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프랑스 영화, 감독 자끄 드미

[DVD로 만나는 명작 영화 ⑥]

Les Parapluies de Cherbourg
쉘부르의 우산
1964년 프랑스 영화, 감독 자끄 드미


글/ 박윤행 전KBS PD, 파리특파원, 경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역임

철없는 10대 처녀와 갓 스물 청년의 세상 물정 모르는 연애와 실연의 이야기일까?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이 영화를 봐도 여전히 가슴 아프고 목이 메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이 너무나 단순한 사랑얘기가 그들만의 얘기가 아니라 이 영화를 보는 우리 모두가 비슷하게 겪었던 첫사랑의 추억, 아니면 미완으로 끝난 어떤 사랑얘기를 연상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차량 정비소 청년과 우산가게 딸

메인테마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쉘부르 항구의 전경에서 카메라가 90도로 틸트다운 하면서 돌로 포장된 도로를 부감으로 내리 찍으면, 비가 오나봐 하며 한 여인이 우산을 펴들고 지나가고, 이어 처마 밑으로 낙숫물이 쏟아져 내리면서 우산 쓴 여러 군상들이 오간다.
지나가는 유모차 앞에서 기다리는 다섯 사람의 알록달록한 우산 위에 타이틀이 걸리고 다시 카메라가 틸트업하면 항구전경에 <1부 : 출발> 자막이 뜬다. 참 멋진 타이틀백이다.
1957년 11월, 차량 정비소의 기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우산 가게 딸 쥬느비에브와 만나 공연도 보고 춤도 추고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우리도 아이들을 갖겠지?” “딸 이름은 프랑스와즈야”
“아들이면?” “아니야 딸 일거야”
“주유소를 사야지. 하얀색으로 사무실이 딸린. 우린 행복할거야 서로 사랑하면서” 기이는 자신을 길러준 대모와
함께 사는데 마들렌이란 처녀가 그녀를 돌봐주러 온다.
어머니에게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 쥬느비에브는 야단만 맞는다 “17살 그 나이에 결혼이라니 정신 나갔니? 남자는 몇 살이니?” “스무살”
“그럼 군대도 안 갔겠구나. 그런데 무슨 결혼.”
쪼들리는 형편에 세금을 내기위해 목걸이를 팔기로 하고 보석상에 갔다가 주인에게 거절당하고 낙심할 때 그 자리에 있던 보석상 롤랑 까샤르가 자신이 사겠다고 나선다.
이튿날 늦게 까샤르가 목거리 대금을 갖고 오지만, 그가 보고 싶었던 쥬느비에브는 외출하고 없고, 다음에 쉘부르에 다시 올 때 꼭 들르겠다고 하고 떠난다.
몰래 다시 만난 두 사람. 쥬느비에브는 엄마에게 결혼 얘기 꺼냈다가 정신 나간 애 취급받고, 앞으로 만나지도 못하게 한다며 “당신을 잃느니 차라리 엄마를 다신 안 보겠어. 우리 몰래 결혼해”하고 말하지만, 기이는 오늘 영장을 받아 앞으로 2년간 떨어져 있어야 하니까 결혼은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알제리 전쟁 때문에 얼마나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고 한다.
“당신 없이 살 수 없어. 당신이 가면 난 죽을 거야. 내가 숨겨주고 지켜줄게 내 사랑 떠나지마”
“그게 불가능한 거 알잖아. 내 사랑 난 가야만해. 난 네 생각만 할 거라는 거 너도 알잖아. 넌 날 기다려 줄테고”
“2년 2년 동안이나..” “울지마 제발”
“2년 못해, 난 못 할 것 같아”
“진정해 시간이 없어.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보낼 순 없어”
꼭 끌어안고 길에 나선 두 사람 달리를 탄듯 흘러간다.
“행복하도록 노력해야해.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마지막 순간을 간직해야해. 그 추억이 기다림에 도움이 될거야“
“홀로 된다는게 너무 두려워”
“우린 다시 만날거고 사랑은 더욱 강해질꺼야”
“당신은 다른 여자 만나고 나를 잊겠지”“내 생명 끝날 때까지 너를 사랑할거야”
“기이 사랑해. 날 떠나지 마. 내 사랑 날 두고 가지마”
“이리와 내 사랑 내 사랑”
기이의 방에서 이별의 사랑을 나누고 집에 온 쥬느비에브 엄마에게 기이가 2년간 군에 간다며 그가 없인 죽을 것 같다고 괴로워한다.
“얘야 사랑 때문에 죽는건 영화에만 있는 일이야”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엄마는 이해 못해요”
“안다. 알고말고. 나도 그런 고통을 겪었다. 2년 동안에 기이를 완전히 잊을지도 몰라”
“절대 잊지 않을 거에요” 카메라를 똑바로 보고 말한다.
애잔한 주제음악이 흐르는 기차역 카페의 두 사람 이별을 준비한다.
“내 사랑. 평생 기다릴 거야. 제발 떠나지 마. 조금만 더 있어. 아직 시간 안됐잖아”
“이제 가야해. 떠나는 모습 보지 마” 일어서는 기이 가방을 들고 나가려한다. “그럴 순 없어 그럴 순 없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쥬느비에브 “그럴 순 없어” 일어서 기이에게 뛰어와 매달리고 함께 플랫폼으로 나간다.
“내 사랑, 내 사랑”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떠나는 기차와 함께 기이 멀어저 가고 망연히 남겨진 주느비에브, 체념한 듯 역사 안으로 들어간다.

