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 불장난 돈줄 끊어야

[김동길 박사의 '이게 뭡니까']

김의 불장난 돈줄 끊어야
국론분열 어떤자요
꼴불견, 세월호 천막은 뭡니까


글 /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태평양위원회 이사장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 북한 조선중앙 TV가 6일 오후 특별중대보도를 통해 수소탄 실험 성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채널A 방송화면 캡쳐. 2016.01.06>

위기에 직면하면 개인이나 집단이나 당황하게 마련이다. 위기란 따지고 보면 일종의 비상사태라고 할 수 있다. 예사로운 생각이나 행동으로는 헤쳐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당황하는 것이다.
화산이 폭발하거나 바다가 요동하여 산기슭에 살던 사람들이나 바닷가에서 고기잡이 하던 사람들이 가족과 친척과 이웃을 잃고 망연자실, 어쩔 줄을 모르고 땅을 치는 경우를 흔히 본다. 만전의 태세를 갖추고 위기를 맞게 되는 국민도 국가도 있을 수가 없다.
휴전선 이북에 존재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김씨 왕조는 분단 직후부터 소련이라는 외세를 등에 업고 38선 이남의 대한민국을 하루도 쉬지 않고 괴롭히다가 1950년에는 무력으로 남침을 감행하여 한반도를 한때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 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을 비롯하여 KAL기 폭파, 연평도 포격 등 만행에 만행을 거듭하다가 최근 몇 해 동안은 핵무기 제조에 전념하여 이미 몇 차례나 실험발사를 감행하고 지난 설날 전에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자유를 사랑하는 전 세계민과 국가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만행을 저질렀으니 이것이 한반도의 위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6.25와 같은 전쟁이 또 일어나면 핵무기를 가진 Leviathan 같은 바다의 괴물을 우리는 과연 싸울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달려와 도울 수 있는 나라가 16개국은 아니고 기껏해야 미국 한 나라 뿐인데 만일 중국이 또 다시 김씨 왕조 편을 들어주면 우리는 더 엄청난 곤경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꼬리를 문다.
이런 위기 때는 미국 남북전쟁 때 북미합중국의 대통령에다 직제상 미육군과 해군 총사령관이던 링컨 같은 대통령이 필요한데 우리나라에는 설사 그런 인물이 있다고 해도 대통령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다.
George Pope Morris(1802-1864)는 남북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The Flag of the Union’이라는 노래를 읊으면서 미국 독립전쟁 때 유행했던 한 구절을 그 노래에 삽입했다.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
대한민국이 직면한 오늘의 위기도 그렇다. 우리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국론을 흔드는 자 어떤 인간인가

현미경은 망원경 보다 20년쯤 먼저 발명됐다고 한다. 화란 사람 Zaccharias Janssen이라는 이가 발명했다는데 세균 같은 미생물을 관찰하기 위해 만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1590년경이고 한다.

▲ 더불어민주당 이종걸(왼쪽) 원내대표가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결정과 관련, “선거를 앞둔 북풍전략이 아닌지하는 의심마저 든다”고 발언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망원경을 만든 사람은 따로 있지만 그 이듬해인 1609년에 이른바 Gallileo의 망원경이 등장하여 천체들과 인간의 거리가 단축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기구들은 생물학자나 천문학자들에게는 필요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필요하지 않다고 하겠다. 우리는 등산 가서 쓰는 망원경이나 잔글자를 크게 보는 돋보기만 있으면 된다. 세계지도도 5만분의 1이면 되지 그 이 상 자세한 지도는 쓸데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명함 한 장 크기면 족하지 실물의 5만분의 1은 점(点)하나도 안 될 것이고 5만 배 크기로 확대하면 입이 어딘지 코가 어딘지도 모르게 될 것이므로 지나친 확대나 지나친 축소는 결국 우리의 일상생활에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의 현실이나 역사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근시적(近視的) 안목을 견제하고 원시적(遠視的) 또는 거시적(巨視的) 안목이 있어야 한다. 멀리 내다보는 선각자의 견해가 조정에 의해 채택됐다면 임진왜란은 사전에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인데 율곡(栗谷)의 10만 양병설(養兵設)을 조정 중신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그리고 9년 뒤에 10만을 넘는 왜군이 쳐들어와 선조(宣祖)는 피난을 가야만 했다.
북의 김정은이 불장난을 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4차례나 핵실험을 감행하여 유엔 안보리가 북에 대한 규제와 제재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 흐름에 순응하여 우리도 미국과 협력, 한반도에 사드 배치를 추진하고 눈물을 머금고 개성공단의 문을 닫아 버렸다. 놈들의 돈줄을 끊기 위해서다.
여기에 국론을 흔드는 자들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인가. 한국인인가, 중국인인가, 아니면 김씨 왕조의 졸도들인가. 만일 그가 한국인라면 그는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은 소유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북한 국적을 가진 반동분자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걸 빼고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꼴불견, 세월호 천막이 뭡니까

꼴불견(不見)이란 낱말이 이젠 현대 한국인의 일상용어가 된 것 같다. ‘꼴불견’이란 “차마 눈 뜨고 못 보겠다”는 뜻으로 “꼴사납다”는 말과 다름없지만 순수한 우리말의 ‘꼴’과 한자의 ‘불견’(不見)이 잘 어울려 흥미진진한 낱말이 됐다고 생각된다.

▲ 새누리당은 12일 개성공단 중단을 ‘ 총선용 북풍’ 이라고 주장하는 야당에 대해오히려 야당이 국론을 분열시키며 개성공단 문제를 총선에 활용하고 있다고 반격했다. <사진=새누리당>

광화문 지나 사직터널을 향해 가다 곧 우회전 하면 효자동으로 가게 되는데 그 입구 첫 건물에 남자 조각이 흰빛으로 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가까이 가서 보지 않았다면 아테네의 조각가 Myron이 기원전 5세기에 만들었다는 ‘Discobolus’를 방불케 하는 젊은 남성의 나체 조각이다. 그런데 효자동 입구의 그 사나이는 행인들을 향해 45도로 상체를 굽혀 절하고 있는 것 같아 내 눈에는 꼴불견으로 비친 것이다. Myron의 작품은 원반을 던지려는 사나이의 힘찬 동작의 순간이 포착되어 남성의 육체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데 효자동 입구의 이 사나이는 벗은 몸으로 오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니 얼마나 대조적인가. 인사를 하려면 의관을 정제하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사회에는 이런 꼴불견이 하도 많아서 차마 볼 수 없는 꼴을 보고도 “그저 그러려니”하는 것 같다.
‘세월호’ 유가족 대표들이 광화문 네거리, 이순신 장군 동상 가까이에 천막을 치고 겨울을 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 그 사람들이 있을 곳이 없다면 서울시가 집을 마련해 주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광화문 네거리에 천막을 세우게 하다니 그게 어디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꼴불견이지요.
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본부장이 그 천막들을 헐라고 요로에 아무리 호소해도 헐리지 않자 격분하여 행동본부 동지들과 현장에 가 보았더니 보통천막이 아니라 콘크리트 기초를 단단히 만들고 그 위에 세운 천막이라 보통 힘쓰는 사람들의 완력으로는 허물수가 없었다고 한다.
국가권력은 도대체 이 꼴불견을 왜 그대로 두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선량한 시민들은 길을 가다가 ‘벌거벗은 사나이’의 절이나 받고, 울돌목 근처에서 침몰한 세월호가 유령처럼 천막이 되어 광화문 네거리에 떠 있어도 말 한마디 못하는 신세가 되었구려.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9호 (2016년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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