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판단하고 바로 보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행보가 연이어 국내외의 관심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급기야 지난 10월 5일부터 전 세계 주교 200여 명이 참석해 개최한 세계주교대의원회(시노드)에서는 지난 2000년간 죄악시해온 동성애를 포용하는 혁명적인 예비보고서를 발표해 또 다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신민형의 종교시론 (4)]

동성애를 보는 시각
보혁이념의 갈등
상식으로 판단하고 바로 보자

글/ 신민형 (사)한국담배소비자협회장

지난 8월 방한시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내 진보적인 이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극과 감동이 되었다면 이번의 행보는 교계는 물론 전 세계의 이념과 가치관을 뒤흔들고 있다. 교황은 자신의 개혁적 의지를 반영하기 위해 시노드 지도부에 6명의 진보파를 긴급 투입하기도 했는데 보고서가 낭독되자마자 당장 41명의 보수적 주교가 공식 반대의사를 밝혔다. ‘신앙의 진리에 벗어났다’는 강한 비판이다. 반면 진보적 교계에서는 ‘복잡한 현실세계에 귀를 기울이는 혁명적 변화’라며 환영했다. 종교를 떠난 보수·진보이념의 사회단체와 개인들 역시 양극의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대체적으로 보수이념성향은 반대, 진보는 환영의 방향으로 휩쓸린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동성애 관련 발언에 관한 반응에서도 그러한 이념의 시각이 엿보인다. 박 시장은 미국 지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아시아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되길 바란다”고 발언했다. 이에 진보이념의 교계와 사회단체 쪽에서는 서민과 약자 등 소수자를 시민단체를 이끌어 온 박 시장이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적절한 반응이라고 환영한다. 반면 보수이념 쪽에서는 ‘대권 잠재후보로 거론되는 박 시장의 정치성 발언’이라며 ‘동성애자를 돕는 듯 그들을 이용해 정치욕심을 채우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동성결혼 합법화는 재앙’이라고 항변한다. SNS 상에서도 평소 이념성향에 따라 동성애에 대한 시각, 박원순 시장에 대한 시각이 세트를 이뤄 격렬하게 표현된다. 대체적으로 세월호 사건과 가족에 대한 쌍방의 극단적인 막말이 오갔던 때의 편싸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이념과 진영이 아니면 그와 관련된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까지 마구 매도한다. 거꾸로 사람이 싫으면 그가 가진 이념과 사상까지도 불의와 꼼수로 치부되고 만다.

이념과 세상은 변화된다

가톨릭에서 2000년 동안 금기시했던 동성애자가 마침내 ‘어둠 속의 빛’을 찾고 있다. 죄악 아닌 ‘상처받은 사람’으로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가톨릭은 동성애를 남성과 여성을 창조한 신의 뜻을 거스르는 악마적 행위로 간주, 박해해 12세기 종교재판소에선 처형을 하기도 했다. ‘동성애 경험 남성이 37%’라고 밝힌 1948년 킨제이보고서 이후에야 성적 소수자들이 ‘사랑할 권리’라는 보편권을 주장하면서 법적 지위도 향상되기 시작했다. 미국정신의학회는 1973년 동성애를 정신병 목록에서 제외했다. 1977년 레즈비언이 영국 성공회에서 처음 성직자로 임명됐다. 미국 최대 교단인 미국장로회는 2007년 동성애자의 성직을 허용했다. 현재 동성 결혼을 법으로 허용한 나라는 14개국에 이르며 미국은 50개 주 가운데 30개 주와 워싱턴 DC가 합법화했다. 불과 50여년 전에 일기 시작한 변화이며 이제 그 마지막 보류였던 가톨릭에서 개혁적인 교황의 주도로 인해 봇물이 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선진민주국가인 서구에서도 인종차별금지, 남녀평등의 보통선거가 이루어진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사군이충(事君以忠)을 목숨까지 바치는 절대적 신념으로 살아온 우리나라가 군주제를 벗어난 것 역시 100년이 안 됐다. 그때는 예수를 믿는다고 서양귀신 들렸다고 서구 중세 성직자들이 교회권력으로 마녀사냥 하듯이 처형했다. 그들이 지금은 순교자로 추앙받고 있다. 양성평등과 민주적 가족법을 구현한 가족법은 1991년부터 시행했다. 유교사회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고 여겼던 호주제 폐지는 2005년에 이루어졌다.
이 모든 것들이 변화되기 전까진 얼마나 격한 반발과 갈등을 겪었는가. 그러나 이젠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마치 태초부터 있어왔던 제도와 사상으로 여겨진다. 장님, 벙어리 등의 장애인들을 소위 ‘병신’이라며 꺼려하던 시절이 우리 시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젠 보호받으며 함께 살아나갈 ‘장애우’란 사실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리고 멸시되던 이주 노동자, 탈북자, 전과자를 비롯해 동성애자 등 소수자들에 대한 평등과 배려, 인권의식도 생겨났다.
이념과 세상은 변화되기 마련이다. 영원한 이념과 제도는 없다. 변화의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논란이 있기에 인류와 역사의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성애에 대한 관용적인 접근은 분명히 확산될 것이다. 그게 발전이랄 수 있다. 언젠가는 인종차별, 남녀평등, 호주제폐지 같이 까마득한 과거에 존재했던 소수자차별이라 여길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 중에 겪는 이념과 진영의 반목과 갈등이 그 어느 시대 때보다 심하다. 패거리 나눔과 막장 다툼이 극렬해졌다. 종교는 물론 모든 사회문제가 언젠가 변화될 수 있다는 상식적·미래 지형적인 방향에서 판단하고 행동하면 우리의 현실은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어차피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상을 위해서 종교와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가.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3호 (2014년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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