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적화통일 망상, 영생 꿈꾸나

[김동길 박사 '이게 뭡니까']

김정은 무엇을 노리나
3대 세습독재의 헛된 꿈
아직도 적화통일 망상, 영생 꿈꾸나


글/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태평양위원회 이사장)

북의 김정은이 무엇을 노리고 있을까. 그의 가장 큰 소원은 한반도의 적화통일이다. 그에게는 그 이상의 꿈도 이하의 꿈도 없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한결같이 소망하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잔인무도한 폭군의 말로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은 스탈린, 모택동과 공모하여 남침을 감행했고 무력으로 한반도를 공산국가로 만들기 위해 6.25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유엔군이 맥아더 장군 지휘 하에 인천상륙 작전을 감행하는 바람에 김일성은 북으로 도망가 어디엔가 숨어 있었다. 그러다가 약속대로 모택동의 인민해방군이 끼어들어 우리는 두 번째 피난길에 올랐고 3년 뒤에 휴전이 성립되어 휴전선이 그어지고 개성은 인민군에게 빼앗기고 우리는 설악산을 차지하여 오늘에 이른다.
김정일은 자기의 아비 못지않게 잔인하여 여러 차례 숙청을 거듭하면서도 살아남아 진시황(秦始皇) 못지않은 잔인한 지도자로 낙인찍혔는데 그가 김대중·노무현을 협박, 공갈하여 상당한 액수의 금품을 뜯어냈지만 자질구레한 나쁜 짓을 많이 했지 남침은 해보지 못하고 일생을 마쳤다. 그의 사생활은 하도 복잡하여 제대로 아는 이가 없다.
3대 세습독재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의 잔인성에다 무도를 더하여 ‘잔인무도’한 전제군주요 세상에 없는 폭군이라 하겠다. 닥치는 대로 죄 없는 측근들도 잡아 죽이는 걸 보면 오래가지 못하겠다고 예측할 수밖에 없다.
모든 독재자의 말로는 비극적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김정은도 예외는 아닐 것으로 확신한다.

독재자의 헛된 영생의 꿈

독재자는 오래 살기를 바랄 뿐 아니라 영원히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김없이 독재자들은 일찍 가게 된다.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로부터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에 이르기까지 아직 살아 있는 독재자는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 독재자들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독재자들은 죽은 뒤에 시신을 영구보존하려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83년에 스페인의 마드리드에 가서 프랑코(Franco)의 무덤을 찾아 가겠다고 하니 영어 잘 하는 젊은이가 농담조로 한마디 했다.
“가 보세요. 그는 눕혀서 묻지 않고 엎어서 묻었으며 그 위에 큰 돌을 얹어 짓눌러 놨습니다. 다시는 일어나지 말라고…”
프랑코는 오랜 투병생활 하면서 사후의 정권 쟁탈전을 지켜본 셈인데 그의 사후에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는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사망한 것 같다. 그런데도 그의 묘소는 사후 19년간 죄수들의 강제노동으로 조성됐다는 사실이 놀랍다.
레닌(Lenin)은 1924년에 사망했고 스탈린(Stalin)은 29년 뒤에 사망했는데 두 사람은 나란히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의 Mausoleum(영묘, 靈廟)에 누워 있었다. 그 뒤 후르시초프가 집권한 후 어느 날 밤 스탈린의 시신은 시골 묘지로 옮겨 흙에 묻어버렸다고 들었다.
레닌을 본 받아 북조선 김일성도 1994년 죽은 뒤 그의 시신을 러시아의 생물구조연구센터에 맡겨 100만 달러를 들여 전문가 7인이 보존처리 했으며 연간 관리비만 80만 달러가 소요된다고 하니 독재자는 죽어서도 국민세금을 낭비하는 셈이다.
김일성·김정일에 이어 3대 김정은은 남달리 성미가 급하다고 하니 살아있는 자신을 ‘미라’로 만들어 보존하라고 불호령을 내릴지도 알 수 없다.

사람마다 꿈이야 다 있지요

사람마다 꿈이 있다. 죽기 전에 자식들에게 19평 아파트 하나 마련해 주고 싶다는 어느 가장의 꿈이나 5년 임기 중에 4대 개혁을 마무리 짓고 싶어하는 대통령의 꿈이나 다를 것이 없다.
아파트 꿈의 가장(家長)이야 역사에 이름을 남길 꿈이 없겠지만 대통령은 이름을 역사에 남기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두툼한 세계사를 아무리 뒤져봐도 우리 동네사람 이름은 하나도 없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도 보이지 않는다.
역사가의 눈에는 위대한 어른들의 당당한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지만 잘못된 말이다. 깔고 앉아 있는 호랑이의 가죽이 어느 호랑이의 가죽인지 알 길이 없다. 알아도 쓸모가 없다. 영웅호걸이나 절세미인도 그저 그렇다. 옛날에 유행했던 ‘허사가’(虛死歌)의 일절을 다시 되새겨 본다.

