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미래없다는 말 마시라

[김동길 박사 ‘이게 뭡니까’]

한국의 민주주의
정치부재의 원인있다
대한민국 미래없다는 말 마시라


글/연세대 명예교수, 태평양위원회 이사장

오늘의 정치판에 준비된 민주지도자 있나

공자는 정치에 뜻이 있었고 맹자도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한평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제창한 노자는 정치의 핵심이 무엇인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치일선에 나설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옛 왕조시대 정치인과 민중의 시대 정치인은 다르다. 옛날 정치인은 임금을 도와 선정(善政)을 베풀어 임금만 높임을 받으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그러므로 왕후장상(王侯將相) 영유종호(寧有種乎)라며 나서는 자는 대개 맞아죽었다.

현실정치가 어지러운 것을 보고 “임금이 되고 귀족이 되고 장수가 되고 재상이 되는 사람이 따로 종자가 있어서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는 희귀한 주장을 가지고 민중 앞에 나섰던 사람은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홍경래(洪景來, 1780~1812)가 민란(民亂)의 주동자로 나섰다가 서른두 살에 죽었다. 왕건이나 이성계는 특별한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상식처럼 된 우리시대의 정치인은 누구나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믿고 정계에 투신하지만 정당을 통하고 선거를 거치지 않고는 권력의 정상에 오를 수 없다. 또 의회나 국회가 정치의 무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무대가 항상 불확실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여당이 계속 집권하게 된다. 그럼 1961년의 야당인 민주당의 집권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것은 4.19라는 학생의거가 절대적인 역할을 한 것뿐, 장면을 비롯한 당시 야당인사들의 공은 아니었다.
박정희 집권도 5.16 쿠데타가 아니고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김대중의 집권도 야당 최초의 승리라고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일 뿐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DJ의 집권은 YS와 JP의 공동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3당 통합의 원죄(原罪)를 대속하기 위한 일종의 모험적 시도였는데 뜻밖에도 그런 상식 밖의 음모가 성공한 것뿐이다.
YS와 JP의 적극적 야합이 없었다면 야당의 집권은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유권자인 국민을 기만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국민이 좀 더 옳은 방향으로 계몽되지 않고는 민주정치가 불가능하다. 오늘의 한국 정치판에 진정 준비된 민주적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중국 왕조역사의 교훈, ‘반면교사’

중국 왕조는 하(夏)·은(殷)·주(周)나라로 이어졌다. 하 왕조는 마지막 황제가 걸왕(桀王)이고 은 왕조(殷王朝)는 마지막 황제가 주왕(紂王)이었다. 이 두 군주는 극악무도한 폭군으로 알려져 그들 때문에 왕조가 무너졌다.
그래서 시경(詩經)에는 ‘은감불원’(殷鑑不遠)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은 ‘남의 잘못을 거울삼아 그런 과오를 반복하지 말라’는 뜻인데, 만일 은나라 주왕이 바로 직전의 하나라 걸왕의 포악정치를 본받지 않고 선정(善政)을 베풀었으면 은나라가 하나라처럼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뜻이다.
역사에는 배울 것이 없다면서 제멋대로 나가는 지도자들이 간혹 있다. 그들을 두둔하는 역사학도들도 있다. 역사를 한평생 공부하고도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고집과 아집으로 일관하는 자들이 이 시대의 대한민국 역사가들이라면, 그들이 기록한 역사책에서 젊은이들이 과연 사실을 배우고 사실에 근거한 올바른 대처를 할 능력을 배양할 수 있을까.
사이비 역사학도들이 자기들의 구미에 맞게 서술한 왜곡된 국사교과서를 강제로 젊은이들에게 읽히는 폐단이 없도록 하기 위해 국정 교과서 한권을 펴내겠다는데 그 책이 나오기도 전에, 읽어보기도 전에, ‘절대불가’를 외치며 길거리에 나가, 밤이면 촛불시위 하겠다는 저의가 어디에 있을까.
국정 교과서가 하루 빨리 출간되어, 만일에 그 책에 사실에 어긋난 기록이 한 줄이라도 있으면 나도 손들고 나서서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세대차… 요즘 2030 다 잘생겼다

