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 반국가 진상위, 북과 연계 밝혀

남민전(南民戰)의 진상
국가변란이 민주화냐
친북 반국가 진상위, 북과 연계 밝혀
민주화 관련 명예회복 즉각 파기해야

▲ 지난 9월 20일 친북 반국가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진상조사 결과 발표세미나를 가졌다.

1970년대 국가변란을 기도했던 남조선 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을 민주화 운동으로 조작하는 세태다. 참다못해 ‘친북 반국가행위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제성호 교수)가 지난 9월 20일, 그동안의 진상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세미나를 가졌다.
이날 세미나에서 제성호 위원장이 남민전(南民戰) 사건의 개요를 발표하고 김성욱 위원이 진상규명 결과를 발표한 후 토론자들과 함께 질의응답을 통해 명백한 국가변란 기도 사건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김일성 추종한 반국가 단체

남민전은 1976년 2월 “박정희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족자주, 민주연합 정권을 수립한다”는 강령 아래 인혁당 관련 이재문, 통혁당 관련 신향식, 전 숙대교수 안재구 등이 결성한 조직이다.
남민전은 산하에 중앙위원회와 한국민주투쟁위를 설치하여 △북의 대남전략인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NLPDR) 혁명 노선 아래 △ 조직원을 김일성 주의로 교육 시키고 △ 북한 정권에게 김일성 충성 서신, 신년 하례문을 바치고 △ 조직원 안용웅을 일본으로 보내 북한과 연계를 도모하고 △ 혁명자금 조달을 위해 고위 공직자와 재벌집 강도질을 하고 △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를 밀반출, 사제폭탄을 만든 폭력투쟁 집단이다.
그 뒤 남민전은 1979년 10월 4일, 민주구국 노동연맹을 결성하다 이재문, 이문희, 차성환, 이수일, 김남주 등이 구속됐다.
당시 사법부는 남민전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며 북을 찬양하고 북과 연계를 시도한 반국가 단체라고 판시하고 조직원들을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으로 처벌했다. 이재문은 옥중 사망, 신향식은 사형 집행, 안재구, 임동규, 이해경, 박석률, 최석진 등은 무기징역 김남주, 이수일 등은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

반헌법적 국가 정체성 부정

이들 반국가 행위자에 대해 총리실 직속 민주화 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위원장 河炅喆)는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관련자 38명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명예회복 시키고 남민전은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9월 14일,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는 “남민전 조직의 성격은 북을 찬양하고 북과 연대를 기도한 반국가 단체라는 대법원 판단에 이견이 없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엇갈리는 해석에 대해 친북 반국가행위 진상규명위는 남민전을 재조사하여 실체적 진실을 이날 발표했다.
① 남민전은 북의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노선에 따라 국가변란을 기도한 조직으로 친북 공산폭력혁명을 기도했다. 대한민국 사법부도 반국가 단체로 판시했고 경찰청 위원회도 유사한 결과를 발표했으므로 이를 실체적 진실에 부합된다고 본다.
② 민주화보상위는 좌익 공안사건의 진상규명에 전문성이 결여됐음에도 불구하고 남민전이 대한민국의 기본 질서를 부정한 불법행위를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했다.
이는 국가의 정체성 부정이자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에 대한 중대한 유린이자 모욕이며 반헌법적, 반국가적 행위라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민주화보상위의 결정은 즉각 파기 되어야만 한다.

강령, 규약, 선서문 등에 실체

남민전 사건이 종료된 후 1981년 10월, 대검찰청은 2,200쪽에 달하는 ‘좌익사건실록’ 12권을 발간했다.

