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이 유지계승, 현성스님과 봉행

6.25 64주년을 맞으면서 북의 김일성을 지원하기 위해 참전했던 중국군 (당시 중공군) 전사자들 가운데 남한 땅에 묻혀 있는 유해를 한번쯤 생각하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 때 제안하여 한국 땅에 잠들어 있는 중국군 유해가 사상 처음 본국으로 송환된 해이기 때문이다.

육군5군단 ‘호국금강사’
적과 우군 함께 위령
고 정동호장군 건립, 올해로 31주년
부인이 유지계승, 현성스님과 봉행

정전 60년 넘어 고국으로 유해귀환

지난 3월 28일, 경기도 파주 적군묘지에 무명용사로 잠들어 있던 중국군 유해 437구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국화물항공기 편으로 송환되는 행사가 있었다. 이날 중국정부는 유해봉안 의장대를 파견하여 정중하게 유해를 인수하는 절차를 보여주었다.
6.25 정전이후 한국 땅에서 중국으로 송환된 유해는 처음이었다. 이들 유해는 지난 60년 이상 이국땅 산야에 고혼(孤魂)으로 묻혀 있다가 한·중간 협력하에 송환되어 중국 요녕성의 수도 센양(沈陽) 혁명열사 묘역에 안치됐다. 이 행사를 중국 관영통신 및 인민일보 등이 대서특필한 것은 6.25 참전 전사자 유해송환이 양국간 우호관계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군 유해 송환행사를 계기로 참전군인 후손들이 관광객으로 방한하여 주한 중국대사관이나 한국 국방부를 방문, 한국전 때 희생된 조상들의 유해를 찾을 수 없느냐고 문의하고 있다는 사실도 특기할만 하다. 6.25에 참전했다가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된 중국군이 40여만명이라고 하니 남한 땅 어디엔가 잠들고 있는 유해를 추가 발굴하여 송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정동호 전 군단장과 스님들이 힘을 모아 건립한 5군단 호국금강사 ▲한국군 참전 UN군, 북한군, 중국군, 소련군 위패 진열대

인해전술로 중국군 희생자 많아

북한 김일성의 남침전쟁으로 서울이 3일만에 함락된후 적치(敵治) 3개월간 온갖 만행은 여러 가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국군은 당시 준비없던 전쟁을 만나 초기에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지만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이후 파죽지세로 북진하여 압록강변까지 진격, 통일을 내다 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중공군의 대규모 참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전면 후퇴하여 서울이 다시 점령됐다가 수복하여 전쟁 3년만인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포성이 멎었다. 이 과정에 중공군은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국군과 유엔군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6.25 전사자는 한국군 25만7천명, 미군 3만7천여명, 유엔군 3,668명, 북한군 93만명, 중공군 40여만명으로 추산되니 얼마나 많은 인명손실을 가져 왔는가. 일부 소련군 조종사와 군사고문들도 적지 않게 희생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전협정 후 북한 땅에 묻힌 중국군 유해는 일부 발굴되어 송환될 수 있었지만 남한 땅에 묻힌 유해는 직접 송환할 길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후 시진핑 주석과의 우호적인 외교관계가 쌓이면서 사상 처음으로 437구의 유해를 송환하게 됐으니 한·중 우호증진에도 기여할 것은 물론이다.

