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1등만 말고 ‘ 거짓말 말라’ 가르쳤으면…

메르스보다 무서운 것
‘거짓말’ 전염 공포
공부1등만 말고 ‘ 거짓말 말라’ 가르쳤으면…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태평양위원회 이사장

‘거짓된 말’만 나쁜 것이 아니다. ‘거짓된 표정’, ‘거짓된 태도’도 다 잘못이다. ‘거짓’이 개인을 망치고 가정을 망치고 마침내 나라도 망하게 만든다.
나는 세월호의 침몰이나 MERS 같은 역병의 창궐을 두려워하기보다 지도층에 만연된 거짓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고 믿는다.

거짓말 안하기 국민운동 나왔으면…

세월호나 메르스 때문에 많은 인명이 손실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나라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도층의 거짓말은 나라를 송두리째 망하게 할 수도 있다.
거짓말의 파급효과는 흑사병 같은 악성 전염병보다도 더 빠르다. 한마디의 거짓말을 덮기 위해 10마디의 더 큰 거짓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거짓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사회를 형편없이 만들 가능성이 많다는 말이다.
아버지를 속인 거짓말 한마디가 그 집안을 망칠 수 있고 딸이 어머니를 속인 거짓말 한마디가 온 집안을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꼭 1등 해야 한다”고 야단치는 부모는 많지만, “너 거짓말 하면 내 자식 아니다”라고 가르치는 부모는 찾아보기 어렵다.
부모가 된 그도 학생 때 1등 한 번 한 적이 없을 뿐더러 거짓말 하면서 젊은 날을 허송했기 때문에 “거짓말 하지 말라”고 일러줄 용기가 나지 않을 것이다.
정직하게 살려고 애쓰다가 출세도 못하고 손해를 많이 본 ‘소중한’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그들을 대하면 우선 그 인품에 감탄하게 되는데 비록 생활에 물질적 여유는 없지만 모두 훌륭한 문화인들이고, 어김없이 그들의 아들딸은 다 잘 되어 우리사회의 버팀목이 되어 있음을 알고 한 번 더 감탄한다.
가족이 잘 되려면 부모가 거짓말 안 하고, 학교가 잘 되려면 교사들이 거짓말을 안 해야 한다. 정치인과 기업인이 거짓말을 안 했으면 이 나라의 GDP가 5만 달러는 됐을 것이다. 똑똑한 사람들이 작심하고 거짓말만 하니 오늘의 대한민국이 허덕허덕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영국, 프랑스, 독일보다 훌륭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 아침부터 양심의 원점으로 돌아가 거짓말을 안 하는 국민이 되면 가능한 것이다. ‘거짓말 안 하기 운동’으로 이 나라를 살리겠다는 정치인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인가. 거짓말 때문에 나라가 이 꼴이 됐는데도…

MERS에 덜덜 떠는 KOREA

▲ 현장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시골은 모르겠으나 대도시는 MERS 공포에 덜덜 떨고 있다. 치사율이 높은데다가 병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신참’ 감염병이라니 약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언론에 매일 감염자와 격리자 및 사망자가 보도되고 있다. 보건당국은 뭘 하고 있고 대통령은 어디 있느냐고 호통이다. 국회는 보건복지부 장관 해임을 독촉하고 병원 폐쇄를 주장하기도 한다. 모두가 메르스에 덜덜 떨고 있으니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보건복지부 장관이 다 책임을 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두가 야단만 치니 장관자리를 수락한 사실을 크게 후회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벼룩과 쥐가 병균을 전달하여 무서운 전염병이 나온 적이 많았다. 1347년의 ‘흑사병’은 진원지가 콘스탄티노플이었는데 이때 유럽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다. 오늘의 MERS가 그런 위력을 가진 전염병은 아니라고 믿는다. 나는 MERS의 위세는 곧 꺾일 것으로 믿는다.
두려워하고 초조한 마음이 우리들의 삶의 현장을 지옥으로 만든다. 영국속담에 “고양이도 걱정이 많다더니 그만 죽더라”(Care killed a cat)고 했다. MERS가 호흡기를 통해 감염된다고 하니 최선의 예방책은 숨을 쉬지 말아야 한다는 말인지 답답하다.
마음 놓고 살아도 오래 살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세월호 이어 메르스에 슬픈 대통령