세상만사 살피니 참 헛되구나
부귀공명(富貴功名)장수(長壽)는 무엇하리오
고대광실(高臺廣室)높은 집, 문전옥답(門前沃畓)도
우리 한번 죽으면 일장(一場)의 춘몽(春夢)
그렇지 않다고 반발하는 사람 손들고 나오세요
남기고 갈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이 사실을 알고 조금은 지혜롭게 삽시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남기고 갔답니다.

해방 70돌… 한가지 소망

나는 광복 70주년 대사면 소문이 파다하여 재소자의 절반쯤은 풀어줄 것으로 크게 기대했다가 크게 실망했다. 앞으로 다시 70년을 기다려야 대사면의 계기가 마련된다면 그해가 2085년으로 오늘의 수감자들 95%는 다 저세상으로 떠났을 것이다. 내가 그날의 감격에 동참하리라면 158세까지 살아야 한다는 계산이니 하늘의 별 따기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에 꼭 한 가지를 갈망하는 나의 꿈이 또 하나 있다. 광복절(光復節)을 건국절(建國節)로 바꿔야 한다는 소망이다.
‘광복’은 일제의 쇠사슬을 끊고 해방을 맞이했다는 뜻이니 ‘해방 기념일’로 부르면 충분하다. 노예의 신분을 청산하고 자유인이 된 것이 대견스럽지만 그 왕년의 노예들이 3년간 미군정(軍政)을 잘 참고 드디어 새나라 대한민국을 세운 사실이 얼마나 기특하게 여겨지는가.
1948년에는 마땅히 8.15가 건국 기념일로 제정됐어야 했다. 2년 뒤 북한 인민군이 남침하는 바람에 그럴 겨를이 없었다면 전쟁이 끝난 1953년에는 제5회 건국 기념일 행사를 했어야만 했다. 김일성이 무서워 벌벌 떠는 인간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면 지나친 말이 되겠는가.
상해 임시정부 때에도 주권국가는 우리에게 없었다. 미군정 3년이 엄연한 현실이던 때에도 우리에게 대한민국이라는 합법정부가 없었다. 광복이 있었기에 건국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해방이 되고도 방황하는 국민 신세가 되어 나라를 세우지 못할 수 있었다. 이제 해방 기념일은 그 빛을 다 잃었다. 올해 8.15는 67회 건국 기념일이었다. 내년에는 남북이 다 모여 68회 건국절을 기념하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일제하의 민족변호사 3인 추억

일제 강점기 민족 변호사 3인이라면 김병로(金炳魯), 이인(李仁), 허헌(許憲) 등으로 모두의 추앙을 받았다. 옛날에도 변호사는 ‘허가 받은 도둑’이란 비난을 받았지만 요즘은 더 심한 욕을 먹는 변호사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일제시절 ‘민족 변호사’라는 말이 생긴 것은 돈을 벌기 위해 변호사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의 직분과 능력을 오로지 민족을 위해 바쳤다는 뜻이다.
15년 전쯤 허헌 변호사의 따님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따님 허근욱 씨는 KBS에서 아주 조용하게 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그 따님이 ‘민족 변호사 허헌’이란 이름으로 부친의 평전을 집필, 출간했다.
변호사 허헌은 1885년 생으로 일본 명치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24세 때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1945년까지 김병로, 이인과 함께 민족 변호사로서의 고된 길을 걸어왔다. 8.15 때는 이미 61세의 나이로 여운형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를 도와 혼란스러운 정국수습에 노력했고 신민당, 인민당, 공산당이 합당하여 ‘남조선 노동당’을 조직하자 1946년 11월 위원장에 선출됐다.
이 무렵 미·소공동위원회는 남북통일에 아무런 기여도 못하고 결렬되고, 1948년 남북 정치 지도자 연석회의도 황해도 해주에서 개최됐지만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때 ‘연석회의’가 끝난 후 김구와 김규식은 서울로 돌아왔으나 허헌은 북한에 눌러 앉아 가족을 평양으로 불러들였다. 그는 최고인민회의 의장 자리에 앉았지만 중도 좌파이던 허헌이 김일성 독재 아래에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었겠는가.
허헌은 6.25 이듬해에 배를 타고 가다 홍수로 배가 뒤집혀 익사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허헌의 ‘중도 좌파’란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를 쓸쓸하게 회상하는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3호 (2015년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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