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사료 무시한 황당무계 놀랄지경

▲ 사극 ‘ 불멸의 이순신’ 의 한장면.

사극의 역사 왜곡 문제가 불거진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극이 인기를 끌면 때맞춰 이들 드라마의 주인공을 다룬 역사소설도 여러 사람에 의해 여러 출판사에서 다투어 나온다. 극본의 원작소설이 재출간되기도 하고, 드라마 방영에 맞춰 급히 새로 쓴 책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의 예는 이순신이다. 영화 <명량>의 성공에 덕을 보려는 책 여러 권이 쏟아져 나왔다. 전엔 연개소문과 선덕여왕이 그랬다. 이런 현상은 드라마의 인기에 편승해서 책을 많이 팔아보려는 출판사의 상업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갈수록 악화하는 출판사들의 경영 여건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역사를 왜곡 날조해가면서까지 이익을 추구해서는 곤란한 일이다.

사극(史劇)의 역사왜곡
기본 사료 무시한 황당무계 놀랄지경


글/황원갑(소설가, 역사연구가)

기본 사료도 읽지 않고 소설집필

역사소설이든 사극이든 역사 대중화에 기여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특히 동북공정이니 탐원공정이니 해서 중국의 한국사 왜곡과 탈취 기도가 노골화해가고, 일본의 한국고대사 왜곡 문제가 끊이지 않는 형편에 우리 역사를 널리 알리고 자부심을 고취하는 면에서 역사소설과 사극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역사를 그동안 무관심했던 대중 속으로 끌어내는 점에서는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소설이든 사극이든 역사적 실체를 작가가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왜곡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역사소설은 역사책이 아니므로 작가의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가 있지만, 그 상상력이 지나쳐 있었던 사실은 없었던 듯, 없었던 사실도 있었던 양 역사적 실체를 마구 비틀어서야 될 일인가.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 정작 우리 자신이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날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소설은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기본 양식과 지식은 갖춘 다음에 쓰는 것이 마땅하다. 특히 기본 사료 등 관련 자료를 충분히 찾아보고 철저히 공부한 다음에 역사소설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기본 사료조차 제대로 읽지 않고 역사소설을 쓰겠다는 것은 참으로 무모한 노릇이다.
얼마 전에 고구려 제3대 임금 대무신왕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소설을 읽다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혼자 한참이나 웃었다. 대무신왕이 부여 장수가 누군지 신분을 밝히라고 하자, “나, 대무신왕!”이라 대꾸하는 장면이었다. 망발도 이런 망발이 없다. 대무신왕이란 사후에 바쳐진 존호이지 본인 생전에 짓고 부른 칭호가 아니다. 이렇게 상식이하로 기본적 소양과 지식도 없이 역사소설을 쓰다니, 이런 몰상식을 가리켜 그저 무지하고 무식하다고 웃어넘길 수는 없다. 몰염치하고 후안무치한 짓이다.

근거 없는 날조 왜곡에 허위기술까지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어떤 소설에서는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 자리에서 파면당해 서울로 잡혀갈 때 그를 체포해간 사람을 금부도사라고 한 대목을 보았다. 이순신을 잡아 간 사람은 금부도사가 아니라 선전관이었다. 지엽적인 실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가 기본 사료인 ‘선조실록’을 제대로 보았다면 이런 잘못은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원작소설이 고증을 제대로 안 하니 사극의 역사 왜곡은 말할 나위도 없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청소년기의 이순신을 소심하고 나약한 인물로 설정하고, 거북선이 진수식 당일 스스로 침몰한 것으로 그려 참으로 터무니없고 황당무계하기 그지없었다. 또 몇 해 전에 방영된 <여인천하>에서는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을 오라비로 둔갑시킨 적이 있었다. 남의 집 족보까지 제멋대로 뜯어고치고도, 제작 책임자가 ‘드라마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당연한 듯 말하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예를 들자면 많다. <연개소문>에서 연개소문이 김유신의 집 종살이를 했다거나, 이미 늙어서 죽은 미실궁주가 여전히 미모를 과시하며 나온다거나, <대조영>에서 아직 태어나기도 전인 대조영이 연개소문의 집 종노릇을 했고, 여당전쟁에서도 맹활약을 했다는 설정은 전혀 역사적 근거가 없는 날조에 불과했다. 뭐니 뭐니 해도 역사왜곡과 날조의 극치는 <바람의 화원>이다. 어엿한 남성 신윤복(申潤福)을 남장 여자로 둔갑시킨 것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팔아 돈을 많이 벌고 싶어도 분수가 있지. 어떻게 멀쩡한 남자를 여자로 만들 수 있는가.
또 지금은 고인이 된 유명한 소설가의 가야사를 소재로 한 장편 역사소설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18세기까지 그 어떤 수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5세기 민족대이동을 감행한 가야 유민들의 핵심세력인 하세족들이 이미 그 무렵 이와 같은 수레를 만들어 토목공사에 사용하였음에도 막상 본토인 조선에서는 수레는커녕 바퀴가 달린 그 어떤 물건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는 대목이 나온다.

무식한 자학적 사관에 돈벌이 욕심

참으로 황당무계했다. 우리나라가 18세기까지 ‘수레도 바퀴도 이용하지 못한 미개국’이라는 표현은 극단적인 자기비하요, 자학적 역사관이다. 작가는 수많은 고구려고분벽화에서 그 많은 고구려의 수레와 바퀴를 정말로 한 번도 보지 못했는가. <삼국사기> ‘잡지’ 첫머리에 나오는 신라의 수레에 관한 조항을 못 읽었는가. 거기에는 직급에 따라 수레를 만들 수 있는 재목과 장식에 관한 제한규정까지 나온다. 또 <삼국유사> 신라 제3대 노례왕(유례왕) 조를 보면 ‘보습을 만들고, 얼음을 저장하는 빙고를 짓고, 사람이 타는 수레를 만들었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를 못 보았는가. 뿐만 아니다. <고려사>를 보면 강조가 거란 침략군과 싸울 때 검차라는 전투용 수레를 만들어 숱한 적군을 무찌른 기록도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본에서 수레를 사용한 가야의 유민들이 어디에서 건너갔는가. 본인이 말한 대로 김해 등 한반도 가야 땅에서 고구려와 신라에게 쫓겨 왜국으로 망명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가야시대 김해에서는 없었던 수레를 일본으로 망명하여 갑자기 발명했다는 말인가.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역사소설을 써서는 곤란하다.
소설가든 역사소설가든 자격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역사소설가가 많이 나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독자들이 책 읽는 재미와 더불어 역사공부도 하게 되니 얼마나 좋은가. 다만, 덜된 공부를 바탕으로 역사소설을 잘못 쓰면 독자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게 된다는 점을 심각하게 의식해야 한다. 젊은 역사소설가가 많이 나오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손끝이나 머릿속에서 나오는 잔재주가 아니라 공부를 제대로 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갖춘 다음에 역사소설을 쓰는 것이 좋겠다.
책을 많이 팔고, 돈을 많이 벌겠다는 얄팍한 상업적 이익을 앞세워 역사를 가볍게 여기는 안일한 인식을 버려야 한다. 역사를 제멋대로 왜곡하고 날조하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올바른 역사교육에 역행하는 범죄와 다름없다. 잘못된 역사소설을 쓰는 것은 독자들을 농락하고 속이고 역사에 죄를 짓는 짓이다. 그래서 부단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2호 (2014년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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