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입법권 침해, ‘입법독재’ 여론비난

‘제왕적 야당’ 주도 국회
입법 만능주의 독주
행정입법권 침해, ‘입법독재’ 여론비난
대통령 수용 불가로 국정혼란 불가피

특권(特權)의식의 국회가 입법 만능주의(萬能主義) 오기를 부렸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연계입법’ 독선(獨善)이란 말도 나오고 ‘입법독재’(立法獨裁)라는 비판도 보도됐다. 식물국회라는 비판 받은 ‘제2의 국회선진화법’이라고도 지적할 수 있다. 집권 여당이 제왕적(帝王的) 야당에 끌려 다녔다는 비판도 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3권분립 원칙훼손에서 위헌론까지

▲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오른쪽)가 1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강력 비판하고 있다. <사진=새정치민주연합>

지난 5월 29일 새벽국회가 ‘더 내고 덜 받는’ 모양새의 공무원연금법 개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점은 평가된다. 그러나 내용은 ‘죽도 밥도 아닌’ 맹탕이란 비판 속에 개혁시늉만 담았으니 차기정권에서 다시 개혁론이 나오게 되어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난데없이 정부의 행정 입법권인 시행령에 대한 수정·변경권을 끌어다 붙인 국회법 개정이 말썽을 몰고 왔다. 당초 국회 운영위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이는 3권분립 원칙 훼손으로 위헌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도 양당 대표 간 협상에서 시행령에 대한 수정 요구권도 ‘입법권의 본질’이라고 주장, 밀어 붙였으니 독선이다. 시행령이 입법취지(모법)와 내용이 불합치하다고 판단되면 국회가 변경, 수정을 요구하고 정부 측은 처리결과를 국회 상임위에 보고해야 한다는 요지다.
이는 입법부가 행정입법권에 개입한다는 의미에서 월권이자 입법 만능주의로 비판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회운영위에서 여야 의원 간에 삼권분립 원칙 훼손, 위헌소지 등이 지적된 바 있고 청와대가 새누리당 지도부에게 “공무원연금 개혁을 못해도 국회법 개정은 안 된다”는 입장을 전달했는데도 유승민 대표가 야당과 ‘연계입법’에 합의했다는 점에서 당·청간의 갈등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청와대 거부에 ‘대통령이 헌법공부 좀…’

청와대가 김성우 홍보수석을 통해 “법률의 집행을 위한 시행령을 국회가 좌지우지 하면 행정부 기능이 마비되고 3권분립 원칙이 훼손된다”고 지적하고 법안을 정부에 송부하기 앞서 면밀한 검토를 요청했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협상 당사자인 유승민 대표마저 “결코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라면서 청와대 입장을 반박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회의를 통해 “정부로서는 이 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이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뜻할 수 있고 헌재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대통령과 국회의 대립 및 집권당 내부의 갈등으로 국정혼란이 어디까지 갈는지 알 수 없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과 뜻이 다를 수 없다”는 갈등수습 의사를 밝혔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대통령이 너무 과하다”고 지적했고 이종걸 원내대표는 ‘국회와의 전쟁’이라 규정하고 ‘재협상 불가’를 선언했다.
이보다 앞서 이 대표는 국회가 시행령에 대해 수정 변경을 요구하는 것은 3권분립의 균형이 깨지는 경우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대통령이 좀 더 헌법공부를 해야…”, 정부에 대해서는 “요즘 공무원들이 대통령을 닮아서 공부를 안 하는 모양”이라고 빈정거린 말투로 비난했었다.

이종걸대표의 연속 연계입법 발상

왜 국회가 위헌소지 논란을 빚을 시행령 수정권을 전격 입법했을까. 외부에서 관측하기로는 공무원연금 개혁에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50% 연계안에 대한 여론비판이 악화되자 새누리당 유승민 대표가 새민련 이종걸 대표의 연속 연계작전에 끌려간 모양새이다.
당초 김무성 대표는 공무원연금 개혁에 관해 ‘공무원과 등을 지더라도’, ‘선거에서 표를 잃더라도’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국회선진화법을 무기로 삼는 ‘제왕적 야당’의 발목을 의식하여 연계입법 작전에 굴복한 셈이다. 반면에 새민련 문재인 대표는 4.29 재보선 참패 후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을 혁신위원장으로 영입하여 ‘살을 베고 뼈를 깎는다’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각오로 당 혁신 각오를 밝혔다. 그러나 비노(非盧)계 이종걸 대표의 연속 입법연계 작전에 손을 쓰지 못했다.
이종걸 대표는 여당이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50% 명기 조건을 강력 거부하자 기초연금 지급기준인 소득 하위 70%를 90%로 올리고 법인세 인상과 연계시키자고 주장했지만 말도 안 된다는 비판을 받고 말았다. 그 뒤 문형표 복지부 장관에 대한 해임결의안 상정,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개정과 연계시키자는 주장을 들고 나왔지만 역시 새누리당의 완강한 반대로 실패했다.
그는 이에 물러서지 않고 행정입법인 시행령에 대한 수정 변경권을 규정한 국회법 개정과 연계시켜 유승민 대표와 합의에 성공, 압도적인 표결로 입법에 성공한 것이다.

