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맹희 명예 빈소에 범 삼성가 호곡

재벌가(家)의 이모저모
분쟁·갈등도 사후화해
이맹희 명예 빈소에 범 삼성가 호곡
롯데 신동빈체제, 대한항공 숙원포기

▲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빈소.

삼성가(家) 장자인 이맹희(李孟熙) CJ그룹 명예회장의 일생을 언론이 ‘비운의 황태자’라고 규정했다. 부친 이병철(李秉喆) 창업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지 못하고 셋째 동생 이건희(李健熙) 회장이 승계하여 국내 최고재벌 총수를 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인의 여든넷 일생을 비운(悲運)이라고 단정하기보다 타고 난 성품 따라 엄친(嚴親)의 규율을 벗어나고자 했던 조선왕조 초기의 양녕대군(讓寧大君)과도 흡사한 삶이라고 볼 수도 있다.

CJ와 삼성그룹 오너가 우울할 때

이맹희 명예회장이 8월 14일, 베이징의 어느 병원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 날 CJ그룹과 삼성그룹 오너가 모두 반건강이 겹쳐 우울했다. 고인의 장남으로 CJ그룹을 이끌던 이재현 회장은 병보석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에 재판을 받고 있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의식이 희미한 채 삼성서울병원에 장기입원 중에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형제간의 상속재산 분쟁에서 이맹희 명예회장이 1·2심에서 패한 후 고소를 취하하고 “재산보다는 가족”이라고 선언했었지만 형제간에 만나 ‘형님, 아우님’ 하고 화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영영 이별하고 말았다.
이처럼 혈육 간의 슬픈 이별을 생각하면 범(汎) 삼성가의 비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이맹희 명예회장이 타국 땅에서 운명한 후 서울대병원 영안실로 운구 되어 범 삼성가 형제자매들이 다 모여 함께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다소 아쉬운 ‘사후 화해’ 모양이었다.

범 삼성가에 ‘어른’ 장녀 있었다

고인은 삼성그룹을 떠났지만 장남 이재현(55) 회장이 CJ그룹을 번창시켜 명예회장으로 부러울 것 없는 명예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장남이 중병으로 상주노릇을 할 수 없어 차남 이재환(53)과 장녀 이미경(57) CJ그룹 부회장이 대신했다. 또 손자, 손녀 4남매도 영안실을 지켰다.
그러나 미망인 손복남(82) 그룹 고문마저 아들과 함께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니 조문객들 눈에 CJ가(家)의 불운이 겹쳐 보였다.
이맹희·이건희 형제간 상속재산 분쟁이 세상인심으로부터 지탄을 받았지만 범 삼성가에는 이병철 회장의 장녀 이인희(87) 한솔그룹 고문이 어른 역할을 했었다. “선대의 유산 상속은 벌써 20년 전에 끝난 일”이라는 이인희 고문의 한마디로 수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맹희 명예회장의 빈소에도 큰 누나인 이인희 고문이 제일 먼저 달려왔다. 곧이어 여동생 이숙희(80), 이순희(77)씨가 조문하고 막내 여동생 이명희(72) 신세계그룹 회장은 장남 정용진(47) 부회장, 딸 정유경(43) 부사장과 함께 큰 오빠의 죽음을 애도했다.
삼성에서는 와병 중인 이건희(73) 회장을 대신하여 부인 홍라희(70) 미술관장, 장남 이재용(47) 부회장, 장녀 이부진(45) 호텔신라 사장, 차녀 이서현(42) 제일모직 사장 등이 모두 조문했다.
삼성가 3형제 가운데 일찍 세상을 떠난 이창희(李昌熙) 씨의 미망인 이영자(78) 새한그룹 회장은 장남 이재관 부회장과 함께 문상했다. 이렇게 짚어보니 고인의 영혼 앞에 이맹희·이창희·이건희 3형제의 범 삼성가(家)가 혈육의 정을 보여주었다.
고인의 장례는 이채욱 CJ 부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처남 손경식(76) 그룹회장이 조문객을 맞으면서 CJ그룹장으로 영결했다.

▲ (왼쪽부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 범 삼성가 인사들이 잇따라 장례식장을 찾았다.