이 실록은 남민전을 “북과 연계된 간첩단 사건이자 남한 혁명단체로서의 정통성을 승계한 비밀 지하당 사건”으로 규정하고 이는 “북의 대남 전략에 따른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기도하면서 그들의 전략을 활용한 전형적인 국가변란 기도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또 대법원은 “남민전, 한국민주투쟁국민위, 민주구국학생연맹 등이 국가보안법 규정에 따른 반국가단체”라고 단정했다.
이들은 겉으로 반유신, 반독재로 민주 회복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김일성 집단의 노선에 따라 활동한 단체로 국가변란을 목적했으므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이들은 법정에서 끝까지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라 강변했고 태 아무개를 비롯한 유, 황, 홍, 조 변호사 등은 그들을 적극 변호 했었다. 그렇지만 남민전의 강령, 규약, 선서문, 전사생활규범 10조 등이 그들의 실체를 잘 말해준다.

사회주의 건설 목숨 걸고 투쟁

주범 이재문은 77년 9월 임준열(필명 임헌영)에게 김일성 충성 편지 초안 작성을 지시하여 10월 2일 완성했다.
“남조선 인민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지식인, 학생, 노동자 등 광범위한 각계각층 세력이 모여 민족해방전선을 결성했으며 앞으로 굳게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지향하는 이 투쟁을 당의 이름으로 굳게 유대 맺어줄 것을 당부 합니다”
또 이재문은 임준열의 초안을 기초로 김일성에 대한 보고문을 작성하면서 “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 상태인 남한을 북의 수령 김일성이 해방 시켜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원수님 품에 굳게 뭉친 조선노동당 영도하의 북조선은 일제 식민지 잔재를 말끔히 청산하고… 강력한 사회주의 대공업국으로 발전했다”
“남조선은 미 제국주의자와 그들의 앞잡이에게는 지상천국이 됐으나 남조선 인민들에게는 착취와 억압에 신음하는 창살 없는 감옥으로 되어있다”
“피로 물들인 투쟁 속에서 자라온 남조선 혁명가들은 평양으로부터 울려오는 주체사상 강의에서 혁명이론을 배우고 각계각층 대중과 손을 잡고 싸우는 마당에 대중공작과 지도의 실천을 익히고 있다”
“남조선 혁명은 ‘남조선 인민의 힘으로’라는 김일성 수령님의 교시를 높이 받들어 용약 결집된 남조선 민족해방 애국전선 준비위원회에는 혁명가,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소시민, 교수와 언론인, 문인, 군인, 여성 등 각계각층 대표가 참가하고 있다”
“남조선 인민들은 김일성 원수님께옵서 인도하는 인민공화국의 품안으로 안기는 영광스러운 조국통일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다”

주체사상으로 남조선 혁명

남민전의 신년 하례문이나 전문에 실린 몇 가지 대목을 보자.
“새해 1978년을 맞이하면서 민족의 태양이시며 5천만 민족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우리 공화국 주석인 김일성 동지께 최대의 영예와 새해인사와 축하를 드립니다”
“남조선 혁명가들은… 주체사상의 기치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이론과 방법으로 자신을 튼튼히 무장하여 조국통일과 남조선 혁명을 하루 빨리 앞당길 결의에 차 있으며 수령님의 전사로서 모든 것을 다 바쳐 조국과 인민에게 멸사봉공 할 것을 맹세 합니다”
“천지를 뒤흔드는 주체사상, 온 세상이 주체의 물결로 넘쳐흐르는 이 시대에 우리 남조선 혁명도 철저히 주체사상으로 무장함으로써 승리할 수 있다는 혁명적 신심에 부풀어 있습니다”
평양방송을 종합한 주체사상 자료로 조직원 교양 강좌 한 내용을 보자.
1977년 12월, 이재문 등은 중앙위 회의에서 토론결과 김일성 주의와 남민전 노선이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고 이를 전 조직에 학습시키도록 했다.

