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통혁당 거쳐 일심회 간첩단, 범민련, 한총련 등 이적단체 활동

▲ 1968년, 공판에서 진술하고 있는 통혁당사건 주모자 김종태(왼쪽)

[지하당에서 통진당까지]

종북좌파실체
인혁당·통혁당 거쳐 일심회 간첩단
범민련, 한총련 등 이적단체 활동

통진당 정당해산 심판청구 헌법재판소 판결을 앞두고 ‘반 대한민국’ 종북(從北) 좌파에 대한 경계심이 강화되고 있다. 통진당 사람들은 반 대한민국 활동을 전개해 왔지만 북측의 지령을 받은 종북이 결코 아니라고 강변한다.

조갑제닷컴이 발행한 ‘종북 백과사전’(2012.6)에 따르면 인혁당, 통혁당, 남민전 등은 지하당 조직의 종북세력이고 통진당은 원내당으로 진출한 종북 집단이다.

1960년대 남로당 잔존세력 부활

종북세력의 사상적 배경은 8.15 해방공간의 파업과 무장폭동을 주도한 남로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남로당 조직은 6.25로 와해되고 그 잔존세력이 인혁당, 통혁당 등 지하당으로 부활되고 통진당은 제1야당과 선거연대를 통해 원내당으로 진출했다.

1964년에 검거된 인혁당은 남파간첩 김영춘에게 포섭된 도예종, 이재문 등이 결성했다. 이어 1968년 8월에 검거된 통혁당은 남로당 조직이 부활했던 것으로 판결됐다.

통혁당은 전남 무안에 살던 최영도가 남파간첩 김수영에게 포섭되어 월북하여 노동당에 입당하고 김종태를 포섭하여 김질락, 이문규 등과 결성했다. 이들이 검거된 후 김종태·김질락 등은 사형, 신영복 무기, 박성준 15년형을 선고 받았고 박성준의 부인 한명숙은 징역 1년·집행유예 1년의 유죄를 받았다.

남민전은 ‘남조선 민족해방전선’으로 인혁당의 이재문 등이 1964년 출옥 후 결성했다가 1979년 10월에 검거됐다. 이들은 김일성에게 충성맹세 혈서(血書)를 보내고 행동대를 조직하여 기업인 자택과 금은방을 탈취했다. 남민전 사건으로 이재문·신향식은 사형, 안재구(숙대 교수), 김승균(사상계 편집장),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이학영(민주통합당 의원) 등이 처벌됐다.

90년대 중부지역당, 민혁당 사건

1980년대에는 10.26사태 이후 징계 분위기 혼란 속에 종북 운동권이 주류로 부상했다. 반외세 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련),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등이 대표적으로 친북 종북성향의 학생운동권이 뒤에 정치권으로 진입했다.

▲ 여수 돌산읍 침투 중 격침된 대남공작용 반잠수정 인양 장면. 여기에서 민혁당의 실체가 밝혀진다.

1992년에는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지하당 조직이 드러났다. 여간첩 이선실의 남파로 결성된 중부지역당은 총책 황인오에 김낙중, 이철우, 윤민석 등이 주동했다. 이중 이철우는 벽에 노동당 당기를 붙여놓고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 앞에서 노동당 입당식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92년 3월 결성된 ‘민족민주혁명당’은 강철서신의 김영환이 하영옥과 함께 조직한 지하당으로 통진당의 이석기 의원도 참여했다. 그러나 주사파의 대부인 김영환은 입북하여 김일성을 만나 환대를 받았지만 주체사상이나 수령론이 허구임을 간파하고 1997년 7월 민혁당을 해체하고 전향했다.

그 뒤 북은 하영옥을 대타로 통혁당을 재건했지만 1998년 여수 앞바다에서 격침된 북의 반잠수정이 인양되고 통혁당 관련 문건이 드러나 일망타진 됐다.

