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한필순 박사의 미완성 회고기록

[원자력연구회고 (11)]

후세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6)

원전의 심장 '원자로'
노심(爐心)설계 기술자립
고 한필순 박사의 미완성 회고기록

지난 1월 25일 별세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 제7대 소장 故한필순 박사가 본지에 원자력기술자립 경험담을 기고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그는 첫 번째 회고담 ‘ADD창설, 원자력기술자립까지‘에서 1982년 원자력연구소 부설 대덕공학센터(구 핵연료개발공단의 후신)의 분소장으로 부임했을 당시를 “대덕공학센터는 예산과 인원이 모두 동결된 상태에서 마치 가사상태에 놓여 있는 듯했다.”고 회고했다. 연구의욕을 상실한 직원들은 성과 없는 연구소는 없어져야 한다는 유관기관 관계자들의 비난에 기가 죽을 대로 죽어 있었고 한필순 박사의 눈에도 전혀 희망이 없어 보였다.

후세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의 충정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부임한 신임 분소장인 그는 대덕공학센터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본지 4월호 ‘유능한 혁신적 사고의 동반자’에서 소개한 바 있는 김병구 박사와 만나게 된다.
1982년 3월 일본 출장에서 막 돌아온 김병구 박사는 처음 만나는 한필순 분소장에게 출장 귀국보고를 하면서 우리 실정에 적합한 텐덤(Tandam)핵연료주기기술을 소개하였고, 기술개발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한필순 박사는 부임한지 일주일 만에 처음 들어보는 긍정적인 대답 한마디에 마치 모래알 속에서 진주를 찾아낸 듯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회고한다. 이때부터 일말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한 박사는 원자력기술개발과 기술자립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중수로 핵연료 국산화 사업과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 사업, 원자력발전소의 핵심기술인 원자로설계기술 자립을 Step By Step으로 추진하며, 연구원들과 함께 원자력계에 길이 남을 기술자립의 역사를 그려나갔다.
그는 원자력발전 기술자립의 역사를 만든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집필중인 저서에 소개하기에 앞서 본지에 시리즈로 연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2015년 1월부터 시작된 한필순 박사가 전하는 ‘후세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 그 첫 번째 주인공은 현 한국원자력학회 남장수 사무총장의 ‘핵연료 기술 국산화 대장정’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남장수 사무총장은 이 글을 통해 원자력기술자립의 첫 단추였던 중수로 핵연료 국산화 기술개발사업 추진에 얽힌 KAERI인들의 혼연일체된 노력과 열정, 그리고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그러나 지난 1월 25일 한필순 박사의 급작스러운 서거로, ‘후세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의 미완성 원고가 되고 말았다. 이 후 그가 작성한 초안을 바탕으로 본지에 소개되고 있다.

역사에 남을 평화적 원자력 기술자립

▲ 제47회 한국원자력학회 추계학술대회(2014년 10월 30일) 원자력대상시상식에서 고 한필순박사에게 상패를 건네는 장문희 박사.

이번 6월호에 소개되는 현 한국원자력학회 장문희 학회장의 글 역시 한필순 박사가 장문희 학회장에게 직접 의뢰하여 작성한 원고이다. 이 글을 받아본 한필순 박사는 본인의 평화적 원자력 이용을 위한 기술자립 철학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후학의 글에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장문희 학회장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故한필순 박사는 1982년 3월 원자력연구소 부설 대덕공학센터의 분소장으로 부임한 이래, 1983년 7월에는 한국핵연료주식회사 사장을 겸직하게 된다. 또한 1984년 4월에는 한국원자력연구소 제7대 소장으로 취임하여 1991년 퇴임하기까지 2개 기관의 경영자로 약 9년 동안의 재임기간 동안 ‘평화적인 원자력 이용’을 실천하기 위한 원자력발전 기술 자립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는 ‘평화적 원자력 이용’이라는 기본철학을 바탕으로 원자력발전 기술의 핵심인 원자로계통설계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원자력발전정책을 수립하였다. 선진 원자력발전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그의 신념은 “우리 과학기술자, 우리 자본에 의한 기술자립”으로, 1980년대 당시 국내 상황에서는 다소 이상적인 제안이었다. 그 만큼 기술자립을 달성하기까지 수많은 난관에 부딪쳐야 했다.
그 때마다 한필순 박사는 과학기술자들은 물론 정부 관료, 유관기관 관계자들을 상대로 국가가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원 확보’가 필수라는 본인의 철학을 끊임없이 어필했다. 일제강점기하에서 나라를 잃어보고,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이별하는 고통을 겪었던 그였기에 후손들에게 만큼은 약소국에 태어나 겪어야 했던 지난날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그의 바람이 담긴 연설문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이는 지난 2014년 10월 원자력학회 정기총회시 거행된 ‘제1회 한국원자력대상 시상식’에서 발표한 수상소감에서의 일부이다. 한국원자력대상은 한국원자력학회가 제정하여 시행하는 국내 원자력계 최고 권위의 명예로운 상이다.
“돌이켜 보면, 1980년대 우리 원자력과학기술자들은 부족한 인력, 예산, 시간을 극복하고 전 세계 원자력 역사에 길이 남을 ‘평화적인 원자력발전기술자립’을 이루어냈습니다.
그 영광은 지난 2009년 한국형원자로를 석유수출국인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하는 기적으로 이어져, 우리 역사에 자랑스러운 순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특히 자원빈국인 대한민국은 후손을 위하여, 원자력기술을 꾸준히 발전시켜 나아가야 합니다. 그 길은 멀고도 험난합니다.
우리 원자력계가 ‘원자력을 통한 국가 에너지자립을 추구하여 국가 안보를 공고히 하겠다는 굳은 신념과 사명감으로 외롭고 험한 길’을 사심 없이 걸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국원자력학회 장문희 학회장은 시상식장에서 한필순 박사에게 상패를 건네며, “우리 후배들이 이제야 한필순 소장님께 작게나마 보답하게 되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번 6월 호 한필순 박사가 전하는 ‘후세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의 여섯 번째 주인공이기도 한 원자력학회의 장문희 학회장은, 1976년 한국원자력연구소의 특수사업부서(후에 한국핵연료개발공단으로 독립 발족)에 입사하여 중수로 핵연료 국산화 사업에 참여하던 중인 1981년 미국 MIT로 유학을 떠났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1984년 유치과학자로 귀국하여 원자력연구소의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 사업에 참여하였다.
당초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 사업’은 기술을 가진 외국회사의 자본과 기술에 의해 추진될 예정이었으나, 1983년 7월 한필순 박사가 한국핵연료주식회사(현 한전연료주식회사)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새로운 판도가 짜여졌다. 바로 ‘우리 과학자, 우리 자본에 의한 기술자립이라는 최초의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한필순 박사는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를 둘러싼 본인의 경험담을 본지 2014년 11월 호에 상세히 소개했다.
다음에서 소개되는 장문희 박사의 원고에는 한필순 박사가 마련한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 사업이라는 거대한 숲을 울창하게 키워낸 감동의 스토리가 담겨져 있다. 장문희 학회장은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본부장과 부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정년퇴임 후에도 연구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현재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직을 맡아 활약하고 있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0호 (2015년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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