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의 선택, 결국 위장·허구였나

[기독교복음침례회 관련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문]

"본 인터넷 신문은 지난 2014년 09월 08일자 홈페이지 <칼럼>면에서 ˝[구원파왕국의 '유산'] 논란과 의혹의 일생˝(이)라는 제목으로 "구원파 교주의 죽음에 구원의 기적이 없었다.", "교주 유병언(兪炳彦)은 분명 꿈과 이상이 남달랐다.", "장인과 함께 구원파를 공동 창시하여 막강한 지배권을 행사", "종교사업의 대주주가 그의 자녀들이지만 자금출처나 지분확대과정이 투명하고 적법했는지가 의심될만했기 때문이다.", "차남 유혁기는 구원파 교주 계승자 위치에서 취미사업에 열중했고", "유병언이 없는 구원파는 어찌 될런가. 그가 살아있을 때는 순교를 각오하고 끝까지 교주를 지키겠다고 다짐", "구원파 조직이란 강온파와 각자 이해에 따라 조각조각으로 분열되어 교주 유병언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겠는가."(이)라고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복음침례회에 확인한 결과, 기독교복음침례회는 사업체를 운영한 사실이 없으며 해당 사업체의 경우 일부 신도들이 주식을 소유하거나 취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해당 교단은 유병언 전 회장을 교주로 추앙한 사실이 없으며 성경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정상적인 기독교단으로서 특정 개인을 교주로 추앙하는 교리를 가지고 있지 않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해당보도를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유병언 전 회장 관련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문]

"본 인터넷 신문은 지난 2014년 09월 08일자 홈페이지 <칼럼>면에서 ""[구원파왕국의 '유산'] 논란과 의혹의 일생(이)라는 제목으로 ""구원파 교주의 죽음에 구원의 기적이 없었다."", ""교주 유병언(兪炳彦)은 분명 꿈과 이상이 남달랐다."", ""장인과 함께 구원파를 공동 창시하여 막강한 지배권을 행사했으니 성공한 ‘종교사업가’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그가 신도들의 헌금을 바탕으로 세모그룹을 쌓았다가 부도로 무너졌지만 어느새 소문도 없이 부활했던 사실이 세월호 참사로 드러났다. 자신의 이름은 올리지 않고 자녀들 명의로 아이원아이홀딩스를 세워 ㈜세모, ㈜아해, 다판다 및 청해진해운 등 구원파 사업그룹을 축성했으니 놀라운 솜씨였다. 구원파의 본산 금수원을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 영농법인, 별장, 부동산을 확보해두고 해외 각국에도 구원파 조직과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놨으니 가히 ‘유병언 왕국’이라 불릴 만 했다. 그렇지만 왕국의 소유와 지배권은 유병언 일가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비쳐졌으니 문제였다. 종교사업의 대주주가 그의 자녀들이지만 자금출처나 지분확대 과정이 투명하고 적법했는지가 의심될만했기 때문이다."", ""차남 유혁기는 구원파 교주 계승자 위치에서 취미사업에 열중했고"", ""내연녀 관계로 보이는 김혜경 씨를 비롯한 수많은 여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한 마디로 유병언 왕국의 소유와 지배방식이 이권관계로 결속"", ""유병언이 없는 구원파는 어찌 될런가. 그가 살아있을 때는 순교를 각오하고 끝까지 교주를 지키겠다고 다짐"", ""구원파 조직이란 강온파와 각자 이해에 따라 조각조각으로 분열되어 교주 유병언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겠는가."", ""유병언이 실질적인 오너로 지배했던 청해진해운의 세월호가 국가와 국민에게 끼친 손실과 후유증은 헤아릴 수가 없다.""(이)라고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병언 전 회장 측에 확인한 결과, 유병언 전 회장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주식은 물론 청해진해운의 대주주인 천해지, 천해지의 대주주인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주식을 전혀소유하지 않았으므로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가 아님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유병언 전 회장은 1981년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설립 당시 참여하지 않았으며 이후로도 목사로 재직하거나 교주로 추앙받은 사실이 없으며, 종교와 사업을 일치시키는 주장을 하며 기독교복음침례회 교인들의 헌금을 유용하거나 이를 사업확장에 사용한 바 없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유 전회장이 뜻이 맞는 교인들과 사업체를 운영하고 고용한 사실은 있으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직책을 가지거나 지분을 소유하지 않고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고 부동산 등을 소유한 사실이 없어 따라서 이를 유병언 왕국이라 보도한 내용은 사실이 아님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보도의 김혜경 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바 없어 내연녀라고 보도한 내용은 사실이 아님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해당 기사를 바로 잡습니다."