2000년대에는 일심회 간첩단과 왕재산 간첩단 사건이 대표적이다. 일심회 간첩단은 재미동포 장민호를 총책으로 삼아 최기영(통진당 정책부장), 이정훈(전 민노당 중앙위원) 등이 연루됐다. 2011년에 검거된 왕재산 간첩단은 북의 대외연락부의 지령으로 조직된 간첩사건이다.

▲ 강연중인 통진당 강종헌씨의 모습 뒤로 김일성,김정일 父子의 사진이 보인다.

종북백과사전은 종북좌파의 배후인 ‘원탁회의’ 사람들로 전교조 탄생의 주역 오종렬, 한총련의 합법화를 주장해온 청화 참여연대 공동대표, 천안함 폭침사건을 왜곡시키려는 백낙청 참여연대 고문 및 함세웅, 김상근, 박재승씨 등을 꼽았다.

종북 감별법과 퇴치법

종북백과사전은 종북 감별법으로 ①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며 북한 인권법 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 ②북핵을 옹호하면서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등 대한민국의 무장해제를 주장하는 사람들 ③이승만과 박정희는 독재자라고 비난하며 김일성 3대 세습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25일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최종 변론에서 대립하는 모습

또한 남파간첩 김동식씨의 증언대로 종북이 절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5대 금기사항은 주체사상, 지도자, 인권, 세습권력, 사회주의체제 등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종북세력 퇴치법으로는 “북한도 우리의 동족이니 무조건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누굴 도와주자는 말이냐”, “독일은 히틀러를 동족이라고 용서했느냐”고 반박하도록 권고한다.

또 “북과 전쟁하자는 말이냐”고 주장하면 “북에게 항복하라는 말이냐”고 응수하고 “흡수통일은 안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북에 흡수되어 적화(赤化)하자는 말이냐”고 반박하면 된다고 제시했다.

이 밖에도 북핵을 ‘민족핵’이라거나 ‘체제유지용’이라 두둔하는 경우에는 ‘서울 불바다’ 협박은 뭣이냐고 따지고 ‘우리민족끼리’를 들먹이면 ‘반역자 끼리냐’고 반박토록 일러준다.

통진당 해산심판 판결 이후

▲ 내란선동으로 중죄 선고 받은 통진당 이석기 의원

종북세력의 중심에 이정희 통진당 대표와 내란선동으로 중죄선고 받은 이석기 의원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정희 대표는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소송 마지막 변론에서 통진당은 노동자, 농민 등을 대변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로 북의 지령이나 조종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헌재가 증거로 채택한 당원교육 자료나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변론이 통진당은 북의 선군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아 대한민국 내부를 붕괴시키려는 주사파의 본거지로 위헌정당으로 인식된다.

이정희 대표는 2007년 3월 민노당에 참여한 후 18대 비례대표로 진출하여 친북 종북성향을 거침없이 표현해 온 것으로 일반국민들이 인식한다. 이어 19대 총선 때는 여론조사 조작사건으로 원내진출에 실패한 후 남편 심재환 변호사와 함께 각종 간첩사건 및 이석기 RO조직일당 재판 공동변론인으로 활약했다.

이 대표는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를 나중에 답변하겠다”는 괴변으로 친북성향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 대선 때는 TV토론에 나와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입후보했다”는 조롱 섞인 망언을 한 후 후보를 사퇴했지만 선거보조금은 한 푼도 반환하지 않고 먹튀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 같은 이 대표가 끝까지 통진당의 종북을 당당히 부인하는 거짓발언을 계속할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헌재가 정당해산을 판결하면 다시 창당하면 그만이라고 믿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법원에 의해 이적(利敵)단체로 판결된 범민련 남측 본부나 한총련 등이 계속 활동하는 배경을 믿기 때문일까.

어찌하여 대법원이 이적단체로 규정했는데도 해체되지 않고 있는지 국민은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종북세력이 70~80년대 지하당에서 지금은 원내정당으로 발전하기까지 대한민국 내부에 그만한 지분(持分)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통진당 해산청구심판에 이어 전반적인 이적·종북단체들의 조직과 활동에 관한 엄중한 심판과 해체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5호 (2015년 1월호) 기사입니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