로 여겼으며… 이제 원균을 2등으로 낮추어 책정했으니 어찌 원통한 일이 아니겠는가. 원균은 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임금이 그렇게 생떼를 쓰자 이항복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하며 발을 뺐다.
“원균은 왜란 초에 수군이(부하가) 없는 장수였으나 이순신 덕택으로 해전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뒤에 3도 수군을 전멸시켰으므로 이순신·권율과 같은 1등공신으로 책정하기 어려워서 2등공신으로 내려 책정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전하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1등공신으로 책정하겠습니다.”
선조가 원균을 1등으로 올려준 것은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면하고 원균을 그 자리에 앉힘으로써 칠천량전투에서 참패하여 조선 수군을 전멸시킨 자신의 궁극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간교하고 음흉한 술수였다. 선조는 칠천량패전 직후 비변사에서 ‘원균은 주장으로서 수군을 전멸시켰으므로 그 죄는 모두 원균에게 있다.’면서 처벌을 건의하자 끝까지 원균을 감싸고돌면서 패전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원균은 개전 초에 휘하 전함과 무기를 모두 바다에 버리고 겨우 6척만 이끌고 달아나버렸다. 그러자 1만여 병력도 산산이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당대의 명장이란 이일(李鎰)은 상주에서, 신립(申砬)은 충주에서 각각 대패했고, 조정은 도성 방어와 함께 피난 문제를 논의했다. 아무 실리도 없는 명분론으로 국정을 그르친 위인들인지라 겉으로는 사수론(死守論)이 우세했다.
선조는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밤중에 도성을 몰래 빠져나가 피난길에 올랐다. 그렇게 서울을 버리고 임진강을 건너 개성·평양을 거쳐 국경인 의주까지 피난길을 재촉했다. 일본군이 서울을 함락한 것은 6월 2일, 그 달 13일에는 평양까지 점령했으니 겨우 2개월 만에 거의 전 국토가 적군의 발길에 무참하게 유린당한 것이었다. 바다의 이순신과 육지의 의병들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그때 이미 일본의 속국이 되었을 것이다.
선조가 재위 41년 내내 부국강병과 국리민복은 뒷전에 팽개쳐 둔 채 나라를 제대로 이끌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그의 비정상적 즉위 과정에서 비롯됐다. 선조는 조선왕조 사상 최초로 방계승통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정상적 상황이었다면 국왕 후보에도 끼지 못할 서열이었다. 그래서 선조는 재위 내내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반면 왕권에 대한 집착은 병적이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백성을 버리고 피란가면서도 선조는 어제는 동인, 오늘은 서인의 손을 들어주는 식으로 당쟁을 자신의 왕권안보에 악용했다. 또한 백성의 신망이 높은 장수들을 잠재적 정적으로 의심하고 시기하여 목숨 걸고 왜적과 싸우던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을 죽이고, 이순신과 곽재우(郭再祐)를 죽이려고 했으니 이런 엽기적인 증오는 이적행위와 다름없었다.
또다시 난세다. 지금 우리나라는 총체적 위기를 맞았다. 난국을 지나 국난 직전이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북한의 무력위협과 경제난은 변함이 없다. 이런 와중에 사건사고가 줄을 잇고, 군대 내 군기문란 사건들까지 벌어졌다. 비상한 시기일수록 최고지도자의 탁월한 리더십이 절실하다. 국가의 지상목표는 국리민복(國利民福)과 부국강병(富國强兵)이다.
신하들의 맹목적 충성심을 강요했던 선조, 극단적 편 가르기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망국의 위기를 초래했던 국왕, 존재 자체가 재앙이었던 엽기적 국왕이 선조였다. 정치권도 정신 차려야 한다. 정권은 실정을 거듭하면 임기가 끝나기 전에 막을 내릴 수도 있지만, 국가안보는 한 번 구멍이 뚫리면 나라가 끝장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지금처럼 비상한 시기일수록 최고지도자의 탁월한 리더십이 아쉽다. 왕조시대든 민주화시대든 국가 최고지도자의 자질이 부족하고 리더십이 없으면 국정은 표류하거나 파탄하게 마련이다. 지도자의 칭호가 제왕이든 대통령이든 수상이든 출중한 자질을 갖추고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준비된 지도자’만이 출중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준다.
나라 형편이 위중한 까닭에 철저한 준비와 필사의 각오로 적과 맞서 싸워 이겼던 이순신정신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다(必生則死 必死則生).” 이 같은 필사의 각오와 의지가 바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이순신정신, 이순신 리더십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0호 (2016년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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