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의 ‘그때 그세월’

정부가 쌀 관세화를 통한 시장개방을 결단했다. 농민단체들의 반대가 뻔하지만 불가피한 조치로 해석된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이를 발표한 후 전농 등 수입개방을 반대하는 단체들이 삭발투쟁을 선언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쌀시장 개방을 미뤄 매년 의무수입량을 늘려 갈수는 없으니 고율관세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보릿고개의 ‘그때 그세월’
7080, 눈물의 쌀 추억
쌀 관세화 불가피한 선택을 보고

때가 되어 불가피한 관세화 선택

지난 94년 UR협상타결 이후 관세화는 두 차례에 걸쳐 20년간 유예되어 왔다. 관세화의 유예로 매년 의무수입물량을 늘려와 초년도 5만톤에서 올해는 40만9천톤으로 8배나 증가했다.
쌀은 분명 우리의 생명산업이지만 관세화의 유예조치로 의무수입 물량을 늘려온 것이 무슨 실익이 있는가. 수입을 막아 놓고 국내 쌀산업을 보호 육성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부는 외국의 개방사례를 참고하여 400%선의 고율 관세로 쌀수입을 막으면 큰 타격이 없을 것으로 내다본다. 이에 대해 농민단체들은 ‘농정(農政)의 대참사’라고 혹평하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다. 일본의 경우 지난 99년, 대만은 2003년에 관세화를 수용하여 국내 쌀산업을 정착시켰다. 필리핀이 올 들어 2017년까지 관세화 유예조치를 받았지만 의무수입 물량을 늘리고 타상품의 관세율을 인하한 부담을 떠안았다.
여러모로 비교검토해도 관세화로 전환할 때가 왔다고 보기에 정부의 결단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쌀시장 방어를 위한 반대와 시위

그동안 쌀시장 방어를 위해 정부로서도 할 만큼 했다. 농민단체들의 반대와 시위 몸살도 수없이 겪었다. 지난 2004년까지 10년, 그 뒤 2014년까지 10년 관세화 유예기간을 거쳤으니 개방불가의 논리도 제 역할을 다 했다고 봐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대선 때 쌀시장 사수를 공약했다가 UR협상과정의 책임을 물어 농림장관을 경질한 바 있다. 노무현정권 때는 여의도 농민시위 과잉진압을 이유로 경찰청장을 사임시켰다.
관세화 유예기간 만료를 앞두고 관세화 관련 공청회가 있었지만 더 이상 유예할 명분이나 실익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새정치민주연합이 7.30 재보선을 앞두고 농민단체들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지만 그들도 쌀시장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쌀의 ‘정치상품화’로 정치적, 사회적 논리에 구속되어 온 사실은 대다수 국민이 알고 있다. 국내 쌀산업 보호를 외치는 목소리는 높지만 쌀 소비는 갈수록 급격히 줄고 있다. 지난 70년대 1인당 연간 140kg이던 소비량이 지금은 70kg 이하로 줄어들었다. 비만(肥滿)을 걱정하여 아침밥을 굶는 젊은이들이 대다수이다. 적게 먹는 것이 교양으로 인식되는 시기에 시장방어를 위해 너무 많은 비용을 계속 부담하는 것은 절대다수 국민의 뜻이 아니다.
다만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기본은 확고히 지켜가면서 개방 하에 관세장벽으로 수입쌀을 막고 쌀 소비 진작으로 쌀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믿는다.

7080세대 눈물의 쌀 신앙

7080 세대에게 쌀은 피와 땀과 눈물이나 다름없다. 쌀이 곧 생명임을 7080 세대야말로 너무나 깊이 체험하고 신앙처럼 섬겨왔다. 그런 7080세대가 관세화 조치에 동의한다.
산촌에서 태어나 출향(出鄕)해온지 55년이 넘은 세대로 8.15와 6.25를 겪기까지 쌀과 함께 생존의 몸부림 친 고달픈 추억을 말할 수 없다. 철부지 시절, 초중고 학생시절까지 모심기, 김 메기에서 벼 베기와 탈곡 등 온갖 농사일을 체험했다. 추수가 끝난 짚은 초가지붕 새로 엮어 겨울나기 준비하고 남은 짚으로 소여물 장만하고 새끼 꼬고 가마니 짜니 쌀농사 부산물마저 한 톨도 버려지는 것 없이 요긴하게 이용한다.
이보다 앞서 일제 때는 일본 순사가 모심기 거리간격을 간섭하여 전통농법 고집하던 부친께서 불려 다녔고 벼 베기에 앞서 벼 포기마다 벼 알 수를 헤아려 공출(供出)기준을 삼기에 이를 줄이고자 통사정하던 서글픈 광경도 기억한다.
농사는 풍작(豊作)과 흉작(凶作) 따라 인심이 금방 달라진다. 흉작이면 다음해 봄 보리고개엔 초근목피(草根木皮)가 정해진 코스다. 비록 풍작이라 해도 집안의 식량은 디딜방아로 대충 찧어 밥해 먹고 장날에 내다 팔 쌀만은 도정공장에서 백미(白米)로 깎아 일용(日用)돈을 마련한다.
비록 철부지 시절이지만 쌀을 팔아 돈을 장만한 그날 저녁에는 부친께서 쌀이란 ‘하늘이 내린 복’이라고 말씀하신 말을 생생히 기억한다.