▲ 우산 가게 딸 쥬느비에브 (우)▲기차역에서 이별하는 기이와 주느비에브

비오는 날 시작, 눈 내린 날 끝난 사랑

<2부 : 부재> 1958년 1월
병원에 다녀온 쥬느비에브가 기이의 편지가 한번 밖에 안 왔다고 걱정하자, 엄마는 “널 잊었나보다” 라고 말하고 그 말에 쥬느비에브는 그만 졸도한다.
“갑자기 그이가 다른 여자랑 있는 모습을 봤어요”
결국 자신이 임신했음을 엄마에게 털어놓고, 그녀는 걱정하는 엄마에게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고 한다.
식사초대를 받아 집에 온 까샤르는 에므리 부인에게 그녀의 딸 쥬느비에브에게 청혼하러 왔다면서 석 달 뒤 답을 직접 듣고 싶다고 말하고 간다.
알제리에 파견된 기이에게서 편지가 와서 그녀의 임신을 기뻐하면서 아들이면 프랑스와란 이름이 좋겠다고 하지만 그 후 편지가 끊기고, 에므리 부인은 딸에게 미래를 위해 부자인 까샤르와 결혼하라고 계속 재촉한다.
“곁에 없음이 왜 이리 견디기 힘든가요? 왜 기이는 내게서 멀리 있나요? 기이 없이는 죽을 것만 같던 나는 왜 죽지 않았나요” 기이의 군복 입은 사진을 보며 괴로워하는 쥬느비에브.
결국 그녀는 만약 까샤르가 자신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걸 알면서도 받아들이겠다면 그와 결혼하겠노라고 물러선다.
4월. 쥬느비에브가 임신 중인 사실을 알게 된 까샤르는 성모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알면서도 받아들인 요셉처럼 (종이 금관을 쓴 그녀에게 성모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오히려 우리의 아이로 함께 키우자며 쥬느비에브를 설득, 결혼한다. 이를 지켜보는 마들렌.
59년 3월. 기이가 제대하여 우산가게에 가보니 주인은 바뀌어있고, 짐작도 못한 쥬느비에브의 결혼소식에 기이는 절망한다.
자포자기 면도도 안한 기이는 홧김에 정비소도 때려치우고 카페에 가지만 텅 빈 의자를 보고 이별하던 지난날을 떠 올리며 마음 아파한다.
외박하던 날 밤 대모가 별세하고, 기이는 평소 그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마들렌에게 도와달라고 하지만, 그녀는 그의 제대 후 우울하고 씁쓸한 남자로 변한모습이 싫다고 거절한다.
6월. 깔끔한 모습으로 바뀐 기이는 대모의 유산으로 대출을 받아 주유소를 차리고 마들렌에게 청혼한다.
마들렌은 마지막 선택으로 나를 택한 것 아니냐며 쥬느비에브를 잊을 수 있느냐고 따지고, 기이는 이제는 완전히 잊었다고 답한다. “마들렌 당신과 함께 선택한 삶속에서 행복하고 싶어”
사랑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간 경우는 세상에 너무나 많다. 그리고 대부분 평생 다시 만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영화에서는 가능하다.
63년 12월. 기이의 에소 주유소밖에 눈이 내린다.
츄리장식을 끝낸 마들렌과 기이는 행복해 보인다. 마들렌이 아들 프랑스와와 함께 외출했을 때 한 대의 벤츠가 멈춰서고, 다가간 기이는 운전석의 쥬느비에브를 발견한다.
쥬느비에브를 사무실로 안내한 기이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애써 그녀를 외면한다.
“결혼한 후 처음 쉘부르에 왔는데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어요. 정말 우연이네요”
차속의 여자애를 바라보던 기이 “이름을 뭐라 지었어?”
“프랑스와즈. 당신을 많이 닮았어요. 아이 보고 싶어요?”
고개를 가로 젓는 기이 “이제 가도 되겠네”
나가려던 쥬느비에브 돌아서며 기이를 보고 “잘 지내죠?” 묻는다. “그래 잘 지내” 나오며 한번 더 돌아보는 쥬느비에브. 안타까운 미련을 가슴에 묻고 내리는 눈 속을 차를 몰고 떠난다.
돌아온 아내와 아들을 반기며 안으로 들어가는 기이
밖에는 눈이 계속 내린다. 비가 오면서 시작된 어떤 사랑의 얘기는 6년 뒤 눈이 내리는 날 이렇게 끝난다.

