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종교⑥]


시크교(Sikh)
힌두교와 이슬람 사상 융합


글/裵興稷(배흥직) 목사 (안동, 慶安老會 功勞 목사)

시크(Sikh)교는 인도 힌두교의 교도(敎徒)인 ‘나나크’라는 사람이 깊은 신앙심으로 창시한 종교이다. 시크교에는 인도 고유의 힌두교 신애(信愛)정신과 이슬람교의 신비사상이 융합되어 인도 서북부의 편잡한 지방에 퍼졌다.

시크교 박해 대항, 무굴제국 멸망

▲ 시크교 나나크 교조. <사진=웹사이트 www.sikh.com>

교조(敎祖)인 ‘나나크’는 편잡한 시골 ‘라호르’ 주변에서 출생하여 인도의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많은 지역 성자들을 찾아 만났는데 그 중에 ‘바크티’의 성자 ‘카비르’(1425~1492)에게서 큰 신비적인 영향을 받고 수양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도를 닦았다.
‘나나크’가 수양 중에 죽은 뒤 구루지방의 ‘아르준’(1563~1606) 시대에 교전(敎典)을 수집하여 완성시켰다. 이어 ‘암리차르’라는 곳에 사원 본산을 건립하면서 시크교 사람들이 내왕하기 시작했다. 세월이 지나 신도들이 많아지자 종교로서 교단을 조직하여 확대되어 가면서 인도의 무굴제국이 박해를 가하여 후대의 교주격인 ‘아르준’을 체포하여 1606년 처형했다.
이때 시크교도들은 무굴제국에 대항하여 끊임없이 전투집단화 하여 마침내 무굴제국이 쇠퇴하고 멸망했다. 그러나 곧이어 영국이 인도에 침입하여 시크교도와 다시 전쟁을 했다.
이때의 전쟁이 시크교가 영국에 대항하여 싸운 ‘시크전쟁’으로 불리며 이를 계기로 시크교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졌다.

영국군, 시크전쟁으로 인도 점령

시크교는 인도의 한 종파로서 인도 국민들의 깊은 신앙의 대상이다. ‘시크’는 제자(弟子)라는 뜻이나 AD 1500년경 ‘바벨 나나크’(Baber Nanak)라는 사람이 창시했다. 시크교는 미신을 거부하고 도덕을 존중하며 유일신을 믿는다.
시크교의 세력은 본래 판잡(panjab) 지방에 확산됐다. 19세기 초기부터 대내적으로 통일되고 강력한 독립 국가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영국군과 사틀 지방에서 싸웠다. 전쟁 초기에는 시크교도들이 우세하여 영국군을 여러 차례 격퇴시켰다. 그러다가 교도들 중에 영국군에 가담한 자들이 있어 패전하고 말았다.
그 뒤 1848년 4월 영국군의 사관이 살해된 사건으로 다시 전투가 벌어져 1850년 판잡지방을 점령하여 인도를 정복한 결과를 가져왔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7호 (2016년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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