구원파 교주의 죽음에 구원의 기적이 없었다. 그가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도 없이 쓸쓸하게 택한 죽음은 오직 허무일 뿐이다. 그에게 성공과 좌절이 있었고 영광과 치욕이 겹친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마지막 길에 말 한 마디 못한 채 죽음을 택한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고만 셈이다. 비록 원성이 쏟아지더라도 그의 고혼(孤魂)이나마 무슨 말을 해야 할 차례가 아닌가.

구원파 왕국의 ‘유산’
논란과 의혹의 일생
유병언의 선택, 결국 위장·허구였나
자녀· 측근등 부귀영화도 일장춘몽

위장과 허구의 일생 논란 의혹

교주 유병언(兪炳彦)은 분명 꿈과 이상이 남달랐다. 그는 무엇이건 신념과 투지로 해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실제 그는 다능다재한 면이 있었다. 다만 이를 독창적인 자신만의 세계로 특화하려는 집념이 국가와 사회와 불화(不和)를 가져왔노라고 볼 수 있다.
유병언은 혈통이 왕성한 부귀다남(富貴多男)형으로 태어났다. 장인 권신찬 목사를 만나 부인 권윤자를 얻고 4자녀를 출산하여 부귀하게 양육했으니 다복을 누렸다. 장인과 함께 구원파를 공동 창시하여 막강한 지배권을 행사했으니 성공한 ‘종교사업가’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종교천국이라고 하나 교파를 창시했다고 해서 모두가 유병언 만큼 명성을 드높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구원파 관련 이단(異端)과 사이비(似而非) 논란이 많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만한 언변과 설득력을 타고 났거나 수련했을 것이다. 그가 도피중일 때 열정으로 설교한 필름을 봤지만 비상한 카리스마가 넘쳤다. 태권도로 단련한 70대 노인의 체력이 공중묘기 수준급으로 보였다. 유기농만 고집하는 식성에 신비의 명약처럼 선전된 스쿠알렌을 상복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을 과신했을까. 성공에 도취했을까. 그의 종말은 생시의 그의 언행과는 너무나 달랐다. 구원파는 어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신앙이 없는 우리네가 보기에는 기막힌 위장과 허구가 아니었을까 싶다.

▲ 유병언의 네 자녀

자녀 넷은 자기몫 챙겨 도주꼴

유병언은 아이디어 박사로 발명, 상표, 디자인 권리 1,600여건을 자녀들과 함께 보유하고 사진 예술가로도 국내외에 명성을 떨친 것으로 소문이 났다. 그가 신도들의 헌금을 바탕으로 세모그룹을 쌓았다가 부도로 무너졌지만 어느새 소문도 없이 부활했던 사실이 세월호 참사로 드러났다.
자신의 이름은 올리지 않고 자녀들 명의로 아이원아이 홀딩스를 세워 ㈜세모, ㈜아해, 다판다 및 청해진해운 등 구원파 사업그룹을 축성했으니 놀라운 솜씨였다. 구원파의 본산 금수원을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 영농법인, 별장, 부동산을 확보해 두고 해외 각국에도 구원파 조직과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놨으니 가히 ‘유병언 왕국’이라 불릴 만 했다.
그렇지만 왕국의 소유와 지배권은 유병언 일가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비쳐졌으니 문제였다. 종교사업의 대주주가 그의 자녀들이지만 자금출처나 지분확대 과정이 투명하고 적법했는지가 의심될만했기 때문이다.
장남 유대균은 천재적 소질로 조각가로 행세하고 차남 유혁기는 구원파 교주 계승자 위치에서 취미사업에 열중했고 장녀 유섬나는 파리, 차녀 유상나는 미국에서 사업적 터전을 두고 있었으니 해외로 많이 빼돌리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따른다.
더욱 문제는 이 같은 의혹의 눈초리에 대해 자녀들 모두가 아무런 해명 없이 국내외로 도피만 하고 있으니 문제의 해결은 고사하고 갈수록 누적되고 확대되지 않느냐는 말이다. 더구나 유병언이 어떤 까닭으로 객사(客死)했다면 국내외 자녀들이 귀국하고 자수하여 부친의 장례를 치르고 죄가 있다면 벌을 받겠다고 해야 도리가 아닌가.