▲ 까샤르와 결혼하는 쥬느비에브 (우) ▲ 제대후 그녀의 결혼소식에 절망하는 기이.

50년전 고교 졸업하던 해 감상

1965년 고교를 막 졸업한 해 어느 날 이 영화를 보았다.
한창 사춘기의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 나갈 때까지 나는 의자에서 일어설 수 도 없었다.
단 두 줄이면 요약할 수 있는 너무도 흔한 줄거리-
그러나 자끄 드미의 깔끔한 연출은 오늘날 프랑스의 대표적 영화음악 작곡가인 메셀 르그랑의 음악과 함께 이 영화와 쉘부르를 전 세계에 알렸다.

▲ 눈 내리는 기이의 주유소에서 재회한 주느비에브와 기이

프랑스 노르망디의 군항이자 어촌인 쉘부르는 이제 우산하면 연상되는 항구가 되었다.
뮤지컬의 본고장인 헐리우드 영화는 대부분 대사와 노래 부분으로 나뉘어 있지만, 직접 각본을 집필한 자끄 드미감독은 오페라처럼 모든 대사를 멜로디가 담긴 노래로 처리하여, 영화계에 참신한 충격을 주었으며, 최초의, 그것도 불어로 제작된, 소위 필름 오페라의 효시이다.
초록, 분홍, 주홍, 등 다채롭게 원색으로 채색된 미장센의 컬러링과 정확하게 계산된 카메라 워크도 일품이지만,
이영화가 평생 잊지 못할 명화가 된 것은, 미국 아카데미 영화음악상 3회 수상이란 경력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천재 음악가 미쉘 르그랑의 감미롭고도 애잔한 테마음악 때문일 것이다.
영화감독 아그네스 바르다의 부군이기도 한 자끄 드미 감독은 평생 필름 오페라에 관심을 갖고 -이 영화도 오페라처럼 3막으로 되어있다- 이후에도 <로슈포르의 처녀들>, <마을의 방>에서 같은 시도를 했지만, 이 영화만큼 성공하지는 못했다.
방년 20세에 이 영화를 찍기 시작한 까뜨리느 드뇌브는 이후 프랑스의 대표적인 디바가 되었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8호 (2015년 4월호) 기사입니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