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세계, ‘미친개’ 잡기 쉽지 않지만…

[김동길 박사 ‘이게 뭡니까’]

사기꾼들 와글와글
정치가 너무 썩었길래
폭력세계, ‘미친개’ 잡기 쉽지 않지만…


글/연세대 명예교수, 태평양위원회 이사장

사기꾼이 나라를 부끄럽게 만들고 추악한 나라로 만든다. 아마도 사기꾼이 금강산 1만 2천봉보다 많은 12만 명쯤 될 것인가. 12만 명이 뭡니까, 120만 명이 될 것 같다. 누가 우리에게 “눈을 감으세요”라고 권하면 명상이 아니라 코를 베어다 젓가락 통 만들어 팔아먹기 위해서가 아닐까 두렵다고들 해요.

정치인이 너무 썩어 사기꾼 등쌀

사기꾼이 하도 많으니 한국인은 눈을 뜨고 있어야 못 생긴 코라도 보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카드도 마음대로 긁지 못한데요. 여기에 사기꾼이 와글와글해요. 전화 한 통화 잘 못 받고 그 자가 하라는 대로 했다가 재산상 큰 손실을 본 사람이 한둘 아니다. 스스로 노력해서 벌어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남들 등쳐서 먹고 살겠다는 인간이 이 나라에 수두룩하다. 똑똑한 국민이 어쩌다 이 꼴이 됐는가.
우선 정치가 썩었기 때문에 이런 불미스런 일들이 자꾸 벌어진다. 정치인이 썩었기 때문에 사기꾼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 자들이 권력의 그늘에서, 권력을 미끼로 민중을 속이는 것이다. 하도 교활해서 속을 수밖에 없다. 속이고 또 속이다가 나라를 송두리째 잃은 적도 있었다. 그것이 모두 위정자들의 잘못이었지 백성들 잘못은 아니었다.
사기꾼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이 대한민국 국회이다. 국민이 우러러 볼만한 일류 정치인이 거기에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도 열세에 몰려 속수무책이다. 그들이 더 이상 정치판에 남아 있을 생각을 않고 떠날 수 있는 날만 고대한다. 그래서 이 나라가 불행하다.
행정부에도 사기꾼이 있다. 사법부에도 상당수가 도사리고 앉아서 국민을 실망시키는 판결을 서슴지 않는다. 가장 고약한 사기꾼들이 거기 있는 걸 알고 깜짝 놀란다.
이런데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쓰다듬는다. 각계각층에 도사리고 있는 이 사기꾼들을 소탕하는 것이 권력의 최대임무라고 나는 믿는다.

폭력세계와 정신력의 세계

폭력이 우리들 가까이 있어 눈만 뜨면 볼 수 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실감난다. 법이나 질서를 무시한 ‘힘’을 폭력이라 한다. 법과 질서는 우리에게 평화와 행복을 주지만 폭력은 혼란과 고통을 준다.
인도의 저명화가이며 변호사인 젊은 여성이 팔다리가 절단되어 더러운 강물에 버려진 사건이 보도됐다.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아 범행동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치가 떨릴 만큼 잔인한 폭력의 소행이다.
근자에 전 세계를 공포의 정글로 몰고 가는 IS(Islamic State)는 폭력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한데 어떤 폭력도 그보다 더 크고 무서운 폭력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인류의 역사가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캄보디아의 폴 폿이라는 미친 독재자는 250만의 양민을 잔인무도하게 처형했다지만 그의 공포정치(Reign of Terror)도 처참하게 끝난 지 오래이다.
오늘 IS라는 폭력집단은 전 세계를 불안과 공포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가는 본업이 테러이다. 그러나 그자들도 더 큰 폭력 앞에 떨고 있다. 아무리 기관총으로 양민을 사살하고 자살폭탄을 가슴에 품고 군중 속으로 자폭해도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연합국의 화력을 이길 수는 없다. 어떤 폭력도 더 큰 폭력 앞에는 무릎을 꿇게 마련이다.
선량한 사람들의 억울한 피해를 줄이도록 노력하지만 미친개를 잡는 일이 쉽지는 않다. 피해자나 희생자가 나오게 마련이다. 정신력이 폭력을 이기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우리가 지치지만 않으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유물론자들이 뭐라고 하건 정신은 물질 위에 있고 인간의 정신력은 인간의 폭력을 이기게 마련이다. 제발 기죽지 맙시다.