그의 일가는 숨고 측근 충성파는 구금

유병언 일가는 부인 권윤자 씨를 제외하고는 각자 자기 몫을 챙겨 숨어있는 꼴이니 말이 되지 않는다. 내연녀 관계로 보이는 김혜경 씨를 비롯한 수많은 여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한 마디로 유병언 왕국의 소유와 지배방식이 이권관계로 결속됐다가 위기가 닥쳐오자 뿔뿔이 흩어져 각자 도생하겠다는 ‘잇속들의 결사체’라는 말인가.
반면에 유병언에게 충성했던 측근들은 모조리 구금되고 재판을 거쳐 죄를 받게 됐다. 세월호 선장 이준석씨, 1~2등 항해사, 기관장, 조타수 등은 살인죄로 기소됐고 청해진해운의 김한식 대표와 임원, 팀장들도 중죄를 받게 될 것이다.
또 오랫동안 유병언의 수족처럼 충성으로 출세했던 다판다, 세모, 아해, 천해지 대표 등도 구속 재판 중이다. 세월호 참사 관련 331명이 입건되고 139명이 구속된 사실이 무엇을 말할까. 속칭 ‘유병언 재판’으로 불리지만 유병언 일가는 없고 측근 충성파들만 끌려가 죄를 받게 됐으니 무슨 꼴인가.
유병언이 없는 구원파는 어찌 될런가. 그가 살아있을 때는 순교를 각오하고 끝까지 교주를 지키겠다고 다짐했지만 지금도 그럴까. 국과수가 유병언의 죽음이 부패가 너무 심해 사인 ‘판명불가’라고 발표했다. 이 같은 발표가 있은 다음 구원파 조직이란 강온파와 각자 이해에 따라 조각조각으로 분열되어 교주 유병언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겠는가.
그가 살아서 이 같은 현상을 인식했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아무런 소용도 없고 의미도 없는 헛된 꿈과 이상의 일장춘몽이라고 후회하지 않았을까.

▲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측근 10인방

그의 죽음이 남긴 고통과 분노의 유산

유병언은 서글픈 모습으로 떠나갔지만 그가 남긴 국가와 사회의 상처는 쉽게 아물 수 없을 만큼 깊고 넓다. 세월호 침몰 구제에 소홀했던 해양경찰은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해 폐지가 추진되고 해수부와 안행부도 조직과 기능축소가 예정되어 있다.
‘관피아’의 적폐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유병언이 실질적인 오너로 지배했던 청해진해운의 세월호가 국가와 국민에게 끼친 손실과 후유증은 헤아릴 수가 없다.
유병언 추적에 실패했던 검경 수사팀은 쑥밭속의 죄인으로 취급된다. 검찰과 경찰의 고위직 인책이 어디까지 갈는지 모른다. 대통령이 다시 한번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세월호 유족들은 연일 청와대와 국회를 향해 촛불을 켜고 가두행진하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 특별법으로 국가의 배상책임을 규정하여 국민세금으로 고액 배상과 각종 예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가 일으킨 문제를 정부와 국민이 덮어쓰게 된 지경에 유병언에 대한 원성이 없어질 수 있겠는가.
그가 살아 있을 때 수많은 논란과 의혹을 제기했지만 어찌하여 죽어서도 온갖 소문과 터무니없는 유언비어가 유포된다는 말인가. 마땅히 살아서 숨겨놓은 재산을 다 털어서라도 보상하고 죄를 받는 것이 종교인이나 종교사업가로서 책무가 아닌가.
다만 어찌됐건 그의 죽음은 슬픈 일이고 안타깝기 짝이 없노라고 말해준다. 그렇지만 세월호가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냈지만 승객들을 구제하거나 사후처리 과정에 헌신했다가 희생된 억울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단원고 교감은 구출이 되고나서 제자들 볼 면목이 없다면서 자살했고 잠수사의 희생도 있었고 산림청 소속 헬기 조종사 등 소방관 5명의 아까운 희생도 있지 않았는가. 유병언이 남긴 유산이 얼마나 무겁고 난해하고 부담스러운지 생각할수록 분통하다. 그가 노숙자 신세인양 홀로 객사로 마감한 것이 개인적 고통은 마감일는지 모르지만 그의 유족이나 국가와 사회는 고통과 분노를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1호(2014년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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