한 세대를 대개 25~30년으로 잡는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의 연령차가 그 정도이기에 생긴 말일 것이다. 옛 농경사회에서는 세대차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아버지 농사를 아들이 상속할 때 대대로 이어온 논밭일이니 아들의 지식이나 기술이 아버지를 능가할 수 없었기에 부자간이나 모녀간의 세대차가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 사회가 되어 세대차가 하도 심해서 아버지는 아들을 이해 못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 못한다. 또 엄마가 딸의 옷을 한 벌 사주는 일도 간단치가 않다. 백화점 옷 가게에서 모녀간에 전쟁이 벌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 나라의 근대화가 ‘한강의 기적’에 비유될 만큼 속도가 빠르게 이뤄져 가정마다 벌어진 갈등과 반목 또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복잡다단하다. 삼강오륜이 도덕으로서 무색해진 것도 이해가 간다. 그래서 효(孝)는 구시대의 유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세상이 된 것이다.
오늘의 2030 세대의 생각과 행동이 매우 건전하다는 평가가 파다하다. 왜 그럴까. 오늘의 아버지·어머니는 아들·딸과 교육수준이 비슷하다. 그들은 부모님과 많이 싸운 경험이 있어 자기의 아들딸과 싸우고 싶지 않다. 싸워봐야 별 수 없다고 느끼기에 아이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삼가고 자유방임주의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사회도 점차 정돈이 되고 나름대로 질서가 잡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요새 2030 세대 남녀가 모두 잘 생긴 사실에 기대를 걸고 희망을 갖게 된다. 우리시절에는 애를 낳았다고 하면 전부 못 생기고 잘 생긴 아이들은 사이사이에 몇이 끼어 있었는데 요새는 달라졌다. 낳았다고 하면 잘 생긴 아이들뿐이고 그 사이사이에 못 생긴 아이들이 더러 끼어 있을 뿐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는 자들은 모두 정신 나간 사람들, 그야말로 얼빠진 자들이니 그리 아시라.

함석헌 스승의 초상을 보며…

‘함석헌 평전’이 몇 달 전에 또 한권 출간되어 저자가 그 ‘평전’을 한권 나에게 보내 주었

▲ ‘함석헌 평전’

는데 그 표지의 사진 한 장이 하도 마음에 들어서 그 책은 지금도 내 책상 위에 있다.
선생님의 사진은 나도 몇 장 가지고 있다. ‘조선일보’의 부탁을 받고 선생님 댁을 찾아가 인터뷰를 할 때 함께 찍힌 사진도 한 장 있고 또 노년에 찍은 사진도 한두 장 있긴 하지만 ‘평전’ 표지의 사진은 정면에서 가까이 찍은 ‘작품’이라 얼굴의 윤곽, 이마의 주름살, 풍요한 흰 수염 그리고 ‘노인 반점’(Age spot)도 모두 선명하여 만년의 선생님 모습이 완연하였다.
나는 스승의 그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잘 생기셨을까!” 스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젊어서 처음 만나 뵈었을 때에는 스승의 나이는 48세, 나는 21세의 청년이었는데, 그 스승이 가신 지도 어언 26년, 내 나이도 이제 여든여덟이 되었다. 오늘 아침에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스스로 한탄하였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못생겼을까? 선생님의 예술적이고 단아한 그 모습에 비하면 내 얼굴에는 지성의 미가 전혀 없고 우락부락하다고만 느껴졌다. 솔직한 느낌이었다. 가식이 없는 나의 자화상에 대한 촌평이라고 할 수 있다. 과장도 아니고 내 얼굴에 대한 혹평도 아니다.
스승의 모습은 장원 급제한 선비, 그 얼굴에 연륜이 돋보이는 것 같았고, 내 얼굴은 막일만 해온 늙은 머슴의 꼴 같아서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다. 너무나도 스승의 그 경지에 미치지 못하는 한심스런 제자! 이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막다른 골목인데, 나의 삶이 실패라는 것은 나의 오늘의 이 늙은 얼굴이 증명해주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하늘이 나에게는 요만큼 밖에 주시지 않았으니 무슨 도리가 따로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런 훌륭한 스승을 나에게 허락하셔서 요만큼이라도 사람답게 살 수 있었음을 고맙게 생각할 뿐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6호 (2015년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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