이웃을 사랑하는 숭고한 사명

지구상의 70억 인구는 남자와 여자의 수가 비슷하다고 들었다. 전 세계가 전쟁에 휘말려 남자들만 전장에 나가야 했던 옛날 세월에는 전쟁이 끝나면 한동안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얼마 뒤에는 남녀의 수가 비슷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조화(造化)라 하겠다.
70억 세계인구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당연한 이이다. 자아(自我)를 찾는 일도, 그 자아를 제대로 관리하는 일도 모두 각자의 책임일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제 생각만 하고 이웃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면 그런 세상은 정말 살기가 힘들다.
아직도 굶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있다고 하지만 옛날에 비해 먹을 것, 입을 것도 많고 잠자리도 편해졌지만 사람의 행복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의 한국인 삶은 예전에 누리던 행복도 못 누리고 오히려 불행의 그림자만 짙어진 것 같다.
“수명이 길어지면 뭘 합니까. 오히려 불행한데…”
“잘 먹고 잘 살면 뭘 합니까. 하루하루가 즐겁지 않은데…”
왜 우리가 이 꼴이 됐을까. 분주하기만 한 산업사회에서 우리는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었고 그런 의식구조 때문에 우리가 마땅히 생각해야 할 이웃을 잃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외된 존재이고 매우 고독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처량한 인생이다.
이기주의는 인간을 절망으로 이끌고 때로는 자살 밖에 길이 없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람도 동물도 자연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가야지 무리하게 가면 불행한 사람이 더 많이 생길 뿐, 그것이 대안도 아니고 해결책도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각은 사랑으로 이어지고 사랑은 이웃을 만든다. 이웃을 도와주고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숭고한 사명이라고 나는 믿는다.

아, 외솔 최현배 선생님

외솔 최현배 선생님은 1894년 경북 울산에서 태어나 1970년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 어른의 76년의 다부진 삶은 오로지 한글을 위해 바친 생애다. 젊어서는 준비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한글을 위해 투쟁하셨고 마침내 한글의 승리를 쟁취하셨다.
외솔은 손기정 선수처럼 월계관을 쓰고 영원한 나라도 가셨다. 그것이 벌써 45년 전의 옛일이다.
겨레의 스승 외솔은 어려서 상경하여 한성고등학교(경기고)를 졸업하고 일본 히로시마의 고등사범을 거쳐 경도제대(京都帝大) 문학부 철학과를 다니며 스위스 교육자 페스타롯지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다. 1926년, 서른두 살 때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초빙되어 후학들을 가르치다 12년 뒤에 속칭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파면을 당했다. 그 뒤 1941년 10월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구속되어 4년간 옥고를 치르다가 해방으로 출옥했다.
그러나 학교로 돌아오지 않고 문교부 편수국장이 되어 6년간 그 자리를 지키셨기에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는 대학에 안 계셨지만 1954년 연대로 돌아오셔서 후진 양성에 진력하셨다. 문교부 편수국장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외솔은 각 급 학교 교과서가 한글전용 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그 자리를 지켰고 ‘한글만의 한국’을 만드는 기초공사를 단단히 하고 자리를 뜨신 것이다.
외솔은 1949년부터 20년간 한글학회 이사장을 맡아 20권의 책과 100편의 논문을 남긴 이 나라 학계의 거성(巨星)이다. ‘우리말본’, ‘한글갈’ 등은 한글연구의 금자탑이다. 외솔이 ‘한글전용촉진회’를 만든 것은 1949년이다. ‘한글만 쓰기’ 주장은 이 어른의 마지막 작품이다. 1930년에 이미 ‘조선민족갱생(更生)의 도(道)’를 저술하며 나라 사랑의 길은 ‘한글 사랑’이라고 했다. 아직도 한글만 쓰기에 의심을 품고 있는 상투꾼들은 차제에 외솔 최현배를 만나 의논해 보시기를 바란다. 최현배를 이기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7호 (2016년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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