할아버지 제삿날에나 쌀밥

쌀농사가 주업이지만 쌀밥을 배불리 먹는 법은 없다. 가마솥 가득히 꽁보리밥을 지으면서 중앙 가운데에 겨우 쌀 한줌을 넣어 부친과 아들자식에게만 쌀밥을 퍼 주시니 바로 ‘눈물의 밥’이었다.
단지 8월 추석날과 할아버님 제삿날만은 온 식구가 모처럼 쌀밥을 구경한다. 제삿날엔 쌀 막걸리와 쌀 시루떡도 먹게 된다.
일년 내내 쌀농사에 목을 매달고 살아온 산촌사람들은 부자와 가난이 따로 없다. 매년 되풀이 되는 가뭄과 홍수와 처절하게 싸워 수확한 쌀을 배불리 먹는 간 큰 사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뭄이면 위 아랫마을 사람들이 횃불을 켜 들고 물싸움을 벌이다가 경찰관이 출동하기도 하고 홍수가 나면 논밭이 물에 떠내려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몇날 며칠씩 함께 복구해야 했다.
이렇게 땀과 눈물로 수확한 쌀을 어찌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말인가. 쌀이 눈물 아니고 생명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지금은 쌀이 남아 탈이지만 7080 세대는 밥 한 톨이 남아 버려지는 꼴을 도무지 보고 참을 수 없다.

GOP 병사들이 배고파 울던 시절

8.15 해방공간에 쌀 꾸러 다니는 사람도 많았고 아침저녁 동냥꾼도 수없이 보아왔다. 6.25 때는 인민군이 캄캄 밤중에 따발총 앞세워 밥 달라 하고 몰래 숨겨놓은 쌀마저 뺏어 갔다.
자유당정부 시절 기록을 읽으면 전쟁 중에 국군도 군량미 조달이 어려워 배를 곯았다. 당시 농림부는 공비출몰지역까지 찾아가 정부미를 수매했고 통상 당국자는 태국쌀 수입을 교섭하러 다녔다. 국군이 주먹밥 먹으며 전투할 때 노무대가 지게로 밥을 날랐더니 미군들이 지게를 보고 ‘A-Form’이라고 불렀다.
1960년대 초반 한탄강변 GOP 소대장으로 근무할 때 병사들의 제1 고충이 밥이 모자란다는 소원이었다. 군대에는 정량(定量)기준이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쌀이 모자라 시골출신 병사들은 늘 배가 고팠다. 어느날 아침에 깨어보니 병사 한 명이 모자라 수색해 보니 벌써 목책선을 넘어 월북했다. 북에서 대남 라디오 방송을 통해 “어찌하여 원 일병은 의거 월북했소”라고 물으니 “남한에는 쌀이 모자라 배가 고파 월북했다”라고 응답했다.
부끄럽고 괴로운 그 시절의 이야기지만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당시 20대의 초보장교로 “나라가 되자면 우선 장병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 발전해야 하지 않겠느

▲ ‘ 통일벼’ 로 주곡의 자립을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

냐”고 생각했다. 필자가 소대장 재임시절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이 과거 사단장으로 근무했던 5사단 지역에서 전역식을 가졌다. 그 뒤 병사들의 밥그릇이 정량기준으로 채워졌었다.

5.16정부 쌀과의 전쟁 현장취재

전역 후 경제기자가 되어 매일같이 5.16정부의 ‘쌀과의 전쟁’ 현장을 취재했다. 당시 미국에는 잉여농산물이 넘쳐 쌀을 바다에 쏟아 부으면서 “쿠데타 정권을 도와줄 수 없다”면서 인천 앞바다에 기착한 화물선에서 쌀을 풀지 않았다. 이 때문에 5.16정부가 정권의 운명을 걸고 대미 쌀 교섭에 매달렸다.
당시 정책구호가 쌀 증산이었고 쌀이 곧 5.16혁명의 성공요인이라고 인식했다. 대통령이 퇴비증산을 위한 풀베기 현장을 독려하고 쌀 다수확왕을 선발, 시상하고 ‘통일벼’를 개발하여 마침내 단군 이래 최대 증산으로 주곡의 자립을 이룩했다. 이 과정에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보리혼식과 분식을 장려하고 쌀 막걸리를 엄중 금지시킨 것은 지금 생각하면 옛 추억으로 회상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모심기에 참석했다가 논두렁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이 신문에 보도됐지만 쌀 막걸리 전면금지 조치 이전이었다. 박 대통령 사후에야 쌀 막걸리가 전면허용 되고 분식과 혼식 장려도 사라졌다. 7080 세대가 회고하기로는 5.16은 배고픈 국민에게 밥 먹여 주는 혁명이었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0호(2014년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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