신동빈체제, 롯데경영과 가족은 별개

롯데가(家)의 신동주·신동빈 형제간 경영권 분쟁은 동생 신동빈체제로 일단락됐다. 지난 8월 17일 도쿄 제국호텔에서 일본롯데홀딩스의 임시 주총은 신동빈 회장이 제안한 사외이사 선임과 지배구조 개선 안건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이로써 창업주 신격호(94) 총괄회장의 구두 지시경영을 종식시키고 ‘혈족경영’이란 세간의 지탄을 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믿어진다. 동생 신동빈 회장은 그동안 한국롯데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경영력을 평가받아 ‘법과 원칙’에 따른 한·일롯데의 원톱 리더로서 ‘뉴 롯데’를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주총에는 신격호 총괄회장과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 측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한 것으로 관측된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결과에 승복하기보다 주주권을 발동하여 이사진 해임요구 주총 소집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니 앞으로 분쟁의 여지는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미 대세는 판정 난 것으로 관측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동빈 회장은 상당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룹 경영과 가족의 분리원칙’을 강조했으니 이 시각 현재 롯데경영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원칙의 확인이다.
앞으로 신동빈 회장 체제는 창업주의 지시경영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무출자 혈족의 경영참여를 배제시켜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존경 받는 롯데상을 확립하는 과제가 시급하다. 이를 위해 신 회장이 국민 앞에 약속한 대로 순환출자 고리를 최대한 빨리 해소하고 일본롯데홀딩스 지배로부터 독립해야만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보지만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임이 너무나 분명하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롯데사건 관련 재벌개혁이 도마 위에 오르고 ‘롯데법’(안)이 무더기로 추진되고 있는 상황을 깊이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롯데 ‘형제의 난’은 창업주의 노욕으로까지 비판되는 혈족 간 소유와 지배구조를 청산하고 한국롯데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라고 긍정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끝내 한옥형 특급호텔 안돼

대한항공이 숙원사업으로 추진해 온 경복궁 옆 노른자 부지의 한옥형 특급호텔 건립계획은 끝내 무산되고 마는가. 김종덕 문화체육부 장관이 지난 18일, 대한항공이 ‘문화융성’ 국정방침에 따라 호텔 대신에 복합문화센터로서 ‘K-Experience’를 건립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김 장관 기자회견에는 대한항공 조성배 상무가 배석하여 “호텔은 빼고 공연장, 전시관, 전통문화 체험장 등을 2017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왜 대한항공이 오랜 숙원사업을 포기하고 문화센터 건립으로 전환했을까. 순수한 대한항공의 의사결정일까. 경복궁 옆 넓은 부지에 복합문화센터를 세우면 북촌 한옥마을 등과 연계하여 한류관광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호텔은 빼고” 문화센터를 만드는 것이 대한항공의 본업이나 주력사업 종목에 비춰 성에 찰 수 있겠는가.
정치와 사회가 재벌의 손목을 비틀어 7성급 한옥형 특급호텔 계획을 끝내 무산시킨 결과는 아닐까. 정치권의 눈에 ‘재벌이 미워’ 학교 인근에 호텔이라는 ‘유해시설’을 건립하지 못하도록 규제한 결과로 비쳐지니 말이다.

정치권의 ‘재벌이 미워’로 호텔은 빼고…

과거 미 대사관의 숙소이던 이곳 부지는 지난 2008년 대한항공이 호텔 건립을 위해 2,900억원을 들여 매입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그동안 대한항공이 죽을힘을 다 쏟는 모습을 보여 주었었다. 행정소송, 헌법소원도 제기했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날렸을까.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혁파 회의에서 관광진흥법을 개정해서라도 고급 호텔 건립을 추진하는 것이 일자리 창출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시도 무력했다. 국회에서 야당이 ‘재벌특혜법’이라고 일방 규정함에 따라 도무지 법을 개정하여 호텔을 건립할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이 좋은 구실이 되기도 했다. 결국 대한항공의 숙원사업은 물 건너가고 말았으니 이를 어찌 정상이라 볼 수 있는가.
재벌이 미운 짓을 한 적이 있었다. 대한항공이 미운 짓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재벌 사업을 미워만 해야 할까. 초특급 한옥형 관광호텔을 ‘혐오시설’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판단일까.
대한항공의 복합문화센터 건립계획이 한류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바람직하다는 측면이 있지만 ‘재벌이 미워’ 끝내 정치적 압력으로 ‘호텔은 빼고’라는 굴복을 받아낸 것은 정치도 아니고 행정도 아니라고 비쳐지는 것이 사실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3호 (2015년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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