야당이 손보겠다는 11개 법시행령

국회법 개정 이후 각계 언론의 비난에다 청와대의 거부 및 새누리당 내부의 유승민 대표 인책론이 나오고 언론도 ‘입법독재’를 결자해지(結者解之)하라고 촉구했다.
법무부와 법제처가 위헌소지를 지적하기도 했다. 모법과 시행령 간의 위배는 법원이 판단할 사항인데 국회가 행정입법권과 사법권을 침해할 경우 위헌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법조인들의 견해도 비슷한 논리로 사법권 침해, 위헌소지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종걸 대표는 조금도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고 각 상임위를 통해 모법의 입법취지를 침해한 시행령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고 지자체에 대해서도 수정 변경 필요성 있는 시행령을 제보해 주도록 지시했다.
마침내 새민련이 수정 변경이 필요한 주요 시행령 11개를 발표했다.
△세월호 특별법 : 모법은 진상규명 조사위를 120명으로 구성했으나 시행령은 90명으로 출발, 6개월 뒤 30명 추가 △누리과정(3~5세 무상교육) 관련 지방재정법·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유아교육법 등 : 모법이 위임한 범위를 일탈, 지방채 발행을 통해 누리과정 예산편성 의무화 △노조법·노동관계법 : 시행령을 통해 노조설립 신고서 시정요구 불이행시 ‘법외노조’ 통보 △근로기준법 : 예외적 연장근로 한도가 1주 12시간으로 규정되어 있으나 고용노동부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유권해석 △의료법 :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의료기관의 부대사업을 추가토록 추진 △학교보건법 : 학교 옆 관광호텔 건립은 학교 환경위생정화위원회의 심의규정이나 교육부장관 훈령 제정으로 추진 △국가재정법 : 보(洑)와 준설을 재해예방사업으로 규정, 4대강사업 관련 예비타당성 조사 배제 △국립대 회계처리 및 재정운용법 : 교직원을 교사·교감·교장 및 일반 행정직으로 규정했으나 시행령이 교원으로 변경, 일반 행정직 배제 △FTA 농어업인 지원법 : 시행령이 수입으로 인한 가격하락 비중을 기준으로 ‘수입기여도’를 적용 △5.18 민주화운동 보상법 : 피해보상 신청기간을 2015. 5월까지로 개정했으나 시행령 미개정 △경제자유구역법 : 시행령 개정을 통해 외국인 카지노 공모제 도입 추진 등.

일자리 창출법을 ‘국민 해코지법’ 규정

국회법 개정과 관련 국회선진화법 개정론이 다시 제기되고 있지만 이를 개정하려 해도 ‘제왕적 야당’이 발목을 잡고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이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지만 언제 결론이 나올는지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국회선진화법이란 이름의 ‘국회후진법’, ‘식물국회법’이 살아 있고 다시 행정입법권을 침해한 국회법 개정으로 입법 만능주의가 국정 전반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후폭풍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국회는 박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 관련 법안들이 ‘국민을 해코지 하지 않는 법’이라며 조속한 처리를 요청하자 야당이 즉각 ‘국민을 해코지 하는 법’이므로 통과시킬 수 없다고 응대했다.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 관광진흥법, 의료법, 국제의료사업 지원법, 크라우드 펀딩법 등이 모두 청년 일자리 창출과 관련되어 경제계가 계속 입법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니까 야당은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기 위해 이들 법안을 표류시키고 있지 않느냐는 인상이다.
대통령은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와 임명동의안을 앞두고 미국 방문 일정에 쫓기는 입장이다. 야당의 반발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갈등을 생각하면 첩첩산중 격이다.
대통령 중심제로 ‘황제적 대통령’이란 비판이 있지만 실제로는 야당이 바로 제왕적 지위에서 입법부는 물론 행정부까지 압박하는 기상으로 비쳐진다. 입법과 예산심의권에서부터 국정감사와 국정조사, 특검제 및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권에다 인사청문회와 임명동의제 등으로 행정부를 견제하는 수단이 다양하다. 반면에 대통령이 입법부를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은 제한된 거부권 행사 외에 별다른 수단이 없어 보인다.
이처럼 국회의 입법 만능주의의 독주 속에 민생은 누가 보살펴 주느냐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1호 (2015년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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