북 주체외교 가장 발전했다

78년 9월, 이재문 등은 북한방송 녹취서를 김남주에게 전달, 이를 정서케 하고 안재구는 김봉권에게 “자본주의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자체모순에 의해 붕괴되고 필연적으로 사회주의 제도가 도래하기에… 머지않아 적화통일이 될 것이니 그때를 대비하여 학습을 충실히 하자”
79년 1월 1일, 이재문, 이수일은 김일성 신년사를 청취 후 “김 장군은 가장 올바르고 뛰어난 항일 독립투사로서… 북한 외교는 주체외교이고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 중에서 더 발전하였다”
79년 9월 19일, 최석진은 “김일성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근원을 두었지만 독창적인 것이다. …현재 제3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밖에도 남민전은 78년 신년 사업 계획으로 “김일성 주체사상 학습을 출판부와 조직부의 협조를 얻어 실시한다. 전 조직원에게 1일 1시간씩 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하고 새벽의 김일성 방송대학 강좌를 청취토록 한다”고 결의했다.

북 공작 따라 서울에 삐라 살포

좌익사건 실록은 남민전이 안용웅을 통해 북한과 연계에 성공했다고 기록했다.
이재문은 77년 7월, 남민전 투쟁목표를 “정권타도, 남북연방제, 사회주의 통일에 두고 인민군 지원을 요청, 내란상태를 야기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조직원 1명을 일본으로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임준열은 교포시인이며 민간 간부인 김윤에게 소개장을 써주어 안용웅과 만나도록 주선했다. 그해 11월 안용웅은 남민전의 김일성에 대한 보고문을 갖고 도일하여 재일 대남공작원과 접선하여 혁명자금 3억 원을 요청했다.
이때 북의 공작원은 남민전 활동을 입증토록 요구하여 78년 초 남민전 산하 민주투쟁위 명의로 반정부 삐라 500장을 살포했다. 또 그해 1월 중 3회에 걸쳐 남민전 전사들이 김일성에게 보내는 신년 인사문이 북한의 대남방송에 의해 소개 되었다.
남민전은 78년 2월, 안용웅에게 미화 500달러, 한화 10만원을 여비로 주어 일본을 거쳐 월북시켰으며 그 뒤 안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붉은 깃발에 강도 조직 운영

남민전은 남조선 혁명이 성공하면 중앙청에 게양한다면서 붉은 별이 그려진 ‘전선기(戰線旗)’를 준비했다. 이 깃발은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당한 인혁당원 도예종 등이 입었던 내의를 염색한 천으로 만들었다.
이 전선기의 상부는 적색으로 그려 북한 지역을 뜻하고 하부 청색 지역은 미해방 남한 지역을 상징하며 중앙의 붉은 큰 별은 사회주의 혁명의 희망을 의미한 것으로 설명됐다.
남민전은 공작자금 조달을 위해 만든 강도 조직인 혜성대(彗星隊)를 통해 유명 재벌그룹 회장과 연예인 대상 강도질을 음모했다.
79년 8월, 서울 시내에 뿌려진 불온 삐라 살포 연루자를 잡고 보니 남민전 아지트로 사용된 이수일의 집이었다. 그해 10월, 기습작전 과정에서 김남주, 이수일은 격투 끝에 체포되고 이문희는 식칼로 반항하다 검거되고 차성환은 유리창을 깨고 300m나 달아나다가 붙잡혔다. 주범 이재문은 등산용 칼로 앞가슴 두 곳을 찔러 자살을 기도했다.
범인의 방에서는 사제폭탄 1개와 다이너마이트 1개가 발견됐다. 또 카빈소총을 잘라 권총처럼 만든 총과 실탄 150발, 가발 2개, 각종 칼 20자루, 색안경, 김일성 교양 교시 녹음테이프 4개 등이 나왔다.
이재문이 자살기도 직전 밖으로 내던진 보따리에는 불온책자, 전단, 남민전 조직망과 명단 등이 담겨 있었다.
친북반국가행위 진상규명위는 이 같은 자료들을 면밀히 검토 후 민주화 명예회복 보상심의위가 남민전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하고 사건 연루자들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명예회복 한 것은 명백한 국가 정체성의 유린과 반헌법적 행위라고 규정, 이를 즉각 시정, 파기토록 요청했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87호(2006년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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