대통령을 생각하니 마음이 허전하고 슬프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힘겹게 당선 확정됐을 때 우리는 무척 기뻤다. 어느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보다도 감격스러웠다. 조국의 앞날에 서광이 비친다고 믿었다. 그리고 2년 반이 지난 오늘 나는 실망스럽기보다 오히려 슬프다는 느낌이 앞선다. 우리의 조국이 한번 높이 뜰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과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권선택 대전광역시장, 남경필 경기도 도지사, 안희정 충청남도 도지사가 지난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메르스 퇴치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진=보건복지부>

작년에는 여객선 ‘세월호’ 침몰이 대통령 얼굴에 강타를 날렸다.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펀치였다. 마땅히 피했어야 할 펀치였다고 믿는다.
세월호 침몰의 책임을 왜 박근혜 대통령이 져야 하는가. 책임은 선장 이준석에게 있고 여객선 선주인 유병언에게 있다는 사실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어쩌자고 그런 음모에 휘말려 들어가 대통령의 마음고생이 얼마며 정치와 경제가 얼마나 휘청거리게 됐는가.
말할 수 없는 시간과 재정의 낭비는 크게 반성해야 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 ‘키’ 한번 잡아 보지 못한 여객선 침몰의 책임을 왜 전적으로 져야 하는가. 언제나 어디서나 책임소재는 분명해야 하고 책임의 한계도 뚜렷해야 한다. 대통령이 그 참사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권면한 측근이 있다면 그는 가히 역적이라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중동 독감이라는 메르스가 한국으로 잠입했는데 그것도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을 지라는 것인가. 그것이 질병 전문가들의 의견인가, 아니면 무식한 시중 잡배들, 정치 건달들의 억지인가.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메르스 때문에 오바마와 면담을 취소한 것은 또 어떤 간신의 권면인가. 아니면 대통령 자신의 우발적인 결단인가.
이제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세월호 아닌 대한민국호가 침몰위기에 직면한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래서 슬픈 것이다. 썩어서 냄새날 뿐더러 한참 뒤떨어진 이 나라의 낡은 정치가 모처럼 이 나라 역사에 나타난 아름다운 정치인의 꿈을 이렇게 산산조각 나게 해도 되는 것인가.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드는 심정이다.

대한민국의 존재이유 아십니까

내가 사는 동네에 값싼 음식점이 하나 있는데 식당 간판이 ‘존재 이유’다. 연대와 이대 등 두 개 큰 대학 사이에서 영업하다 보니 이런 철학적인 옥호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근년에는 대학에서도 안 하는 철학을 이 값싼 음식점에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대한민국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가지각색의 답변이 나올 것이다. 거기에 내 답변을 보탠다면 간단명료하다. “자유민주주의로 통일을 달성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하고자.”
대한민국이 들고 나가야 할 깃발은 이거 하나 뿐이다. 거기에 복지국가, 사회주의 등의 표어도 당장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진보나 보수의 슬로건은 더더욱 불필요하다.
야당도 집권을 하려면, 국민과 역사의 박수를 받으려면, 자유민주주의 밖에는 없다. 나는 그 사실은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상당히 ‘지혜롭게’, ‘당당하게’ 이날까지 살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만일 오늘의 야당이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알았다면 신익희(申翼熙), 조병옥(趙炳玉)이 당대에는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아마도 역대 대통령 10명 가운데 5명은 민주당에서 배출했을 것이다. 김대중이 야당 힘만으로 집권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여당의 김영삼이나 여권의 김종필 도움이 없었다면 집권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생각해보세요. 피를 흘려 자유민주주의를 사수한 대한민국이 친북, 종북을 용납할 수 있다고 믿는가. 그것은 큰 착각이다. 야당도 내 말 듣고 자유민주주의만을 고집하기를 권고한다. 그러면 승리는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1호 (2015년 7월호) 기사입니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