5군단 금강사 추모위령제 31년

6.25 격전지인 중부전선을 맡고 있는 육군 5군단에서 중국군 뿐만아니라 북한군, 소련군 등 적군 희생자들까지 영령을 추모하는 위령제를 31년째 올리고 있다는 소식이 특기할 일이다.
육군 5군단 영내 ‘호국 금강사’ 법당에는 ‘6.25 한국전쟁 참전국 희생영령 추모단’이 마련되고 ‘북한군 전몰열위’, ‘중국군 전몰열위’, ‘소련군 전몰열위’ 등 전쟁 당시 적군들의 위패를 모셔 놓고 매년 6.25 기념일에는 대규모 위령 천도제를 올려 올해로 31년째를 맞았다는 소식이다.
5군단 호국 금강사는 1985년 6월 군단장으로 부임한 고 정동호 장군이 발원하여 스님들의 협조로 법당을 짓고 군부대 포교활동에 열성이던 호국스님들과 함께 위령행사를 갖는다는 내용이다.
당시 정 장군은 잠결에 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현몽하여 “6.25때 희생된 모든 영령들을 추모하는 천도제를 올려야 나라가 편안해 질 거야”라고 말씀하여 5군단 법당을 짓기로 발원했다고 한다. 이에 정 장군은 평소 군 포교에 열성이던 퇴계원의 봉선사 주지 밀운스님과 협의하여 6.25 참전 희생자들의 영령을 피아(彼我) 구분 없이 추모하기로 합의했다.
그로부터 각계 불자들의 뜻을 모아 5군단 영내에 ‘호국 금강사’를 짓고 스리랑카에서 봉안해 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안치한 후 불교 조계종과 함께 대규모 위령제를 지금껏 올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 현성스님과 구형선 여사

정 장군은 육사 13기로 임관된 후 각급 지휘관을 거쳐 전두환 대통령시절 청와대 경호실장, 5군단장, 육군참모 차장을 역임했다. 전역 후에는 경남 의령, 함안을 지역구로 13대, 14대 의원을 지냈으며 지난 2009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동갑 현성스님과 죽을때까지 위령제

정 장군이 타계한 후에는 미망인 구형선 여사가 조계종 호국위령제 운영위원장 현성스님과 함께 위령제를 이끌고 있다. 불교신문 2013년 6월 12일자에 제30회 호국위령제를 앞두고 현성스님과 구 여사가 만나 “5군단 위령제를 죽을 때까지 함께 올리자”고 감회를 밝힌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이때 두 분은 “일흔다섯(당시) 동갑 나이로 늙어 할 일이 따로 없으니 끝까지 호국위령제나…” 라며 뜻을 합쳤노라고 다정하게 이야기 했다.
현성스님은 도선사 주지 10여년간 전방부대 군 포교에 열성을 보여 군부대 13곳에 법당을 건립한 바 있다. 현성스님은 호국위령제 위원장으로 5군단 금강사 건립과 관련하여 “그때 정 장군과 승가사 스님들이 욕 많이 봤다”고 말해주었다.
구 여사는 남편 정 장군이 1984년 5군단장으로 부임한 후 인근 “백운산 일대에 적과 우군들 6.25 전사자 수만명이 잠들고 있을 것”이라고 몇 번이나 되새기더니 어느날 박정희 대통령의 현몽 이야기를 끄집어 내놓고 법당 건립을 서둘더라고 했다.
이때 정 장군이 각계 불자들에게 헌금을 독려하여 전두환 대통령도 5천만원을 기부했노라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봉선사 밀운스님과 도선사 현성스님과 의기투합하여 1984년 11월 28일 제1회 호국위령 대법회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녹원스님이 참석하여 조계종 차원의 연례행사로 격상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매년 6.25기념 위령제 행사에는 제물비만 500여만원에 달할 만큼 대규모였지만 초기 6년간은 승가사의 상륜스님 등이 적극 지원했다고 밝혔다.

남편 정 장군은 호국무인의 기상

구형선 여사는 1962년 23세 때 정 장군과 결혼하여 군부대 따라 전후방으로 이사 다니면서도 3남 1녀를 모두 훌륭하게 길러냈다. 이화여대 가정학과 출신으로 전두환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와는 동기동창으로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 고 정동호 군단장

구 여사는 친정 어머니의 영향으로 불심을 지니고 자랐지만 남편 정 장군이 5군단장으로 호국 금강사를 발원할 때 적극적인 불자활동에 나서 봉은사 신도회장을 맡기도 했다.
구 여사는 남편 정 장군이 집에서는 부인과 아이들에게 엄격하고 매정한 면이 있었지만 군인으로서는 단호한 결의와 뚝심으로 호국무인의 기상이 넘쳤노라고 회상한다. 또 돈과 관련해서는 “자기 마누라 한테는 안줘도 남을 위해서는 감춰놓은 돈을 시원하게 쓰는 장부였다”면서 남편의 유지를 이어 받아 5군단 위령제를 끝까지 올리겠다는 각오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79호(2014년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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